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들의 추석 명절은 '8.15 광복절'...왜?
재일동포들의 추석 명절은 '8.15 광복절'...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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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그들은 누구인가] 재일동포들의 관혼상제
음력 달력 구하기 어려워...명절.제사, '양력'으로 지내

동포들의 관혼상제는 한국에 비해서 상당히 합리적이다.

한국에 있는 친지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부조돈 때문에 못 살겠다' 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일본에서는 '인사는 있어도 부조는 없다' 라고 표현을 할 정도로 합리적이다. 부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처럼 부조가 부조를 부르는 그런 부조는 없다. 꼭 알리고 싶은 곳만 알리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짐이 되게 하지 않고, 또 본인도 짐을 질려고 하지 않는다. 부조를 받기 위해서 통장번호를 알리는 일은 있을 수 없으며, 제주도에 있는 겹부조는 존재치 않는다. 겹부조를 설명해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이 곳에선 부조는 본인의 짐으로 생각한다. 일본사람들의 기본은 항상 가볍게 살려고 한다. 타인이 만든 짐을 진다는 것을 싫어한다. 이런 일본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동포들도 짐을 가볍게 하며 살려고 한다.
일본사람들은 관혼이건 상제이건 받은 부조의 반 이상은 꼭 답례를 해야 한다는 철칙이 있다. 이번에 받아서 다음번 그집에 무엇이 생겼을때 갚는 다는 것이 아니라, 이번 받은 부조에서 반은 답례로 보내고, 또 받은 인사는 짐으로 생각해서 가지고 있는다. 그러니 보조를 받아도 크게 남지 않고, 짐만 남게 된다. 그럴바에야 꼭 알려야 될 곳만 연락하고 너덜하게 여기저기에 연락하는 일이 없다.

일본사람들은 부조라 해도 덩치가 크지 않다. 오히려 덩치는 일본사람들보다 동포들이 좀 큰 편이다. 동내에서 상이 났다. 반장이 부조돈을 모으러 다닌다. 이런 동내 부조는 5백엔이다. 좀 있으면 답례로 몇백엔짜리 무엇을 돌린다. 이것이 일본사람들의 보조이다.

부조를 받지 않는 상가도 있다. '인사는 있으나 부조는 없다' 라고 말 할 수 있는 경우이다. 사람이 죽었기에 고인과 가까었던 친구들도 있고, 장례식에 참석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참석은 자유이지만 가족들이 부조는 받지 않겠다는 집이 있다, 이런 선언을 하게 되면 일체 받지 않는다. 향을 올리고 돌아올려면 답례로 몇백원정도의 답례품까지 있다. 어떤 상가는 향을 올리고 돌아서는 자리에서 봉투를 주는 것이다. 그 속에는 천엔짜리 상품권이 들어 있었다. 여기까지 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히 생각하고 있으며, 또 여기까지 올려니 차비도 들었겠지요. 작으나마 이것으로 교통비라도, 라는 의미이다.

직장이나 모임에서 누가 사망하면 얼마라는 규정이 있는 경우가 있다. 부조를 받지 않겠다는 상가에 가서, 이 규정의 부조를 접수 시키려면 한참 설명해야 한다. 이런 경우 보조를 책임져야 될 총무는 고심을 하게 된다. 그 부조돈으로 꽃이나 화환을 하는 경우도 있어, 어떻게 처리를 해야 아주 잘 처리가 될까 고민하는 것이다.

이런 일본사람들의 영향으로, 동포들의 보조는 합리적이다. 옆에서 일본사람들이 하는 것을 봐 왔고, 또 친구중에는 일본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 일본의 결혼식 풍경. 크리스교 식으로 식이 올려지고 있음을 알수 있다. 목사는 외국사람일것이다. ⓒ신재경

<결혼식>

동포들의 결혼식은 형태 및 장소 등은 일본식이다. 그러나 결혼식 내용은 한국식이 많이 가미되어 있다. 일본사람들의 결혼식은 결혼식과 피로연이 구별돼 있다. 당일 날 결혼식과 피로연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같은 날이라도 식은 먼저 엄숙한 곳, 교회나 식장에서 올리고 난후 피로연을 한다.

