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58) 예래동 하예당올레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당올레 ⓒ양영자

올레란 거리 쪽에서 대문까지, 집으로 드나드는 아주 좁은 골목 비슷한 길이다. 거릿길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목의 첫머리는 올렛어귀요, 거릿길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 안쪽에 세운 대문은 올렛문이다. 올레는 우리 집과 이웃집, 자연이 어우러져 이루는 조화요, 생활의 필요, 삶의 방식 등 수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공간이다.

제주사람들은 정초에 이 올레에서 액막이를 겸한 제를 지낸다. 때로는 액을 막기 위해 닭으로 대명(代命)하는 의례를 행하기도 하는데, 이를 ‘올레코(아래아)시’라 한다.

혼인날 신랑이 신부를 맞아들이는 의례도 올레에서 시작된다. 올레에서 마당까지 노람지(짚가리)를 펴놓고 신부가 그 위를 걸어서 들어오면 비로소 마당에서 혼례가 시작된다. 영화제 때 치장한 여배우들이 레트카펫을 밟으며 들어오는 것은 이 의례에서 영감을 얻었거나 공동 발상에 의한 의례로 보아도 무방하다.

근래 올레 걷기가 대유행하면서 주변 풍광이 아름다운 길은 모두 올레라고 불리고 있다. 서울 남산의 산책로를 따라 운동하며 걷는 사람들이 “힘들게 제주 올레를 걷느니 남산 올레라 생각하고 걷자.”고 하는 말을 귀동냥한 적도 있다.

제주말 올레가 확실하게 수출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진정 제주의 참 올레를 알고 싶은 사람은 ‘당올레’에 가보라. 당의 이름 자체가 ‘당올레’이고, 따라서 당올레가 소재한 지경 일대 또한 ‘당올레’이다. 그러니까 하예리 본향당에 가고 싶으면 ‘당올레에 있는 당올레’로 가야 하는 것이다.

당올레의 올레는 검은 먹빛을 머금은 돌담이 단아한 모습으로 서 있고, 그 돌담 사이를 이끼가 메우며 세월의 흔적을 보태고 있다. 올레를 만끽하며 걸어 들어가면 밀감 과수원 안에 아담한 당집이 들어서 있다.

당올레 당은 상예리와 하예리 사람들이 공동으로 다닌다. 상예리의 전신당, 족다리당, 하예리의 망밧할망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이 당에서 함께 만나 생활과 신앙을 공유하는 것이다.

당올레 당신은 옥황상제의 아들로 귀양을 와서 예래리의 으뜸으로 영을 받아 좌정하여 상당골, 중당골, 하당골을 두고 만민자손들을 보살펴 주고 있다. 당신의 자손들은 정월대보름 신과세대제, 8월 15일 마불림대제를 대잔치로 올려 복을 달라고 기원한다.

과거에는 큰굿을 많이 했는데, 아무나 굿을 할 수 없고 문서를 갖춘 큰심방만이 굿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큰심방이 죽고 매인심방을 맬 수 없게 되면서 당골이 점차 줄어들었다. 현재는 당골이 20여 명 정도 된다.

본향당신은 여러 차례 도난당하는 수난을 겪었는데 근래 나무를 깎아서 다시 당신을 만들어 앉히고 고운 옷도 입혀드렸다. 서귀포시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양영자

*찾아가는 길 - 예래동 입구 2.5㎞ 이동 → 예래초등학교 서쪽 군산 방면 700m → 과수원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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