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이 김홍구, 오름속으로] 폭낭오름, 북돌아진오름
제주에는 폭낭이 많다. 제주마을 어디에 가도 폭낭이 올레에 푸근하게 자리하고 있다. 어찌보면 마을의 터줏대감이다. 내고향 애월, 초가집으로 가는 올레에 폭낭 가지위는 나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그러다 가지사이로 떨어져 한동안 고생하기도 했던 기억도 있다. 여름에는 그늘이 너무좋아 햇볕이 전혀 들지 않아 할망, 하르방이 모여 앉아 사랑방 역할도 하고 어른들은 시원한 막걸리로 한세상을 살아가는 장소였다. 폭이 잘 여물면 대나무로 폭총을 만들어 놀고 가을에 폭이 익으면 맛이 좋아 먹기도 했다. 지금 먹으라면 먹으랴마는 그시절 간식거리가 없는 아이에게는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지금은 폭낭도 추억거리가 되고 올레에 있는 폭낭도 그 추억속에 하나둘씩 없어져 가고 있어 안타까움을 준다.
폭낭은 표준말로 팽나무다. 인가근처의 평지에서 잘 자라는데 줄기가 곧게 서고 클때는 20m 정도로 크기도 한다. 가지가 넓게 퍼지고 봄에 꽃이 피며 열매는 가을에 등황색으로 익어 단맛이 난다.
오르는 길은 완만해서 쉽게 오를 수가 있다. 오르는 길에는 복분자가 많이 있다. 이 길은 소와 말이 많이 다녀 황폐해지고 그 길에 물길이 형성되어 있어 복구를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폭낭오름은 정상에 말굽형굼부리와 남서쪽에 두개의 조그마한 원추형굼부리를 가지고 있다.
이제 완연한 봄색이다. 아직 푸르름은 없지만 봄은 바로 곁에 와있다. 붉게 물오른 가지마다 여러형태의 잎눈과 꽃눈들이 고개를 내밀어 누가 먼저 세상을 향해 나아갈지 도란도란 얘기하고 있는 듯 하다. 모두가 소중한 생명이고 그 생명을 느끼는 소중한 마음이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소통인 것이다. 나뭇가지가 파르르 흔들리고 나비의 날개짓이 느껴질 때 숨을 죽여도 심장소리는 쿵쿵 뛸 것이리라. 폭낭이 있다면 더욱 아름다운 폭낭오름, 하지만 없으면 또 어떠리. 내가 자연에 파묻히면 그만인걸.
김정호시인의 시집 <상처 아닌 꽃은 없다>에 수록된 시가 있다. "팽나무의 전설"이라는 제목인데 그 전문을 보면 <고향집 돌담 위 / 팽나무 여린 가지 하나 / 안마당 이곳저곳 기웃거린다 / 옛 주인을 찾는 것일까 / 아버지 떠난 후 누군가의 손에 / 허리까지 잘려 나간 팽나무 / 하늘을 쳐다볼 수 없어 / 밑으로만 뿌리를 내리는 / 바위가 되는가 싶었다 / 영원히 깨어나지 못한 / 옹이 진 아버지 가슴인 줄 알았다 / 하지만 저 팽나무 / 옹이 진 가슴 수없이 감고 돌아 / 온몸으로 아픈 세월 삭이더니 / 지난봄부터 허리 아래 / 더듬거렸던 시간 비워 내고 / 새로 돋은 저 푸른 기운 하나 / 저것은 아버지의 들 푸른 혼일까 / 아니, 잊혀져 간 우리 집 팽나무 전설이 / 다시 시작된 것인가 >
정상에서의 조망은 시원하다. 동서남북으로 바라보는 자연은 광활함 바로 그 자체다. 바리메, 노꼬메, 다래오름, 폭낭오름, 영아리, 왕이메, 산방산, 새별오름, 그리고 수없이 파도처럼 보이는 수많은 오름들. 산신령이 우리에게 주는 보물이다.
오름은 하늘이 제주사람에게 내려준 절대특혜다. 사람들이 오름에 가고 싶고 자연을 사랑한다면 제주의 오름과 자연을 그대로 둬야 한다. 경제논리로 오름을 평가하고 폄하하지 말라. 자연이 남아 있어야 제주가 살아 남는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진리다. 망가져 가는 오름, 파괴된 곶자왈, 마시지 못하는 지하수, 시간이 흘러 제주의 자연이 사라진다고 상상해 보자. 누가 제주에 머물고 누가 제주에 오고 싶어 하겠는가.
이 근처에도 많은 오름이 상처를 입고 있다. 폭낭오름과 다래오름, 빈네오름, 이돈이,왕이메, 고수치,돔박이가 골프장으로 둘러싸여 시름시름 앓고 있다. 골프장도 자연이 있어야 살아 남는다는 것을 알까.
정상에서 서쪽능선을 따라 내려오는데 소의 주검이 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주검을 보고 오름몽생이는 또한번 생각한다. 제주의 자연도 죽으면 이모양 이꼴이 될터인데 왜그리 자연을 인간중심으로만 보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얼마 전 제주특별자치도 환경자산보전과에서는 1단체1오름 가꾸기 발대식을 하였다. 100군데의 오름을 100개 단체에 위촉하여 시설점검및 환경정비를 민간주도의 자율적관리를 통하여 오름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려 하고 있다. 이것이 자신의 단체이름을 알리기 위함이 아니고 관이 오름관리를 생색내기용이 아닌 진정한 제주오름의 보전을 위한 첫걸음이기를 바란다.
이제 제주의 오름에도 봄이 완연할 것이다. 매화향기넘어 복수초, 노루귀가지천에 흐드러지게 피고 제주꽃 참꽃이 필 무렵이면 제주의 봄은 무르 익을 것이다. 오름을 오르는 사람들도 넉넉한 마음으로 자연을 바라보았으면 하는 오름몽생이의 바람이다.
<제주의소리>
<김홍구 객원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