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가족이거나 친척 친구라도 아주 친한 친구로 한정돼 있다. 식을 올리는 식장은 아주 좁다. 일본사람들은 크리스찬이 아니라도 식의 주례는 목사를 불러오는 경우가 많다. 그 주례를 보는 목사는 일본사람도 있지만 서양사람들이 더 많다. 서양사람이 주례로 식을 올리면 그 식이 더 빛나는 것같이 보여서 일까? 이런 농담을 한 적이 있다. 저서양인 목사 진짜 목사? 혹시 아르바이트 목사 아닌가? 라고. 아르바이트라도 목사라면 좋으려만 목사도 아닌 서양인을 올려 놓은 건지 모르겠다는 질문이다. 확답은 없었다. 그러나 진정한 크리스찬은 자기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 와서 식을 올리거나 성당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동포들은 한국식으로 덕망있는 분을 모셔다 주례를 보게해서 식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이때 일본 결혼식장에는 보통 십자가가 걸려있다. 크리스찬 식으로 결혼식을 올린다면 십자가가 문제시 될 것 없지만, 한국식 주례로 식을 올리는 경우는, 십자가가 싫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크리스찬이 아니니 십자가를 내려 달라면 내려 준다.

결혼식 피로연에는 부조를 필히 준비해야 되고 잘받는다. 안받겠다고 선언한 집은 이제까지 없었다. 보조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할 정도라면, 피로연을 하지 않고 신랑신부 혹은 가족만 어디에 가서 식만 올리고, 후에 글로서 결혼식 했다고 연락하는 경우는 있다. 가끔 엽서가 온다. 결혼식 사진이 있는 엽서이다. 어디어디(주로 외국, 외국인 경우 하와이가 많음) 에서 저희들 끼리만 식을 올려서 엽서 사진으로 인사를 올립니다, 라는 내용이다. 일본 국내에서도 양가 가족들끼리만 모여서 식을 올리고 피로연 없이 끝내는 경우도 이런 엽서로 인사를 한다. 칭찬 해 주고 싶다. 결혼식 한다고 오라가라는 말도 없이 복잡한 것에 머리 써야 될 필요도 없이, 알아서 잘 해주었다. 거창하게 식 올리고 나중에 이혼하는 것보다, 주변에 불편 끼침도 없이 아주 편안하게 잘 했으니 칭찬해 주어야 한다.

예전 동포들이 결혼식 피로연은 중국집에서 많이 했다. 일본에서 동포들이 제일 많이 살고 있는 곳은 이쿠노구(生野區)이다. 여기서 제일 큰 역이 쯔루하시(鶴橋)역이다. 이 쯔루하시 역에서 시내쪽으로 한 역을 더 가면 우에혼마치(上本町)라는 곳이 있으며, 오에혼마치(上本町)라는 역도 있다.

이 역에서 가까운 곳에 난까이 한텐(南海飯店, 남해반점) 이라는 중국 요리집이 있다. 1·2층은 일반손님을 받는 식당이지만 그 윗층은 피로연 전용이다. 이 '난까이 한텐'에서 결혼식 피로연을 많이 했다. 오사카에 살고 있는 동포들 중에서 '난까이 한텐'을 모르는 동포는 없다. 또 누구도 몇번씩은 잔치 먹으러 갔다 왔다. 왜 우리 동포들은 중국요리집에서 피로연을 하느냐는 질문에는 고참 선배님들에게서 명확한 대답을 들을수 없었다. 그런데 중국 요리집에서 피로연을 많이 한다.

▲ 가끔씩 결혼식 했다는 엽서. 오라 가란 말없이, 이렇게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해주면 참 착하기도 하다. ⓒ신재경

몇시부터 잔치라고 해서 시간에 맞추어 잔치 먹으러 간다. 한 테이블에 약 10여명, 몇십 테이블이며, 2∼3시간의 잔치이다. 높으신 분의 축사가 있고, 친구들 친척들의 축사에 또 노래가 있고, 가라오케가 있고, 춤도 나온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난가이 한텐'으로 잔치 먹으로 오라는 전갈은 없다. 그 건물이 헐려 있다. 시내 어디라고 찬치 먹으러 오라는데 가서 보니 중국집이 많았다.

