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인의 행복, 길을 묻는다

 신묘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행복한 한 해를 꿈꾼다. 이러한 희망은 지역 차원에서나 국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국가도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한다. 지방자치도 지역주민들의 행복한 삶을 만들기 위해서 시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해를 맞는 한국인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우리 국민들은 돈은 웬만큼 있는 것 같은데도 여전히 불행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에게 있어서 행복의 문제는 반드시 돈 문제만은 아니지 않은가. 어떻든 앞으로 있을 총선과 대선에서도 행복은 시대적 화두가 될 것이고 행복 논쟁은 그 지평을 더욱 넓혀갈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한국인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인가. 그 답은 미시적 요인보다 전체사회 구조와 같은 거시적인 요인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행복도 학습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구조적인 메커니즘이 오늘의 한국인을 불행하게 느끼도록 조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그러면 행복해지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디자인 되어야 하는가. 그 모형을 제러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 <유로피안 드림>에서 이념형적으로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한다. 그것이 아메리칸 드림과 유로피안 드림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자유경쟁, 효율성, 문화적 동화, 부의 축적과 성장, 수적 다수와 우위로 승부와 성패를 거는 가치체계를 담아낸다. 이런 가치 패커지는 사회경제생활에서나 정치생활에서 승자독식과 패자전몰, 완승과 완패현상을 잉태한다.
  이에 반하여 유로피안 드림은 자유경쟁보다는 협력과 연대, 효율성보다는 형평성, 동화보다는 문화적 다양성, 부의 성장보다는 삶의 질, 수적 우위 게임보다는 다수파와 소수파간 상생게임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이러한 원리와 가치에 따라 유럽의 사회경제 및 정치시스템이 돌아간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통해서 보육.교육.의료.요양.복지.환경.문화.환경 등의 다양한 공공 서비스가 차별과 소외 없이 모든 시민의 일상생활 속에 녹아내린다.

  그렇다면 유로피안 드림이 유럽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가? 

   퓨 리서치 센터가 2003년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모든 유럽 국가의 경우 개인이 정부의 간섭 없이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자유보다도 정부가 불행한 개인이 없도록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과반수를 넘었다. 선진국 가운데 오직 미국에서만이 58%나 되는 사람들이 정부의 간섭 없이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자유가 더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또 해외 원조와 관련해 2002년 동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유럽인의 70%가 빈국들에 대한 재정원조를 늘려야 한다고 대답한 반면 미국인의 절반은 선진국들이 이미 지나치게 많은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아울러 유럽인들은 문화 및 지역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세계적으로 서로 연결되기를 원한다. 그들은 자율과 독립에서가 아니라 서로간의 관계 속에서 자유를 찾는다. 그들은 이 지구상에서 질 높은 삶을 추구한다. 여기에는 후손들을 위해 지구와 지속가능한 관계를 맺는 것까지 포함된다. 유럽인 열 명 중 여덟은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며,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유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유럽인의 58%는 자유 다음으로 삶의 질을 꼽았다. 또 유럽인의 69%는 환경 보호가 시급한 문제라고 응답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인의 경우, 환경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비율은 네 명 가운데 한 명 꼴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유럽인의 56%가 “환경의 악화를 멈추려면 우리의 생활과 개발 방식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것은 유럽인들이 이 세계에서 지속 가능한 개발을 가장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이라는 증거이다.

  유럽인들은 일하기 위해서 살기보다는 살기 위해서 일한다. 물론 그들의 삶에서도 일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일만으로는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데 미흡하다. 유럽인들은 직업 경력보다 심오한 놀이, 사회적 자본, 사회적 결집을 중시한다.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묻는 조사에서 유럽인의 95%가 다른 사람을 돕는 것, 92%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가치로 평가하는 것, 84%는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 데 참여하는 것, 79%는 개인의 발전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는 것, 49%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이 조사에서 제시된 여덟 가지 가치 가운데 금전적 성공이 꼴찌를 차지한 것이다.

 유럽인들은 보편적 인권을 옹호하며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법규 제정을 환영한다. 그들은 평화와 조화의 세계에서 살고 싶어 하며, 대부분의 경우 그 목표에 부합하는 외교 정책과 환경 정책을 지지한다.

