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이 김홍구, 오름속으로] 영아리
인간이 자연에 압도당한다하면 어떤 느낌일까. 오래 전 산벌른내 중심에 서있는 방애오름에 오르고서 제주자연의 광대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 자연이 풍기는 거대한 힘에 압도당했지만 그 느낌은 지금도 가슴에 맺혀 잊지를 못한다.
영아리, 이 오름에 오르면 그러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거대한 한라산이 좌우에 오름이라는 장수를 거느리고 떡 버티고 앉아 그 아래 자연에 귀의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마저도 넉넉하게 품어 앉아 있다. 그리고 영아리가 제주도 서쪽 한가운데서 그 한라산을 향해 경배하듯 서 있다.
영아리라는 이름이 붙은 오름은 3곳이 있다. 물이 괴어 있지 않다하여 붙혀진 표선면의 여문영아리, 물이 고여 있다하여 붙혀진 남원읍의 물영아리, 그리고 안덕면에 위치한 영아리, 예전에는 이 오름을 오르기가 간단치가 않았다. 지금은 누구나 쉽게 찾아가곤 한다. 오름을 가고자 하는 열정에 오름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오름을 오르는데 복수초(福壽草)와 박새가 막 꽃봉오리와 잎을 내밀고 있다. 복수초의 꽃말은 "영원한 행복"이다. 긴 겨울의 끝에서 눈을 뚫고 올라오는 노란 복수초를 보면서 그 빛깔이 상징하듯 복되고 오래 살기를 바라며 영원한 행복으로 가기를 많은 사람들이 기원하지 않았을까. 박새는 무리를 지어서 자라는데 식물체에 강한 독성이 있어 주의를 해야한다.
빈네오름, 다래오름, 큰바리메, 족은바리메, 이돈이, 큰노꼬메를 비롯하여 삼형제오름과 돌오름까지 이어지는 오름의 맥은 아무리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아직은 긴겨울의 끝자락이 남아 있는 이곳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고민들은 한낱 티끌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게 한라산을 바라보다 한라산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이렇듯 영아리는 호젓하지만 우람하게 다가오는 봄을 맞으며 서있다.
그 서쪽으로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오름들을 보라. 이 얼마나 멋진 광경인가. 원물오름, 감낭오름, 도너리, 족은대비오름, 당오름, 정물오름, 금오름, 돔박이, 고수치, 왕이메, 새별오름, 북돌아진오름, 폭낭오름등등 열거하기도 숨이 차다.
정상에서의 거대한 바위는 영아리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알려줄까, 아니 인간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자연의 존엄성을 안다면 긴시간의 시공을 넘어 존재한 영아리에게 진정 가슴으로 고마워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자연위에 인간이 군림하자는 뜻이다. 오름을 오른다는 것은 자연을 밟고 지배하자는 것이리라. 인간은 자연에 동화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복도 아니고 오르는 것도 아니며 오로지 자연속으로 들어 가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이 주체가 되며 인간은 그저 자연에 잠시 머물다 그대로 남겨두고 나오는 행위를 말한다. 인간은 자연이 존재하여만 살고 그 자연은 인간에게 고맙게 많은 혜택을 준다.
마파람을 막는 마보기가 있는 것이 참으로 이채롭다.
영아리에서 바라보는 남쪽은 저멀리 바다를 바라보는 조망이 좋다. 가까이 어오름과 마보기, 골른오름을 비롯하여 녹하지악, 모라이, 우보오름, 군산, 다래오름, 산방산, 절울이, 바굼지, 모슬개오름, 가시오름과 마라도, 가파도, 형제섬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아름다움을 표현할 말이 없다. 이제 긴 겨울을 이겨내고 새롭게 싹을 틔우고자 봄은 그렇게 노력을 했다. 땅속에 서 가지위에서 하늘에서 바람까지 모두가 봄을 만들고 있다. 자연은 언제나 같은 모습이지만 그들의 법칙에 의하여 조금씩 변해간다. 자연스런 변화, 즉 인간에 의한 인위적인 변화가 아닌 그들만의 변화가 좋다.
<제주의소리>
<김홍구 객원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