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아시스를 찾아서 : 프랑스편] 프랑스 쌀밥을 준비한 친구들

▲ 대회 출발장소인 프랑스 북쪽 도시 로스코프 풍경 ⓒ안병식

▲ 대회 출발장소인 프랑스 북쪽 도시 로스코프 풍경 ⓒ안병식

 첫 날은 로스코프 시내를 지나 플로운에베젤(Plounevezel)까지 68km를 달리는 코스다. 5km 구간까지는 모든 참가자들이 함께 뛰었다. 15km 까지는 몸이 풀리지 않았지만 그 이후는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코스는 대부분 아스팔트 도로 위를 달리게 되지만 큰 도로가 아닌 시골마을들을 지나기 때문에 자동차가 그리 많지도 않고 도로에는 자전거 길이나 갓길이 있어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다.

 프랑스 시골마을 풍경은 여름이 지나가는 시점이라 이미 수확이 끝난 누런 밀밭 풍경과 포도, 옥수수, 해바라기, 평원, 목장지대 등 다양한 시골 풍경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한적한 마을 풍경들이 우리의 시골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 ⓒ안병식

▲ 로스코프를 출발해 달리는 참가자들 ⓒ안병식

 이 대회를 오기 위해 준비를 많이 하지 못했고 다쳤던 발목도 다시 아프지나 않을까 많이 긴장했지만 첫날은 쉽게 레이스를 끝낼 수 있었다.

 나라나 대륙을 횡단하는 레이스는 하루, 이틀 또는 며칠에 끝나는 대회와는 많이 다르다. 특히 장기간 이어지는 레이스에서는 다치지 않도록 몸 관리를 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다치는 건 쉽지만 쉬는 날이 없이 매일 레이스가 이어지기 때문에 치료하는 것은 어렵다. 아파도, 다쳐도, 힘들어도 달려야만 한다. 조금만 다쳐도 다음날 또 다음날 달리고 나면 상처는 더 커져만 가고 결국 레이스를 포기하게 된다.
 
 68km, 64km, 75km... 하루하루 지날수록 몸은 더 좋아져 갔다. 이번 대회에서는 가족 단위로 참가한 선두들이 여러 명 있었다. 남편이 달리면 아내와 아들딸들이 차를 타고 다니면서 서포터를 해주고 아내가 달리는 경우는 남편이 차를 타고 다니면서 서포터를 해주었다.

▲ 프랑스 시골 마을을 달리는 참가자들 ⓒ안병식

▲ 프랑스 시내에서 참가자들을 응원하는 풍경들 ⓒ안병식

 그 중에서 프랑스의 필립과 켈리 가족은 낯선 이방인인 나에게 많은 친절을 배풀어 줬다. 필립은 이번 대회가 세 번째 참가하는 대회이고 첫 대회는 완주에 실패했지만 지난 대회에서 완주에 성공했고 이번에 다시 참가하는 거였다. 그의 아내 케서린과 딸 아위나는 대회 자원봉사자도 하면서 남편을 서포터 해주었다. 다행히 필립이랑 페이스가 비슷해 같이 달리는 날이 많았었는데 케서린은 나에게까지 서포터 역할을 같이 해주었다. 처음에는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의 진심을 외면할 수 도 없었다.

케서린은 레이스 중간 중간에 차를 세워 놓고 필립과 나에게 음료라든가 빵을 공급해주었다. 체크포인트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레이스를 하다보면 배고플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는 너무 고마웠다. 슈퍼에서 과일이나 음식을 사올 때에도 여유 있게 사와 나누어 주기도 했고 가끔 약이 필요해서 약국에 가고 싶을 때는 나의 부탁을 들어주기도 했다.(시골 마을을 지나는 경우가 많아 약국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하루는 케서린이 너무 고마워 그의 딸 아위나에게 감귤 초콜렛을 줬더니 아위나는 몇 개 먹어 보고는 너무 맛있다며 나에게로 와서 볼에 뽀뽀까지 해주었다. 아위나는 11살의 아이지만 영어도 잘했다. 대회가 끝나고 캠프에서는 가끔씩 아위나와 놀기도 했다.  ‘귀여운 아위나!‘

▲ ⓒ안병식

▲ 체크포인트에는 과일과 음료, 빵이 푸짐하게 있다 ⓒ안병식

 대회 일주일째 벌써 환자들이 여러 명 나타났다. 1위나 2위로 달리던 참가자는 순위 경쟁을 하다 둘 다 발목을 다쳐 레이스를 할 수 없는 상태까지 갔고 며칠 후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번 횡단 대회는 상금이 있는 대회가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 큰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픈 욕심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레이스를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다. 

횡단 대회는 집에서 연습할 때와 다르다. 훈련 할 때는 몸이 지치기나 조금 무리 했을 때 다음 날 쉬어버리면 되지만 여기서는 그럴 수가 없다. 조금만 무리해도 피로가 쌓이게 되고 결국 부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매일매일 긴장하면서 달릴 수밖에 없다.

