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바라만 보아도 아름다운 곳

   

성산항에서 우도도항선을 타면 3.5Km에 달하는 뱃길이 열리고 갑판에서 성산항의 등대와 쪽빛 바다, 바닷내음이 물씬 풍기는 바람에 취할 즈음이면 우도에 도착을 한다. 종달리 앞바다에서 우도를 바라보면 수영을 해서 건너갈 수 있을 것만 같이 가깝게 느껴지는 소를 닮은 섬, 섬에서 섬을 바라본다는 것은 마냥 신비스럽다.

이른 새벽 종달리 앞바다에서 우도너머로 떠오르는 태양을 볼 때면 그 우도의 동쪽 마을에서 해돋이를 바라보고 싶을 때가 있다. 지척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배를 타야 갈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늘 멀게만 느껴지는 작은 섬에 들어갔다. 우도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서빈백사로 향했다.

   

'서빈백사'는 우도의 서쪽 해변의 '흰모래밭'이라는 뜻이다. 그 '흰모래'의 정체는 산호들이다.
아주 오랜 세월동안 산호들이 모이고 모여 백사장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이국적인 분위기로 다가오고 바닷빛을 말할 때에도 그 이국적인 빛깔 때문에 '에메랄드빛'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그 바다의 색깔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며칠 전 북제주군에서는 우도에 꽃을 심어 더 아름다운 섬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단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좋은 우리 꽃들을 다 놔두고 외래종 꽃을 심을 예정이라고 한다. 돈 들여서 천혜의 자연을 망가뜨리는 무지한 탁상행정의 표본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바닷가에서 저절로 잘 자라는 꽃들도 얼마나 많은데 그 이름도 생소한 외래종들을 심어 퍼뜨리겠다는 것인지 답답하다. 아직은 아니지만 외래종이 꽃들이 하늘거리며 피어나면 난 더 이상 우도를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모습 그대로'를 보존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고, 천혜의 관광자원이라는 인식은 천혜의 모습이 다 파괴된 후에나 가능할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빈백사에 앉아 서편을 바라보면 날씨가 좋은 날이면 한라산 백록담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시흥리의 두산봉과 종달리의 지미봉은 날씨가 흐려도 바다에 떠있는 또 하나의 작은 섬처럼 바다에 떠있다.

맨 처음 우도를 찾았을 때 섬을 한 바퀴 돌다가 지미봉을 바라보면서 "저긴 어디야? 참 멋진 곳이네?"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곳이 내가 사는 동네였다니, 저 오름 자락에 내가 잠들고 일어나는 집이 있다니 신기하기만 했다. 그렇게 소중하고 귀한 것이 가까이 있을 때에는 잘 알지 못하다가 먼발치에서 가까이 할 수 없을 때에 비로소 그 소중함의 가치를 아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한계인가보다.

손님들이 오면 우도에 들어갈 일이 많아진다.
손님들과 함께 가면 우도팔경을 구경시켜 준다고 한 바퀴 돌고 나오기 바빠서 건성건성 우도를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 우도여행은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여행길이었다.

서빈백사에 앉아 내가 살고 있는 그 곳을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저 이렇게 한 곳에 아주 오랫동안 앉아서 이런저런 사색의 여행을 하는 맛도 참 좋다.

   

아내는 산호들 틈에 있는 작은 소라들을 줍는다.
딸들 목걸이를 만들어 주고 싶다고 한다는 말을 듣고 나도 산호들 틈에 있는 작은 소라들을 하나 둘 주워본다. 재미있다. 나는 주로 콩보다도 작은 팥 만한 붉은 소라들을 주웠다. 역시 작은 것들이 주는 아기자기한 맛들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다.

그렇게 얼마나 앉아있었을까?
바닷바람을 타고 온 바닷물이 안경을 뿌옇게 만들었다.

산호백사장, 이 백사장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필요했을까? 지금 내가 만지고 있는 이 산호는 내가 살아온 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세월 바다 그 어딘가에서 자라다가 이곳까지 밀려왔을 것이다. 내가 알 수 없는 그 시간을 소유하고 있는 것들과 만나고 있는 순간이다. 행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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