일본 결혼식 잔치에는 피로연 출석을 꼭 연락해야 한다. 청첩장속에는 참석하겠다는 연락용 엽서가 들어 있다. 이 연락용 엽서를 보내야 내 자리가 있다. 이 엽서를 보내지 않으면 내 자리도 없다. 피로연 하는 장소를 봐서 부조돈을 결정해야 한다. 유명 호텔에서 피로연을 하니 '얼마' 이고, 피로연 전문 회관에서 하니 '얼마' 라는 공인된 금액이 있다. 이 액수보다 적은 금액을 담으면 실례가 된다. 오히려 참석치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결혼식 피로연은 상대가 한국사람이냐 일본사람이냐에 따라 하는 식순 및 내용이 달라진다. 상대가 일본사람이라면 아무래도 한국식 풍습이 적어진다. 신부는 피로연 중에 옷을 3번쯤 갈아 입니다. 웨딩드레스에 양장에 한복이 들어간다. 어느쪽이 한국 사람이거나 양쪽이 한국사람이라면 필히 한복은 한 번 입는다.

결혼식에 참석하는 가족 및 하객 중에서 한국사람이라면 여자들은 전통 한복을 입는 경우가 많다. 일본사람이라면 일본 기모노를 입는다. 그래서 쯔루하시(鶴橋)에는 우리 한복집이 성업중이다. 한국에서 만든 한복보다 더 예쁘다.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할려면 남자들은 꼭 예복을 입는 것이 보통이다. 예복이란 검은색 양복이다. 검은색 넥타이는 하지 말아야 한다. 흰색이나 화려한 색의 넥타이를 많이 하고, 검은색 넥타이는 장례식때 이다. 양장의 여자들은 있는 단장 없는 단장 다 하고서 결혼식에 나가게 된다. 여자들은 결혼식 피로연에 나가게 되면 옷 때문에 고민이라는 소리를 곧잘 듣게 된다. 어떤 옷을 입어야 더 이쁘게 보일까 고민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또 부조를 넣는 봉투도 결혼식용 봉투를 써야 한다. 장례식용 봉투에 결혼식에 쓰게 된다면 이건 완전 무엇이 되고 만다.

제주도 출신 동포들은 '가문잔치'라고 한다. 결혼식 전날 집에서 잔치를 한번 한다. 피로연에 참석치 못할 사람은 이 가문잔치에 참석한다. 당연히 가문잔치의 부조는 피로연 부조보다 훨씬 적고, 청첩장도 없고 또 연락용 엽서도 없다. 부모의 가까운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잔치 먹으러 간다. 한국식 제주도식 잔치집과 비슷하다. 요즘에는 이 가문잔치도 없는 경우도 있다.

▲ 일본의 어느 공동묘지. 묘지 뒤로 보이는 건물이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 건물. 밤에 퇴근 할려면 으시시함을 느끼곤 한다. 여학생들은 더 느낄 것이다. 일본의 묘소는 사람이 사는 공간 바로옆에 있다. 사자(死者)와 생자(生者)가 서로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느낌 ⓒ신재경

<장례식>

일본사람들의 장례식을 봐 보자.

사람이 사망하면 장의사 회사에서 견적을 받는다. 그것도 한 곳에서만 받는 것이 아니라 두세 군데에서 견적을 받는다. 장의사도 비즈니스화 되어있다. 특히 치장에 돈이 많이 든다. 돌아가신 분의 사진이 있고 관이 있고 그 주위에 여러가지 꽃, 과일등 치장을 하게 된다. 고급스러울수록 그만큼 비싸진다.

또 주의해야 될 것은 집에서 사망하면 꼭 경찰의 부검을 받아야 한다. 경찰에서 와서 시신을 모시고 경찰로 가져가 버린다. 필히 의사의 사망진단서가 있어야 된다. 병원에서 사망하면 의사의 사망진단서가 바로 발행이 되어 경찰까지 갈 필요가 없지만 집에서 사망하면 반드시 경찰행이다.

