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경 칼럼] 日오사카에서 온 편지 "어려운 이웃에 마음부터 전해야"

여기는 오사카 입니다. 날씨도 좋고 평온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같은 하늘 밑 저쪽 북쪽은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이런 난리가 없지요. 난리보다 더 큰 난리를 무어라 불러야 할지 그 단어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북쪽 하늘 밑은 저런데 여기는 이렇게 평온해도 되는거야?'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서 TV방송이나 신문 인터넷 뉴스는 일본과 똑 같이 시간차 거의 없이 나가고 있습니다. 일본의 지금의 모습이 한국에서도 바로 보이고 있습니다.

죽은 가족의 시신이이라도 보일까 해서 폐허가 된 살던 동네를 돌아다니는 어느 중년 남자의 인터뷰 모습이 눈에서 영 사라지질 않네요. 넋나간 바로 그 모습이지요.

한 쪽 손에 부인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쪽 손에 딸의 손을 잡고서, 죽어도 놓치지 않으리라고 했지만, 그 쓰나미가 서로 손을 놓게해서 자기만 살아났지만, 가족들 시신도 못 찾게다면서 울부짖는 어는 중년의 모습도 눈에 선 합니다.

흔적조차 없는 집을 바라보면서 '아빠' 라고 소리내면서 울고 있는 어느 아가씨의 그 모습.

▲ 일본 북동부 지진 발생 나흘째인 14일 미야기현 오나가와 폐허 속에서 걸어나오는 한 남성이 애써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AP/뉴시스 제공.

일본은 이제 사망한 사람들의 처리보다, 폐허가 된 동내를 정리하는 것보다,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을 살리는 방법이 가장 먼저 인 것 같습니다. 수도물이 없고 전기가 없고 가스가 없으니 밥을 먹을 방법이 없지요.

어린애가 우유를 달라고 칭얼대고 있는데, 분유는 있으나 뜨거운 물이 없어서 분유를 못 타준다며, 제발 잠 자주기 바래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TV에 비칩니다.

영화에서나 봐야 될 장면들이 아니 이게 바로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본은 멀지도 않은 바로 우리의 이웃입니다. 이웃 집이 이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일본 관광객이 제주도에 얼마나 덕을 주었는데'라는 말은 다음에 하기로 하지요.
'일본이 얼마나 우리에게 피곤하게 했는지'라는 말도 다음에 하기로 하지요.

가장 먼저, 우리가 우리 이웃에게 마음부터 전하기로 합시다. 마음이 있으면 무언들 못하겠습니까. 가장 먼저 살아있는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우리 마음을 전하기로 하지요.

하고 싶은 말 많지요. 그러나 그 말은 다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 신재경

 

 

▲ 신재경 교수 ⓒ 제주의소리
 필자 신재경 교수는 1955년 제주시에서 출생했다. 제주북초등학교, 제주제일중학교, 제주제일고등학교, 한양공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했다. 한일방직 인천공장에서 5년간 엔지니어를 한 후 1985년 일본 국비장학생으로 渡日해 龍谷大學대학원에서 석사·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京都經濟短期大學 전임강사를 거쳐 현재 京都創成大學 經營情報學部 교수로 있다. 전공은 경영정보론이며, 오사까 쯔루하시(鶴橋)에 산다. 오사카 제주도연구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기도 한 신 교수는 재일동포, 그 중에서도 재일제주인들의 삶에 대해 조사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재일동포들의 '밀항'을 밀도 있게 조사하면서 <제주의소리>에 '어떤 밀항이야기'를 연재해 왔다. 또 일본 프로야구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발휘 '신재경의 일본야구'를 써 왔다.    jejudo@nif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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