[김학준 칼럼] "마을도서관은 복지이다"

  1929년 시작된 미국 대공황 대책으로 후버댐을 만들어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해낸 이야기는 고등학교만 나오면 다 들었을법한데, [지상의 위대한 도서관]에서 최정태는 당시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의 업적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해준다. 루스벨트는 쏟아져 나오는 실업자들은 산에 나무를 심도록 했고, 지식인들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유용한 기록물을 수집 정리하게 하여 테네시 강 유역 7개주에 주립 공공도서관을 만들도록 했는데, 그게 오늘날 미국이 자랑해마지 않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공공도서관체제의 토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경제공황은 하기에 따라서는 훗날의 부흥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후버댐과 공공도서관. 역사적으로 양자는 미국의 물적부흥과 지적부흥의 ‘생산적인 기폭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최정태가 전하는 영국의 경우도 경제적 불황기를 어떻게 대처했는가 하는 이야기이다. 19세기초 영국 국민들은 가난의 수렁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이때 런던의 급진주의자들이 노동자의 권익과 직업을 의회가 책임지라는 이른바 ‘차티스트’ 운동을 전개하는데, 그 운동의 여파로 ‘차티스트 독서실’이 생겨 조직원들에게 무료로 책을 빌려주는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독서실은 가난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중산층에 이르기까지 지식을 공유하고 정보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 독서운동으로 등장한 회원제 대출도서관은 오늘날 영국 공공도서관의 근간이 된다. 우습게도 일부 지식층과 부유층이 도서관 건설 혹은 확장은 기존질서에 대한 위협이라고 반발하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이런 응수가 되돌려진다. “독서는 가난한 급진주의자들이 폭도로 돌변하는 것을 문화와 예절의 품으로 끌어들인다. 독서를 통해 행동은 점잖아지고 말은 고상하며 신중해진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쉽게 타락의 길로 들어서지만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은 그 반대이다.”

  우리나라 새마을문고의 본디 취지와 배경은 미국이나 영국에 못지않다. 경제를 부흥시키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새마을금고’와 ‘새마을문고’는 한 쌍이 되어 새마을운동의 물적토대와 지적토대를 지향하는 상징이 된다.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새마을운동’이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고 거기에다가 교육환경이 급변하면서 ‘새마을문고’의 효용성이 급감하더니,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는 이른바 ‘작은도서관’이 곳곳에 들어서기 시작한다. 새마을문고가 되었든 작은도서관이 되었든 요체는, 우리 아이들이 마음 놓고 책도 읽고 학과공부도 할 수 있는 그런 시설과 공간, 그리고 프로그램을 확보해주자는 것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맞이하면서 드디어 정치의 계절이 본격적으로 도래하는가, 유력한 잠재적 대선후보 박근혜가 선점한 복지 이슈가 뜨거운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아마 안보와 복지가 이후 주된 선거이슈가 될 듯한데, 간단히 말해서 복지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정부와 의회가 책임지고 제도화한다는 뜻이겠다. 식(食), 의료, 교육, 그리고 일자리가 그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복지 중의 복지는 바로 마을도서관이다. 제대로 된 마을도서관은 오늘 우리 아이들이 저비용으로 장차의 식(食), 의료, 교육, 그리고 일자리를 위한 경쟁력 있는 실력을 닦을 수 있는 기회이다. 내일은, 마을도서관을 잘 활용한 아이들이 그 열매를 누리고 있을 터이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 잘 관리하면 가을에 수확할 게 많다. 세계 제일의 갑부이자 자선사업가인 빌 게이츠가 했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다.” 미국과 우리의 교육사회환경과 도서관환경의 차이를 핑계로 대지 말자. 세계의 어떤 선진국이든 도서관은 교육의 핵심이다. 후진국 또한 도서관과 학교를 생명줄로 삼고 있다. 책과 독서를 기반으로 글로벌 스탠다드를 확보하는 것, 그것이 글로벌 시대를 살아남는 유일한 전략이다. 세계가 모두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 제주시내의 한 작은도서관. ⓒ제주의소리DB

  복지를 둘러싼 논쟁거리 중 으뜸은 바로 ‘그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하는 문제인 듯하다. 선택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가 갈리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일 터이다. 그러나 마을도서관은 어떤 관점을 택하든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큰 투자이다.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마을도서관은 공간적 접근성이 매우 우수하다. 교통비용이 따로 들지 않는다. 아이들 책 몇 권 빌리려고 엄마가 따로 시간내어 변두리에 자리한 공공도서관까지 자가용 몰고 찾아갈 필요가 없다. 게다가 엄마가 빌려온 책이 아이와 항상 잘 맞으란 법도 없다. 흔히들 간과하고 말지만 그 간극이 고스란히 기회비용으로 전가된다. 아이들이 직접 통통 튀면서 찾아가 자기가 직접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을 빌려올 수 있는 곳이 바로 마을도서관이다.