한국에서는 병원에 입원을 해서 돌아가실때 쯤에는 집에서 편안히 ‘돌아가십시요’ 라는 의미로 집으로 모시는 경우가 있다. 일본에서 이런 경우는 돌아가신 분이 경찰까지 갔다와야 된다. 그러므로 돌아가셔서 경찰에 갔다오지 않으려면 꼭 병원에서 숨을 거두어야 된다.

장례는 보통 3일장을 한다. 장례식은 집에서 하는 경우도 있고 마을회관에서 하는 경우, 또 전문적으로 장례식장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전문적인 장례식장은 교통편이 좋아 조문객이 찾아오기 좋은 곳이며, 가격도 비싸다.

장례 절차는 장의사에서 전부 보아주니 우왕좌왕 할 필요가 없다. 또 전문 어드바이저라는 사람이 상주에 붙어서 여러가지 자문을 해주니, 한국의 나이드신 어른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일본의 관은 한국과 틀린 것이 하나 있다. 관의 윗뚜껑중 얼굴 부분이 유리 등으로 되어 있어 고인의 얼굴이 보인다.

▲ 우리 동포의 산소(池씨 집안의 산소) 이다. ⓒ신재경

장례식의 전날(보통 돌아가신 날 다음날)에는 전야제(通夜, 통야)라는 의식이 있다. 식단 앞에 고인을 기리며 같이 밤샘을 하자는 의식이지만, 식 자체는 저녁에 행해지며 약 1시간정도로 끝이 난다. 스님이 와서 독경을 하고 그후에 상주부터 친척의 순으로 분향을 한다. 그후에 일반 조문객들이 분향을 한다. 조문객은 보통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하고 가면 된다. 아주 바쁠 경우 즉 갑자기 연락을 받았을 경우는 검은 양복을 입지 않아도 전야제에는 문제가 없다. 또 크리스찬이 아니라면, 염주를 가지고 가야 된다.

이때부터 프로의 사회자가 붙어서 사회까지 보아주니 엄숙하기는 하지만 속 없는 엄숙이라고 할까. 학교의 졸업식과 같은 느낌이다. 이 전야와 장례식 풍경을 비디오 테이프에 녹화를 하고, 단체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졸업식과 큰 다름이 없다.

돌아가신 다음 다음날(즉 3일째)은 장례식이다. 보통 낮에 행해지며 식 자체는 전야제(통야)와 다를 바 없다. 프로의 사회자가 있고, 장례식의 마지막 순번으로는 관을 열고 마지막으로 고인의 얼굴을 보며 이별의 의미로 상주부터 친척 및 친지의 순으로 관속에 꽃을 넣는다. 이 절차가 끝나면 영구차에 실려져 화장장으로 향하게 된다.

화장장에 도착해서 불 속에 들어가기 전에 관의 윗부분을 통해서 고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며 이별하고 손을 모아 명복을 빌고 난 후에는 곧 시신은 화장하게 된다.

약 2시간쯤 후에는 고인이 완전히 바뀐 모습으로 들어간 그 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게 된다. 나온 후에는 화장장에 간 사람들이 전용 젓가락을 들고서 뼈를 하나씩 단지속에 놓고서 단지를 들고 집으로 향하게 된다.

▲ 이쿠노(生野區) 가톨릭 교회 성당안에 있는 유골 함. 미사를 보는 성당 바로 옆에 유골이 모셔져, 신자들은 일요일날 미사도 보고 돌아가신 분도 볼수 있다. ⓒ신재경

집에 오게 되면 49제까지는 집에서 모시게 되며, 7일에 한번씩 스님이 와서 독경을 하게 된다. 49제가 되는 날은 한국이라면 탈상을 하는 셈이다. 시신을 모시고 절로 가게되어 절에서 산소의 장만이 될 때까지 당분간 있게 된다. 무성의한 자식들은 그 절에서 몇년씩 있게 되는 경우도 허다한 것 같다.

