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충민의 사람사는 세상] 음식 만드는 남자의 따뜻한 이야기

제가 만드는 몸국이야기 하겠습니다. 집 근처에 조그만 식당을 시작한 지도 이제 두 달째 접어듭니다. 올해 1월 15일, 개업을 했으니 지나보면 순간이란 말을 비로소 절감하게 됩니다.

5일 만에 직업병?

처음 식당을 시작할 땐 집에서 즐기던 일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거다 각오는 했습니다. 당연히 힘도 들 것이라 마음도 잡았고요. 그런데 실제로 맞닥뜨린 강도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개업하고 5일이 지난 아침에 일어나니 오른쪽 손가락을 펼 수가 없었습니다. 부랴부랴 정형외과를 가니 X-ray를 찍을 필요도 없이 바로 원인을 알려주더군요. '직업병'이랍디다. 칼질을 계속하고 그릇에 음식을 담는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주방 사람들이 초기에 걸리는 증상이라고 친절하게 의사선생님은 알려주었습니다.

5일 만에 직업병이라면 이제 앞으로 어떻게 주방일을 하나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왜 식당 한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는지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그냥 소리 소문 없이 개업했다, 조용히 문 닫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 말이지요.

그래도 견뎌내고, 단련되더군요.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고, 요령도 생기고…. 처음의 암울했던 걱정에서 조금씩 벗어나 슬슬 재미도 생기더군요. 적당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강철이 단련되는 것처럼 말이죠. 너무 갖다 붙였나요.
  

움트는 새싹 개업때 워낙 추워 선물로 받은 화분의 나무가 죽은 줄 알았습니다. 고맙게도 새순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살아 있었네요.. 봄입니다. ⓒ강충민

넋두리가 너무 길었습니다. 몸국 얘기한다 해놓고 저 혼자 재잘댔습니다.

놈삐썹을 구하라

몸국에 제주말로 '놈삐썹', 즉 무청을 넣으면 참 맛있습니다. 어릴 적 동네에 큰일이 있을 때 끓였던 몸국에는 꼭 무청을 넣었습니다. 약간 쓴맛과 진한 국물과 어우러진 맛이 그만이지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요즘 신선한 무청을 구하기란 정말 힘든 일입니다. 11월에 미리 무청을 구해 준비하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솔직히 거기까지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제가 가입된 시민단체에서 사람들이 저녁을 먹으러 저희 가게에 왔습니다. 진심으로 덕담을 해주었고 어떤 분은 마침 제가 아쉬움을 느끼는 부분 즉 무청을 넣으면 더 맛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 말에 저도 알고 있다고 맞장구를 쳤고, 이 겨울에 신선한 무청을 구하기가 정말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저의 말을 잠잠히 듣고 있던 그분은 잠시 전화를 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무청을 알아보겠다는 말과 함께요. 그러더니 마침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했고, 연결되면 연락해준다고 했습니다. 대신 직접 캐러 가야 한다고 했지만 신선한 무청을 구할 수 있는 것에 비해선 그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었습니다. 식사를 다 마치고 나가면서도 재차 연락해 준다고 했습니다.

데친 무청 얻은 무청을 한 번 데쳤습니다. 약간 쓴 맛도 없어지고 모자반과 어우러져 걸쭉한 맛이 나는 몸국의 귀한 식재료입니다. ⓒ강충민

3일 만에 놈삐썹을 구하다

다음 날 저녁이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손님에게 음식을 내고 있던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무청을 얘기했던 분과 소모임을 같이하는 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전화번호 메모를 하라고 했고 통화해서 방문 날짜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했습니다. 대정에서 농사를 짓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에게 일요일이 식당을 쉬는 날이라 그때 방문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시원스럽게 그렇게 하라 하시더군요.

일요일 오후 각시와 차를 몰고 대정읍으로 갔습니다. 정말 고맙게도 전화를 하자 마을회관 앞으로 직접 마중을 나왔습니다. 아주 가까운 거리라고 하면서 당신 차를 뒤따르라고 친절하게 알려줬습니다.

뒤를 따르는 도중에 각시와 저는 솔직히 무청이 무를 캐고 난 다음에 밭에 나뒹구는 것을 포대에 담아야 되는 줄 알았습니다. 대정 바람 찬 것 각오하자 하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그분의 차를 따라 도착한 것은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비닐하우스였습니다.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자 싱싱한 알타리무가 한가득 심어져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바로 그것을 그냥 뽑아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출하시기를 놓쳐 상품성이 없는 거라고 했지만 제 눈에는 아무 하자 없는 싱싱하고 모양 좋은 잎을 지닌 알타리 무였습니다. 무를 뽑아 올릴 때마다 딸려 나오는 동그란 무가 귀엽고 앙증맞았습니다.

원하는 만큼 캐러 가라고 하시며 그분은 다른 밭으로 가야 한다며 자리를 일어섰습니다.

각시와 저는 무를 쑥쑥 뽑으며 힘이 났습니다. 몸국에 넣으면 참 맛있을 제가 원하던 놈삐썹이였으니까요.

차 트렁크에 가득 싣고 오는데 하우스 주인이신 분에게 고맙다는 전화를 했습니다. 솔직히 어떻게 제 고마운 마음이 전달될지 고민이었습니다.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바쁜 시간을 내서 마을회관 앞에 일부러 와 주셨고, 정성껏 기른 농약 하나 안 친 그야말로 청정무청을 선뜻 내어 주신 것이니까요.
  

냉동시킨 무청 양이 많아 한 번 삶고 지퍼백에 담아 냉동실에 보관했습니다. 하나씩 빼서 사용하면 참 편합니다. 꺼낼때마다 고마운 분들을 생각합니다. 전 정성으로 만드는 것이 보답입니다. ⓒ강충민
 
사람들이 더 따뜻했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각시와 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참 따뜻한 기분이 든다고 했습니다. 무청이 필요하고 아쉽다는 제 한 마디에 제 주위에 분들은 알아봐주고, 전화를 해주고, 시간 약속을 잡아주고 귀한 시간 내주신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정성껏 하우스에서 겨울을 난 신선한 무를 아낌없이 내어 주신 것입니다. 혹여 제가 미안할까 봐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말과 함께…. 저는 누구에게 한 번 신경을 쓴 적 있었는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람들 덕분에 3일 만에 이뤄진 것입니다.

무청을 살짝 삶아 지퍼백에 넣어 냉동실에 차곡차곡 넣었습니다. 한 달은 걱정 없을 넉넉한 양이었습니다. 딸려 나오던 앙증맞은 동그랗고 작은 무는 메밀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전을 부쳐 상에 냈습니다. 조금 알이 굵은 것은 장아찌를 담았습니다.

무청을 넣은 몸국은 비로소 제맛을 찾은 것처럼 더욱 맛났습니다. 그리고 참 따뜻했습니다.
  

내가 만드는 몸국 몸국입니다. 사진으로 찍고 보니 꽤 그럴싸 합니다. 눈맞은배추는 제주의 전통 자리젓갈을 얹어 쌈싸먹으면 참 맛있습니다. ⓒ강충민
 
하지만 몸국보다 사람들이 더 따뜻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주참여환경연대 3월소식지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제휴기사입니다.

<제주의소리>

<강충민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