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수 칼럼] 천주교제주교구 복음화실장 고병수 신부

오늘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 국경이 사라져 가고 민족과 종족, 고유한 문화와 언어의 개념이 점차 옅어지고 있다. 하나의 지구촌 네트워크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로써 인류의 공동 번영이란 새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조국과 고향을 떠올리는 것을 진부한 사고로 여기고 실제로 고향을 상실해 가는 추세가 늘고 있다고 하니 매우 안타깝다. 이는 근본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의지가지없는 국제미아 또는 영혼의 방랑아를 만들 뿐만 아니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그 시대의 좋은 점은 취하되, 결코 조국과 고향의 소중함은 잃지 않는 균형과 지혜로움이 요구된다.

일본 오사카에는 유난히 제주도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4.3의 화(禍)를 피해 ‘보트피플’로 천신만고 끝에 대한해협을 건너, 생활고(苦)로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어 일거리를 찾아 온 이들이란다. 그 심정도 애절하건만, 미지의 나라에서 겪었을 수모와 고초를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세월을 더 할수록 고향이 사무치게 그리워 애써 잊으려 손발이 불어터지도록 일을 하고 오랜 타향살이로 혹시나 제주인의 정체성마저 잃을까봐 고향말로 서로를 격려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 결과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과 정신은 늘 고향에 두고 오사카의 이쿠노구에 가장 제주도다운 ‘작은 제주도’를 일구어낸 것이다. 과연 이 같은 원동력은 어디서 나올까.

▲ 제주인들에게 한라산은 언제나 가까이서 품어줄 것 같은 마음의 고향이다. ⓒ제주의소리 DB

 
아마도 언제 어디서든 다가가 안기면 기꺼이 따스하게 맞아줄 어머니 품속 같은 고향산천일 게다. 제주출신에게 있어 고향 제주도는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잊을 수 없고 지워질 수 없는 영혼의 인호(印號)이며 삶의 이유이자 위로와 같다. 이는 자기 존재의 본성 안에 깊이 뿌리박고 있을 터이다.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떼려야 뗄 수 없다. 자고로 부모와 조부모, 윗대 선조들 모두 그렇다. 그래서일까 제주도의 모든 것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뜻 깊은 관심사로 와 닿는다. 가령 제주도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이 국내외적으로 알려져 호평을 받을 때나 제주도의 아들딸들이 여기저기서 맹위를 떨치며 탐라의 기개를 힘껏 들어 높일 때 그 무엇보다도 기쁘고 자랑스럽다. 반면 4.3의 아픈 상처를 누군가 덧내려 할 땐 그 누구보다도 아프고 괴롭다.

여기서 예외인 제주인은 없다. 예나 지금이나 고향 제주도를 아끼고 사랑한다. 물론 앞으로도 그러할 게다. 제주도의 미래는 누가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이 돌과 바람의 척박한 땅을 고르고 막아서 옥토(沃土)를 일구었듯이, 제주인 모두가 힘을 합쳐 개척해 나가야 한다. 우리에겐 인구 1%의 벽을 뛰어넘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고유한 정신과 문화를 갖고 있지 않는가. 이것만 제대로 보존하고 살려도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으리라. 현실적 이익을 빌미로 무분별하게 제주도의 가치들을 훼손하는 일들은 당장 그쳐라. 진정한 국제화와 발전은 감히 세계인이 넘볼 수 없는 가장 ‘제주도다운 제주도’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제주도의 정신과 문화를 지키고 살리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렇거늘 어떤가.

▲ 고병수 신부 / 천주교 제주교구 복음화실장 ⓒ제주의소리 DB
요즘 들어 예전과 달리 제주도의 정신과 문화가 많이 퇴색되어 간단다. 더구나 제주인의 표징인 제주어(語)마저 소실되어 가면서 제주인의 정체성이 빛바랜 유물처럼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와 걱정이 높다. 말인즉슨, 제주도다움이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까놓고 이런 가운데 발전과 성장은 사막의 성(城)과 같고 제주도의 미래비전은 암울할 뿐이다. 이럴 때일수록 지자체, 관련기관과 단체, 도민 모두는 깨어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제주도의 전통문화와 제주어를 지키고 보존하는데 적극 앞장서도록 하자. 그리하여 우선적으로 제주도민의 정체성을 일깨워 제주다움을 회복하고 참된 발전의 토대를 굳게 하자. 이게 우리나라의 보물섬을 넘어 전세계에서 가장 유무형의 가치를 간직한 아름다운 섬으로 거듭나게 하고, 다가올 우리 후손들에게 어디 내놔도 남부럽지 않은 살기 좋고 풍요로운 세계 속의 제주도를 남겨주어 제주도의 기상(氣像)을 영원히 이어질 수 있게 하는 첩경이 아닐까 싶다. / 고병수 신부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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