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이 김홍구, 오름속으로] 물찻오름

물찻오름, 누구나 한번쯤  가보았고 누구나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오름이리라.  하지만 너무 많이 다녀 지금은  안타깝지만 가서는 안될 오름이다.  2년여만에 다시 찾은 물찻오름은  훼손된 그대로 방치(?)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서글프다.  벌써 휴식년오름으로 정해 3년째 출입을 통제하고 있지만 나아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물찻오름은 살고 싶어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있다.   다 벗겨지고 허물어지는 등반로, 풀이 돋지 않는 황폐한 곳,  뿌리가 다 드러나 수줍다 못해 제발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나무, 곳곳에 널려 있는 쓰레기, 어느 누가 물찻오름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 여문영아리에서 바라본 물찻오름 ⓒ김홍구
아주 오래전 물찻오름을 처음  갔을 때가 생각이 난다.   지도와 나침반을 들고 무작정 찾아가다 정상에서  굼부리에 고여  있는 산정호수를 처음 보는 그 순간 난 정신을 놓고 말았다.  신비롭고 황홀한 광경은 인간이 만든 어떠한 것도 자연이 빚어낸  아주 자그마한 것 조차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안에는 하늘이 존재하고 신선이 있고 선녀가 있었으며 노루와 온갖 새가 있었다.  땀에 흠뻑 절은 옷에서는 향기가 나는 듯했다.  그 감동, 그 느낌마저도 그냥 자연이었다.  오름몽생이는 그저 그안에 있는 조그마한 물방울이었다.

▲ 물찻오름 산정호수 ⓒ김홍구
물찻오름은 해발 717.2m,  비고167m 이며 화구호를 가지고 있다.   이 오름의 유래는 물이 차 있어서 물찻이 아니라 산정호수를 둘러싼 굼부리가 마치 잣(城)을 두른 듯이 있다하여 붙혀진 이름이다.   맑은 초록빛이 감도는 봄빛이 호수에 드리울때,  가지가지색이 달린 단풍철 가을빛이 호수를 감싸며 물안개가 몽글몽글 피어오를 때  물찻오름 산정호수는 태초의 생명력을 잉태한 것처럼 모든 생명체를 품고 있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길목에 복수초가 피었다.  올해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복수초의 개체수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온난화 영향인지 지난 겨울이 너무 혹독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무더기로 피는 복수초를 보기가 쉽지 않다.

▲ 복수초 ⓒ김홍구

▲ 복수초 ⓒ김홍구

하얀꽃을 피우는 박새가 올라 오기 시작하고  정상 능선에서 노루귀가 피기 시작하였다. 앙증맞은 아름다움에 걸음을 멈추게 한다.   잎이 돋아 날때 약간 말리고 흰털이 있어 노루귀를 닮았다하여 붙혀진 이름이다.  이맘때 들꽃을 보려면 특히 겸손해야 한다.  땅에서 올라 오는 들꽃이 대부분 작기 때문이다.  무심코 지나가거나 먼곳만 바라보며 지나면 아름다운 들꽃은 발걸음에 스쳐 사라져 버린다.

▲ 노루귀 ⓒ김홍구
오름으로 들어가는 길에 큰오색딱따구리 몇마리를 보았다.  요즘 짝짓기 계절인가보다.  보통 4월말경에 산란을 하니 그럴만도 하다.  군데군데 나무에 쪼아놓은 구멍이 보인다. 보금자리를 마련하거나 나무속에 벌레를 잡으려 쪼았을 것이다.  멀리서 나무쪼는 소리가 청아하게 들린다.  가슴을 상큼하게 하는 소리다.

▲ 큰오색딱따구리가 쪼은 나무구멍 ⓒ김홍구
현재 물찻오름은 도너리와 함께 자연휴식년제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훼손지에 대한 자연적인 복원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취해지고 있는 조치이다.  여기에 복원에 관한 의견을 몇가지  덧붙이고자 한다.  3년이 지나는 이 시점까지도 자연적인 복원은 거의 안되고 있다.  모니터링을 하는 곳을 보면 봄에 피는 야생화만이 아주 조금 자리를 잡고 있을 뿐이다.  피복율이 3% 미만이다.  이것은 자연적인 복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름전문가와 환경전문가가 함께 현장을 확인하고 자연스럽고 친환경적인 복원방법을 하루라도 빨리 마련하여야 한다.  

