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석 칼럼] 전국민 찬반 양론 '팽팽'…진정 사람의 되는 길은?

이제 초.중등학교의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체벌은 새 학기 수업 분위기를 좌우할 결정적인 요인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진보 성향의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몇 달 전 모 중앙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체벌전면금지가 ‘내 계산과 맞지 않았다’ 고 말함으로서 체벌 금지라는 자신의 철학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그 결정이 성급했음을 인정했다.

이러한 사실은 곽 교육감이 체벌 전면금지 정책을 천명한 이후 아이들이 교사를 희롱하는 등 동영상에 나타난 흐트러진 교실풍경 등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교육과학기술부도 간접체벌만 인정하는 교육법 시행령을 준비 중 이다.

지난 연말 교총 조사 결과 교사의 89%가 “체벌금지 후 교권이 추락했다”고 응답했다. 최근 한 입시교육업체에서 중.고생 2만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학생의 49%가 체벌에 찬성했다. 반대는 40%, 고등학생의 경우 찬성이 55.4%에 이르렀다. 체벌을 받을 당사자인 어린 학생들도 체벌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현실이다. 
 
어떻든 체벌금지 여부를 둘러싼 정책상 혼선으로 곤혹스러워하는 곳은 일선 학교들이다. 몇 달전 한 중앙 일간지가 마련한 자리에서 체벌금지와 관련하여 학생들이 난상토론을 벌였다.

학생 A : (서울시교육청이 체벌전면금지 조치를 내렸지만) 체벌은 사라지지 않았고 교사에게 대드는 아이들 때문에 교실 분위기는 더 나빠졌다.

학생 B : 체벌하는 선생님에게 "때리면 안 되잖아요."라고 했다가 "선생님 말 불이행"이라며 벌점 10점을 먹었다. 벌점이 학생부에 남으니까 차라리 한 대 맞고 쿨하게 끝내는 게 낫다.

학생 C : 선생님이 혼내려 해도 "때려 보세요! 못 때리잖아요."라며 대드는 아이가 있고 "야, 우리도 동영상 찍어야 하는 거 아냐?"라는 말도 한다.

학생 D : 학원에서는 강사가 애들을 때려도 학부모가 반발하지 않는다. 왜 학교에선 체벌이 안된다는 것일까?

학생 E : 교사가 독재자가 아니라 친구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을까? 교사와 학생이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 소통하는 관계로 바뀌어야 한다.

난상 토론에 참가한 학생들의 발언 속에 체벌금지의 문제점이 거의 다 드러났다.

첫째, 제도는 바뀌었는데 사람은 바뀌지 않았다. 지금도 때리는 교사는 계속 때린다. 체벌금지가 면학 분위기를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둘째, 체벌을 대신하는 벌점제는 기록에 남게 되므로 일종의 전과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 기록은 향후 대학 진학이나 취업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교사들의 권위가 떨어졌고 그것은 전반적인 교권 실추로 이어진다. 교사의 권위가 무너지면 교육도 무너질 수 있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넷째, 학교 교사보다 학원 강사가 더 유력한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공교육 보다 사교육이 더 중시되는 사회도 비정상적이다.

다섯째, 아직도 학생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통제와 규제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교사들의 폐쇄적인 마인드가 변하지 않고서는 체벌 금지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서울시교육청의 체벌 전면금지 조치가 내려진 이후, 교육과학기술부는 직접체벌은 금지하되, 간접체벌(신체를 직접 접촉하지 않는 벌)을 허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 주요내용은 ① 간접 체벨은 개별학교가 자율적으로 학칙을 정하되, △ 교실 뒤 서 있기 △ 운동장 걷기△ 팔굽혀 펴기 등이 포함된다.
② 문제 학생에 대해선 1회 10일 이내, 연간 30일 범위 내에서 출석정지를 시킬 수 있고 해당 기간은 학생부에 '무단결석'으로 기록토록 했다.

교육부의 방안도 문제가 없는 게 아니다. '교실 뒤에 서 있기' 같은 싱거운 체벌로 학생들의 반성을 유도할 수 있을까? 오히려 체벌을 즐기거나 냉소적인 태도만 길러줄 수 있다.  사실상 정학인 '출석정지제'야 말로 학생에게는 영원한 주홍글씨가 된다. 더욱이 학생부에 무단결석이라고 기록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무단결석은 담임교사에게 알리지 않고 임의로 하는 결석인데 이런 방종형의 인간을 어느 회사에서 써 주겠는가? 차라리 출석정지의 사유는 합리적으로 기록하는 게 나을 것이다.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체벌의 역사는 인권신장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과거에는 체벌을 권장하던 시절이 있었다. 부모가 서당의 훈장에게 회초리를 전하면서 자녀교육을 부탁했던 때는 체벌이 선(善)이었다. 20세기에 들어 인권에 눈 뜨면서 교육적 체벌만 허용했고, 그때 체벌은 필요악이었다. 21세기에 와서는 체벌금지가 선언되어 이제 체벌은 악(惡)이 되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혼란은 체벌이 악으로 확실히 정착되기 위한 과도기적 시행착오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래의 주역이 될 학생들은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서 인격이 완성되어 가는 존재다. 체벌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다만 현실적으로 교육을 위한 체벌이 일부 불가피 하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거칠고 혹독한 벌도 감내하면서 인격은 무르익어 가는 것이다. 인권만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 됨됨이를 가르쳐 사람다운 사람을 기르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 이러한 일은 영어. 수학 잘 가르쳐 성적 올라간다고 될 일은 아니다. 효율적인 학습법과 과학적인 두뇌 개발법은 일취월장 하는데 정작 중요한 인성(人性)교육은 오히려 그 방향성이 늪 속에 빠져 있는 기분이다. 
 

▲ 고충석 전 제주대 총장ⓒ제주의소리
체벌금지에 대해서는 학부모, 교사, 학생 등 전 국민이 찬반양론으로 팽팽히 맞서고 있어 솔로몬의 지혜로도 풀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미로에 들어섰을 때는 언제나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망아지는 길들이지 않으면 좋은 말이 될 수 없고, 어린 솔은 북돋워주지 않으면 훌륭한 재목이 될 수 없다. 자식을 두고도 가르치지 않은 것은 내다버리는 것과 같다’ 조선중기 실학자 이덕무가 ‘사소절’(士小節)에서 한 말이다. 칸트는 '사람은 교육을 통해 비로소 사람이 된다.'고 했다.

진정 사람이 되는 길은 무엇일가? <고충석 전 제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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