‘엄마표 영어교육’에 관심많은 이들 사이에 입소문이 자자한 사이트 <잠수네 커가는 아이들>에서 나온 [잠수네 아이들의 소문난 영어공부법]이라는 책에는 ‘아이가 100일 만에 영어책 천 권을 읽어치우더니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더라’는 둥 영어책 많이 읽는 자랑이 넘치고 넘친다. 그렇지만, 1백일이 아니라 1년을 걸려서라도 천권의 책을 읽어낸다는 건 대단한 일인데 그 책값을 생각하면 엄두를 내지 못할 만하다. 그러나 마을도서관이 그 답이다. 영어책을 마을도서관에 구비하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수십 명, 아니 대를 이어 수백 명이 돌려 읽을 수 있게 하는 곳이 바로 마을도서관이다. 얼마나 경제적인가? 학교 교육력을 높이고 사교육비를 줄이는 최선책도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나 아다시피 책을 많이 읽으면 공부가 쉬워지고 재미있어진다. 공교육이 즐거워지고 시나브로 사교육의 필요성이 줄어든다. 

  관건은 마을도서관을 그리 가꾸어내는 일이다. 작정하고 덤벼들려고만 한다면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우선 마을도서관의 정체를 ‘어린이공부방’으로 확정짓는 일이 필요하다. 그것은 입으로야 어떻든 너나없이 학교시험성적에 짓눌린 학부모들에게 ‘책’이나 ‘독서’가 알게 모르게 일단 경계대상이 되고 있는 우리 현실을 감안한 고육지책이다. 그렇지만 진짜 ‘공부’를 하다보면 책이나 독서의 힘이 얼마나 공부에 도움이 되는지 저절로 알게 된다. 자연스럽게 도서관이 도서관다워지는 기적이 일어난다.

 진실이 드러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이때 두 가지 필수사항은 다양한 주제에 따른 어느 정도 충분한 양의 책을 구비하는 일과, 유능한 사서를 확보하는 일이다. 장서가 빈약하면 공부에 도움을 별로 얻지 못하므로 도서관에 대한 믿음이 약해진다. 그것은 ‘공부’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면서 그것을 ‘독서’와 연계지어 줄 수 있는 유능한 ‘사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생 출신 미취업자를 활용하면 된다. 물론 수혜자 부담이든 십시일반이든 합당한 급여를 지불하는 것은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당연하다.

필요한 충분한 책을 구비하는 일은 마을회나 청년회, 부녀회가 나서서 적거나 많거나 종자돈을 마련하는 데서 출발할 수 있다면 최고이다. 그런 식으로 주민들의 자치역량을 과시하는 것은, 행정기관이나 출향인사, 지역유지들의 기부금 등 외부의 지원을 끌어들이기 위한 자력갱생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신뢰의 축이다. 마을에서 신망받는 인사를 ‘Door Opener'로 삼아 앞세우는 것도 지혜이다.

그 다음은 공공도서관과 업무협약을 맺든지 함으로써 다량의 책을 정기적으로 교환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제도상의 제약이 있다면 도서관의 존재 이유를 들어 그 제약을 과감히 물리쳐 내야 한다. 읽어주는 이가 없는 책은 책이 아니며 이용자가 없는 도서관은 도서관이 아니라 책의 납골당일 뿐이다. 주말이나 방학 때 마을도서관이 주관하여,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하거나 테마캠프를 열고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벌이는 것도 마을도서관의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도와 기대를 높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운영되는 마을도서관의 모습을 전제로, 어린이공부방으로서 마을도서관이 적극 나서야 하는 보다 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글로벌 환경이니 입시사정관제니 구술면접이니 통합논술이니 하여 교육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도시의 학교나 사교육은 학부모들의 기대와 성화 때문에라도 지속적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그렇지만 농어촌의 경우에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시시각각 변화에 대응하기에는 공교육은 너무 굼뜬 데다가 대체로 관료적이다. 뿐만 아니라 도시 농어촌 간 학교의 시설과 교육의 질의 차이가 매우 크다. 사교육은 영리추구가 무엇보다도 우선이다. 게다가 아이들 스스로 성취동기가 약하고, 현실순응적이거나 체념적인 부모들과 침체된 지역사회의 분위기 또한 거의 자극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잘못되거나 시간적으로 뒤늦은 정보를 바탕으로 한, 그리고 자신이 덜 배운 것에 대한 대리만족 추구로 인한 학부모들의 성화는 자칫 잠재력 있는 아이들마저 ‘잡아버린다’. 독서와 체험학습을 기반으로 한 진짜 공부, 이것이 글로벌 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의 원천이다. 다양하고 깊이 있는 독서와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체험학습활동, 그리고 급변하는 교육환경에 신속히 부응할 수 있는 제3의 교육체제로서 마을도서관에 기대를 걸 수 있는 대목이다. 마을도서관은 교육환경이 열악한 농어촌과 도시변두리 지역의 자구책이자 복지정책의 핵심이 될 수 있다.

▲ 김학준 이어도교육문화센터 이사장 ⓒ제주의소리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마을도서관이 보다 전문성을 지향하는 어린이학습센터로서 체제와 내용을 갖추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거기에 필요한 게 마을도서관네트워크이다. 그곳에서 사업을 기획하고 인력을 재교육하고 운영을 위한 컨설팅을 담당하는 허브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자치단체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관의 지원은 지원으로 끝나야 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미루어, 관이 지원을 빌미로 간섭하려 들 때 예전사례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지금 여기서 이야기하는 마을도서관은 환골탈태한 모습의 그것이다. / 사단법인 이어도교육문화센터 이사장 김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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