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아시스를 찾아서] 고비 사막에서 자원봉사 하기

▲ ⓒ안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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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중국 고비 사막 마라톤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하게 됐다. 사막마라톤 대회에는 약 20여명의 자원 봉사자가 활동하는데 그 외에도 선수와 스텝, 미디어 팀, 메디컬 팀 등으로 나뉘어서 대회가 진행된다.

 사막마라톤에서 자원 봉사자는 의료 자원봉사자와 일반 자원 봉사자로 나뉜다. 의료 봉사자는 말 그대로 각 체크포인트에서 참가자들의 건강상태라든가 크고 작은 상처들을 치료한다. 일반 자원 봉사자들은 CP(체크포인트)에서 물 보급, 기록 체크, 깃발을 회수하는 수위퍼(Sweeper) 역할 등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스텝과 선수들을 돕는 일을 하게 된다.

 자원 봉사자들도 선수들처럼 모든 음식과 장비를 가지고 와야 하고 달리지만 않은 뿐 참가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자원봉사자를 신청하면 참가비를 받지 않고 대회 측에서 숙박을 해결해주기 때문에 큰 돈을 들이지 않고 사막을 여행할 수 있으며 세계 각국의 자원봉사자, 선수들과 친구가 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지원해 경쟁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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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회 측에서는 영어 능력, 선수참가자들의 가족과 사막에서 선수로 참가했던 사람들을 우선시해서 자원봉사자를 뽑는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열려있기 때문에 관심을 가진다면 사막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사막여행을 할 수 있다.(나는 이미 많은 사막 레이스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발됐다.)

 이번 대회는 중국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톈산 산맥의 동쪽 투루판(Turfan) 지역에서 열렸다. 중국의 고비사막마라톤은 2003년에 대회가 시작된 이후로 매해 대회 장소가 바뀌면서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갈 때마다 새롭고 매해 찾아가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이번 대회 참가자는 세계 20여 개국에서 150여명이 참석했고 난 자원봉사자 16명 중 한 명이었다.
 
 대회 3일째. 영화 ‘서유기‘가 촬영 되었던 플래밍 마운틴(Flaming Mountain-’불타는 산‘을 의미하며 다른 지역보다 굉장히 더운 지형이다.)이 있는 지역이다. 대회 첫날은 해발 2,000m의 지역에서 시작돼 날씨가 쌀쌀했지만 대회가 진행 될수록 해발 고도는 점점 더 낮아지고 태양은 더 뜨거워져 갔다. 바람까지 잔잔해지면서 5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도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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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캠프에 있는 피니쉬 라인에서 일을 했다. 오전에는 여유가 있었지만 오후에 참가자들을 위해 물을 가지고 가야 한다는 연락이 왔다.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니 마지막 남은 몇 명의 참가자가 물이 부족해 레이스를 할 수 없을 만큼 지쳐 있는 모양이었다. 마지막 체크포인트에서 캠프까지는 차량이 들어 갈 수 없는 곳이라 (이런 경우는 드물지만)자원봉사자가 직접 물을 배낭에 매고 가져가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오늘은 날씨도 덥고 코스도 힘들어 레이스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회 참가자 중 한 명이 쓰러져서 병원으로 실려가 대회 측에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뜨거운 날씨도 문제지만 사막에서는 스스로 몸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배낭에는 내가 가지고 갈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물을 집어넣었다. 7리터가 넘는 물이었다. 무거웠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 달릴 수밖에 없었다.(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있지만 나에게 맡긴 이유이기도 하다.) 마지막 주자가 있는 곳으로 가면서 물이 부족한 러너들에게는 물을 나누어 주었다. 1시간을 넘게 달려 마지막 참가자가 있는 곳에 도착해보니 그는 초췌한 모습으로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다행히 대회 측의 배려로 의사와 같이 있었지만 물이 없었고 날씨도 너무 더워 그는 많이 지쳐 있었다. 그는 물을 가져온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번 했다.