 1위에서부터 꼴찌까지 아프지 않은 사람들은 없다. 아프더라도 부상을 더 악화 시키지 않고 페이스 조절을 하며 어떻게 끝까지 달리느냐가 중요하다. 이것은 순위와의 경쟁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 프랑스 시골 풍경 ⓒ안병식

▲ 아침 햇살이 비치는 길을 따라 달리는 참가자들 ⓒ안병식

 아침 6시에 출발해서 하루 60-70km를 달려 오후가 되면 하루일과는 끝이 난다. 제한 시간이 오후 늦게 까지라 제한 시간에 맞추어서 들어오는 런너도 있지만 대부분은 오후 2-3시면 레이스가 끝이 났다. 레이스가 끝나면 마을 구경을 하면서 돌아다니기도 하지만 몸이 많이 지쳐있기 때문에 쉬기 위해서 체육관에서 누워 있는 경우도 많다. 나의 경우는 체육관에서 누워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의 레이스가 끝나면 맥주 한 병 정도를 마시기도 하는데 매일 매일 맥주와 와인을 심하다 싶을 만큼 많이 먹는 친구가 있었다.

“안드레! 오늘도 맥주야?”
“나는 맥주를 좋아해”
“도대체 하루에 몇 병이나 마시는 거야?
”2병 또는3병...“

▲ 체크포인트에서 자원 봉사자들 모습 ⓒ안병식

▲ ⓒ안병식

‘누가 독일사람 아니랄까봐‘ 그는 맥주 귀신이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매일 그는 맥주를 마셨다. 그렇게 마시고 달릴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대회 며칠을 남겨 놓고 발목을 다쳤는데 다쳐서도 매일 맥주를 먹었다. 겨우 레이스를 끝마치기는 했지만.....

 300km, 400km, 500km.... 어느새 프랑스 땅의 절반을 달려 600km를 넘고 있었다. 여기서 체크포인트는 10~15km마다 하루 5-6개의 체크포인트가 있고 체크 포인트에는 2~3명의 자원 봉사자가 함께한다. 난 체크포인트에서 음료와 빵 과일 등을 먹고 싶은 만큼 많이도 먹어댔다. 그 결과 하루 60km 이상을 달리는 레이스였지만 체중은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느꼈다. 다이어트를 하려면 운동을 많이 하는 것 못지않게 음식 조절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아무리 운동을 많이 해도 먹는 양이 많아 버리면 살이 찔 수 있다는 것을...

 체크포인트에서의 음식은 거의 같은 메뉴로 반복됐다. 모두가 싱싱한 과일과 음료였지만 매일 먹다 보니 음식이 질리기 시작했다. 가지고 간 라면과 햇반은 며칠 만에 끝이 났고 매일 먹는 빵 보다는 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

▲ ⓒ안병식

▲ 체크포인트에서 빵대신 밥을 챙겨주던 미셀과 마이클 부부 ⓒ안병식

하루는 체크 포인트에서 자원 봉사자로 온 프랑스의 노부부 미셀과 마이클 하고 잠깐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한국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요. 한국 사람들의 주식은 빵이 아니고 쌀이에요. 하지만 여기서는 매일 빵만 먹고 있답니다.”

그들은 그날 그렇게 듣기만 한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 날...

▲ 프랑스 시내 풍경 ⓒ안병식

▲ ⓒ안병식

“Ahn!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인다”
“네 그래요 오늘은 몸이 피곤하지가 않아요”
“Ahn! 우리가 당신을 위해서 특별 음식을 준비했어요.”

‘아니 특별 음식이라니 도대체 무슨 음식을...‘ 그들은 차안으로 가서 접시에 담아 놓은 밥을 가지고 왔다.

“오마이 갓! 세상에나...”

▲ 하루라도 맥주를 마시지 않은면 입게 가시가 돋칠 것 같은 맥주귀신 독일의 안드레 ⓒ안병식

▲ 체크포인트 바구니, 참가자들은 여기에 자신이 먹을 수 있는 특별 음식을 바구니에 넣어뒀다 체크포인트에서 먹을 수 있다 ⓒ안병식

 그들은 나를 위해 정말 밥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어제 내가 했던 얘기를 기억하고 있다가 나를 위해 밥을 준비해 놓은 것이다. 물론 그들은 반찬을 준비해 놓았을 리는 없다. 한국 사람들은 밥 하나만 그냥 먹는 걸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약간은 거칠한 쌀밥을 반찬도 없이 먹는 사이 프랑스 와인 까지 건넨다.

 그리고 그들은 그 다음 날도 또 다음날도 체크포인트에서 나를 위해 밥을 준비해 놓았다. 이번에는 반찬으로 참치까지 함께.... 외국쌀은 한국에서 먹는 밥처럼 윤기가 흐르는 쌀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정성이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동이 트기 전 일어나서 달리고 먹고 자는 게 여기에서 하루의 일상이다. 남쪽으로 향해 달리기 때문에 태양을 바라보며 달리다 보면 하루가 저물어 간다. 매일 반복 되는 일상은 지루함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새로운 풍경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행복했다.

▲ ⓒ안병식

▲ ⓒ안병식

 아시아에서는 혼자 참가한 거라 참가자들만이 아니라 자원봉사자들도 나에게 많은 응원과 관심을 가져주었다. 아빠를 응원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로 함께 온 아위나와 오웬가족. 낯선 이방인 에게 빵 대신 밥을 챙겨주던 프랑스의 노부부 미셀과 마이클, 하루라도 맥주를 마시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칠 것 같은 독일의 안드레. 그 외 에릭, 지비, 테오, 미카엘...

그들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 안병식

* 대회 협찬 : JDC, 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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