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60) 화순리 하강물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하강물 ⓒ장혜련

여름, 피서의 계절이다. 화순리는 바다의 풍광과 물이 좋아 피서지로 유명하다. 소나기가 한 차례 흩뿌리고 지나간 시간인 오후 4시경이었다. 소나기로 시원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피서객들을 보며 여름의 절정임을 실감한다.

제주를 찾는 사람들 중에는 바다 짠물 옆에서 퐁퐁퐁 잘도 솟아오르는 민물을 보며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 바로 용천수이다. 용천수는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흐르다 해안가 지역에서 땅위로 솟아나는 물을 말한다. 용천수 중 하나인 하강물은 엉덕물과 개물 등 세 개의 물이 합류하여 강하게 솟는다고 해서, 또는 당 아래 있는 물이라 하여 그 이름을 ‘하강물(下强水)’이라고 한다.

하강물은 물이 세찰 뿐만 아니라 수질이 좋기로도 유명하다. 물을 찾아 그곳에 도착하니 60대로 보이는 여성이 무언가를 열심히 씻고 있었다. 바퀴 달린 운반용 카트에 채소며, 옷가지들 그리고 설거지 감을 들고 와 민첩하게 움직이며 씻고 있었다. 손놀림이 크고 소리가 요란하다. 사람이 가도 아는 척도 안 하는 걸 보니 화가 단단히 난 듯했다. 말을 붙여볼까 하여 한참을 옆에 앉아 있자니 관광객들 소리가 자연스럽게 들려온다. 지척에 있는 해수욕장에서는 ‘살 맛 난다’고 ‘일상의 탈출’이라고 아우성인데 마을사람들에게 이공간, 화순리는 오늘도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야 하는 일상의 공간이다. 오늘도 계속되어야 하는 삶이고 일상이다 보니 신세한탄이 절로…….

옛날 이 물을 찾았던 제주여성들이 떠오른다. 삶이 어찌 좋은 일만 있더냐. 시름에 겨우면 빨래감을 잔뜩 들고 와 물 흐르는 소리에 근심을 흘려보내기도 하고 빨래 방망이 두드리는 소리에 걱정을 떨쳐 버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일상을 이어갔을 것이다. 그래서 그 마을에 좋은 물, 살아 있는 물이 있다는 것은 다른 마을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일이기도 했다. 심지어 옆마을 덕수리 사람들도 빨래하러 이곳으
로 다녔다고 한다.

하강물은 물이 좋을 뿐 아니라 언제나 힘차게 흘러 그 위세가 당당하다. 하강물의 구조는 크게 네 칸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는 식수, 두 번째는 채소 씻는 곳, 세 번째는 빨래, 네 번째는 허드렛 물로 쓰인다. 요즘도 마을여성들이 빨래며, 채소거리를 많이 씻어야 할 때는 이 물을 즐겨 찾는다.

이곳의 관리는 특별히 정해진 사람이 없으며 마을사람들이 돌아가며 청소한다. 이런 정겨운 장소가 있어 좋겠다고 하였더니 하강물은 ‘살아있는 물’이라서 썩지 않는다며 은근히 자랑했다. 하강물 입구에는 이 물을 잘 정비해 주었던 박종렬의 공덕을 기리는 불망비가 세워져 있다. / 장혜련

* 찾아가는 길 - 화순리 화순해수욕장 주차장 삼거리 방향으로 100m에 위치

<본 연재글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엄격히 금지합니다. 본 연재글의 저작권은 '제주발전연구원'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