 사막 레이스에서는 스스로 몸 관리를 하는 게 중요하다. 자신의 한계를 오버해서 달려서도 안 되고 음식과 물도 충분히 보충 해주어야 한다. 이번 경우는 마지막 체크포인트에서 물을 많이 챙겼지만 날씨가 많이 덥다보니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물이 부족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었다. 마침 대회 차량도 갈 수 없는 곳이어서 물을 공급할 수 없는 상황이라 직접 물을 짊어지고 가지고 가는 상황이 되어 버렸던 것이었다.
날이 저물어 갈 때 쯤 마지막 주자와 같이 걸으며 피니쉬 라인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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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회 5일째 100km를 달리는 롱데이. 오늘은 뉴질랜드의 토드와 메디컬 자원봉사자로 온 미국의 줄리에와 함께 짝을 이뤄 CP 7에 지정 받았다. 롱데이는 1박 2일로 진행된다. CP 7은 사람들이 잠을 잘 수 있는 텐트와 뜨거운 물을 공급해주는 곳이라 롱데이 체크 포인트 중 가장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곳이다. 잠도 자지 못하고 다음날 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토드는 부인이 선수로 참가해서 자원 봉사자로 함께 오게 됐다. 토드는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그의 부인이 한국에서 1년 넘게 머물렀던 경험이 있다는 인연만으로도 토드와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미국에서 온 줄리에는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는지 옆에 있는 사람들이 미안해서 쉬지도 못할 만큼 참가자들을 돌봐 주었다. CP 7은 70KM 가 넘는 지점이라 물집환자들이 많아 줄리에는 아침 해가 뜨고 마지막 러너가 도착할 할 때 까지 한 숨도 자지 못하고 환자들을 치료해 주었다. 얄팍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나는 적당히 일을 하면서 요령도 부리고 싶었지만 같이 있는 친구들이 너무 열심히 일을 해서 나까지 고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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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아 좀 쉬면서, 놀면서 하자고!’ 마음속으로는 수도 없이 외쳤다.

 새벽 3시. 아직도 참가자들은 많이 남아 있었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너무 열심히 일을 한(!) 우리도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잠을 자기로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토드와 줄리에가 나보고 먼저 잠을 청하라고 했다. 너무 많이 피곤하고 잠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상황이라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았다.

 20분쯤 잤을까. 한 참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가려고 할 때 토드가 깨웠다. 이번 대회 오너인 메리와 대회 측 관계자들이 우리가 있는 체크포인트에 찾아 온 것이다. ‘아! 하필이면 이때에.’ 잠을 더 잔다고 뭐라고 하지야 않겠지만 이 상황에서 어떻게 더 잠을 잘 수 있을까. 난 잠에서 깨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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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후 메리는 나에게 야광봉(밤에는 참가자들이 야광봉을 보면서 달린다)이 없는 곳이 있으니 가서 설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약 7km 정도를 가야 하는데 자원봉사자들 중에서 (체력이 강한)내가 가장 적당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에 야광봉을 배낭에 매고 홀로 달리기 시작했다. 헤드랜턴을 켰지만 밤이라 빨리 달릴 수도 없는 상황이고 왕복으로 2시간은 넘는 거리였다.

 사막에서의 자원봉사자는 참가자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때론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참가자들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 온 일주일 동안 난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을까? 참가자들에 대한 봉사보다는 사막을 즐기며 여행을 하고 있다는 마음이 더 강하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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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2시간이 넘게 달리며 야광봉을 설치하고 돌아오는 길. 날은 어느새 밝아 오고 있었다. 그동안 선수로만 참가하다 자원봉사자로 일을 하니 참가자들만이 아니라 대회 관계자와 자원봉사자들이 선수들을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는 지 알 수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여기에 참가해서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고, 참가자들을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지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마음은 부끄럽지 않을 만큼 뿌듯한 하루였다.(밤을 샜으니 이틀이다.) / 안병식

* 대회 협찬 :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JDC, 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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