  위의 연구 결과가 말하는 것은 유럽 사람들은 미국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유럽 사람들의 행복의 노하우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사회시스템의 역동성이 유럽인들의 높은 행복지수를 담보해주고는 있지만 유럽인들의 유로피안 드림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과 신념도 그 사회시스템 자체가 역동성을 발휘하도록 선순환구조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아메리칸 드림의 성적표는 최근 세계화가 본격화된 시점에서 보면 많은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사회가 경쟁위주로 재편되다보니 사회는 양극화되고 복지수준은 매우 열악하며 계층 간 이동통로는 동맥경화에 걸려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센델이 말하는 공공체적인 미덕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 매우 부족한 사회가 미국이다.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미국이 2천 달러 부탄보다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 두 나라의 인구 10만 명 당 자살자수 비교에서 2006년 미국의 자살률이 부탄에 비해서 두 배가량 많다. 그러면  어느 나라가 행복한 나라인가.

  대한민국은 유감스럽게도 아메리칸 드림에 의해 디자인 되어 있는 사회다. 최근 떠오르는 중국의 ‘권위주의 시장경제’도 실질적으로는 아메리칸 드림의 한 변형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이 여기까지 온 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영향이 주효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불평등, 차별, 소외, 배제 등의 문제 또한 아메리칸 드림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말해도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삶의 질 변수인 교육. 의료. 주거. 보육. 일자리 등의 문제를 차치하고도 그날그날 살아가기도 어려운 경쟁에서 낙오된 빈자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절대빈곤층 250만명, 근로 빈곤층 410만 명, 저소득층 400만 명, 줄잡아 1000만 명이 가난. 질병. 실직의 감옥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요사이 슈퍼에서 빵이나 라면 등을 훔치는 한국판 장발짱(생계형 범죄)이 속출하고 있다. 이것이 통상국가 세계 10위인 한국의 참담한 자화상이다.

   우리는 이제 아메리칸 드림을 뛰어 넘는 새로운 한국사회의 디자인 모형을 모색해야 한다. 21세기 우리의 비전과 가치를 담아 낼 수 있는 그런 사회 디자인 모형 말이다.

이 시점에서 하나의 대안으로 유로피안 드림을 고민해야 한다. 적어도 제주도만이라도 유로피안 드림의 가치와 철학이 주는 시사점을 구체화시켜보자. 

  물론 유로피안 모델이 우리문화와 친화력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더 깊은 연구를 요구한다. 유럽 중에서도 어느 나라를 벤치마킹할 것이냐 하는 것도 문제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유럽과 우리의 생성배경은 그 경로부터 다르다. 오랜 세월 동안 유럽은 많은 전쟁을 치렀고 다민족 국가로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입장이 서로 다른 세력들이 타협하고 그 과정에 똘레랑스(관용)를 익혔다. 그렇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지혜를 학습했다. 세계 최고의 복지 수준을 자랑하는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 근로자들의 평균 소득세율은 각각 59%. 55%. 53% 수준이다. 반면 우리 국민의 소득세율은 8-35% 수준이다. 이 나라 국민들은 경쟁에 뒤진 사람들과의 사회적 연대를 위하여 자기소득의 50%이상을 세금으로 징수해도 아무런 불만이 없다.  이미 스웨덴은 1900년 초 ‘국민의 집’ 짓기 개념구축을 통해서 근대사회가 잃어버린 민족적 연대와 공동체적 정서를 환기시켰다. 이러한 개념형성이 오늘날 스웨덴의 복지의 철학적 기초가 되었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도 우리와는 천양지차다.

▲ 고충석 전 제주대 총장
  이와 관련하여 최근 우리나라에서 불붙고 있는 무상복지 논쟁과 관련 하여 지면 상 상론을 할 수 없지만 옛날식의 조세구조 및 재정지출구조 개혁을 포함한 증세가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동의를 솔직하게 국민들에게 구해야 한다. 증세 없는 무상복지 주장은 국민을 기만하는 그야말로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고소득층은 물론이고 큰 여유가 없는 중산층 사람들도 우리 사회의 탄탄한 사회적 연대를 위해서 그 비용을 자신들의 세금으로 치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빚 얻어 복지재원을 충당하는 것은 최근 그리스 등 남유럽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가재정의 악화를 가져오고 국가의 부도사태로 귀결된다.

  그래서 외국의 제도를 수입해 올 때 우리의 문화적. 사회경제적인 현실 여건 등을 잘 고려해야 하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고충석 전 제주대 총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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