그러면 장례식 비용은 얼마나 들까? 간단히 통계를 내기는 어렵지만 보통은 100만 엔∼300만엔 정도가 든다고 한다. 노인들이 돈을 모아 두면서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내가 죽으면 이 돈으로 장례식 비용을 하라”고.

일본 불교를 장례식 불교라고 말하고 있다. 절의 수입중 상당부분은 장례식 관계에서 얻고 있어서, 그런 단어가 나오게 되었다. 일본은 크리스찬이 개신교와 가톨릭을 합쳐서 인구의 1%에 불과하다. 재일동포들의 장례식도 거의 일본식으로 하고 있다. 장소가 한국 절이거나 부르는 승려가 일본 승려가 아니라 한국 승려를 부르는 정도만 다르다.

그외는 거의 일본식 풍경이고, 전야가 끝난 후 상가에서 술을 준비하는 집도 있다.

▲ 大阪 善光寺 안에 있는 유골을 모시는 곳. 저기에 계신 유골은 거의가 우리 동포. 저기에 저렇게 있다가 산소로 옮겨진다.ⓒ신재경

<제사와 명절>

동포들의 명절과 제사는 하는 날짜가 한국과 달라지고 있다. 양력으로 하는 집안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 달력에는 양력은 있지만 음력은 없다. 우리의 제사는 음력으로 한다. 그러나 일본 달력에는 음력이 없다. 음력을 알기 위해서 한국 달력을 어디에서 구해 와야 한다.

명절은 양력으로 한다. 1월 명절은 구정이 아니라 신정으로 한다. 달력에 음력이 없기에 음력 구정날은 어느 날인지도 모른다. 또 휴일도 없다. 휴일이 없으니 아침에 명절을 하고서 출근을 해야 한다. 여간 어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정월 명절도 또 추석도 양력으로 하는 집안이 대부분이다. 추석 명절은 양력 8월15일 광복절 날이다. 이날이 동포들 추석 명절을 지내는 날이기도 하다.

▲ 오사카 젠고우지(大阪 善光寺) 일본 절이나, 이쿠노구 중심에 있어서 우리 동포들의 장례식에 많이 이용하는 사찰. 오사카에 살려면 저 사찰에 몇번은 장례식 참석을 해야 한다.ⓒ신재경

제사 지내는 날짜가 변하고 있다. 1세들은 한국에서 배운데로 음력으로 한다. 2세쯤 되면 아버지가 지내던 제사는 음력으로 하지만 점차 양력으로 변한다. 그런데 양력에서 또 변하고 있다. 양력 제삿날이 주중이라면 주말로 바꾸어 하고 있다. 제삿날과 가장 가까운 토요일 날 저녁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지금 이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편하게 지낼수 있는 날로 변하고 있다. 그렇게나마 제삿날을 잊지 않고 지낼려고 하고 있는 그 점이 대단하다.

돌아가신 분도 본인이 하던데로 그 날을 찾아서 제사를 지내는 집으로 찾아 올 것이다. / 신재경

 

 

▲ 신재경 교수 ⓒ 제주의소리
 필자 신재경 교수는 1955년 제주시에서 출생했다. 제주북초등학교, 제주제일중학교, 제주제일고등학교, 한양공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했다. 한일방직 인천공장에서 5년간 엔지니어를 한 후 1985년 일본 국비장학생으로 渡日해 龍谷大學대학원에서 석사·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京都經濟短期大學 전임강사를 거쳐 현재 京都創成大學 經營情報學部 교수로 있다. 전공은 경영정보론이며, 오사까 쯔루하시(鶴橋)에 산다. 오사카 제주도연구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기도 한 신 교수는 재일동포, 그 중에서도 재일제주인들의 삶에 대해 조사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재일동포들의 '밀항'을 밀도 있게 조사하면서 <제주의소리>에 '어떤 밀항이야기'를 연재해 왔다. 또 일본 프로야구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발휘 '신재경의 일본야구'를 써 왔다.    jejudo@nifty.com

<제주의소리>

<신재경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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