▲ 모니터링 지역 ⓒ김홍구
등반로를 살펴 보았다.  타이어를 재생하여 만든  등반로가  쭉 이어져 있다.   그 주변으로는 어떠한 식생도 존재하지 않는다.   복구마대는 제기능을 잃어 사라진지 오래고 등반로에는 그 흔한 잡초조차 보이지 않는다.  타이어에서 나오는 독성물질이 풀을 자라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 곁에는 사람 발길과 물길에 쓸려 나가  풀한포기 없는 흙이 드러나 있다.   이러한 일이 매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자생력을 잃어버린 숲은  자연복원하는데  수십년이 걸린다.   어느 정도 인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고 개체가 모여 숲이 되는 것이다.   망가진 물찻을 보호한다는 구호 아래 하고  정비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 물찻오름 등반로 ⓒ김홍구
또한 산정호수로 내려가는 길은 없애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제주오름중에 물이 고여 있는 오름이 몇군데 있다.   얼마전 개방한 사라오름이 그렇고  원당봉, 새미소, 물영아리와 국립공원 안에도 있다.  이 물은 동물과 식물, 새에게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공급원이다.  항상 사람이 출입한다면 목마른 노루와 새는 어디에서 목을 축일수 있을까.  오름에 물이 있다는 상징적인 면을 떠나서 그곳에는 사람들의 신화가 있고 삶이 있고  자연의 신비스러움이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정호수는 더욱 보호하고 보존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 산정호수로 내려가는 계단 ⓒ김홍구
쓰러진 나무에는 이름 모를 버섯이 달려 있다.   그래도 물찻오름은 생명이 숨쉬고 있다.  쥐똥나무에서는 잎사귀가 움트고  그 곁에는 상산나무가 봄을 맞고 있다.  개암나무는 암수 한그루로 3~4월에 잎보다 먼저  꽃이 피는데 수꽃은  원주형으로  가지 끝에  2~3개씩 달려 길게 늘어지고 암꽃은  2개씩  달리는데  붉은색의  암술대를 길게 밖으로 내밀어 수꽃을 유혹한다.  개구리발톱과 현호색이 잎을 내밀고 조금 있으면 산수국이 예쁘게 필 것이다.  이래저래 물찻오름은 봄을 맞으며 생명체들에게  수줍은 표정으로 봄인사를  건네고 있다.  

▲ 버섯류 ⓒ김홍구

제주오름보전연구회에서는 물찻오름 모니터링과 더불어 정화활동을 하였다.  정상에서부터 탐방안내소까지 각종 쓰레기를 수거하였다.   사려니숲길은  모두를  위한 길이다.  그런데 많은 쓰레기가 주변에 널려 있다.  내가 편하고자 하면 숲은 힘들어진다.  앉아서 쉬는 곳마다 담배꽁초가 수북이 버려져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허물을  자연에다 토해내지 않았으면 한다.   자연이 살아야 인간이 살 수 있다는 단순명료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때문에  이러한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 나는 것이다.  또한 조용히 걸었으면 한다.  그래야만 자연이 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바람이 나무를 간지럽히고 새가 짝을 찾고 물이 흐르다 돌고 낙엽이  바람에 날리고 꽃이 피고 열매가 익는 소리가 들린다. 

▲ 제주오름보전연구회 정화활동 ⓒ김홍구

▲ 한라산방향의 오름 군락 ⓒ김홍구

문득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마지막 구절쯤에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 나는 사람이

▲ 김홍국 객원기자 ⓒ제주의소리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스스로 선택한 길로 인해 자신의 삶의 운명이 결정됨을 나타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듯이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마음이 잘못 선택되어 진다면 인간의 운명은 그대로 다하고 만다.

걷다가 쉬고 싶으면 앉으면 되는게 숲이 주는 선물이다.  그 안에서 느끼는 공기의 흐름속에도 생명이 있다.  오름은 제주자연생태계의 보물이다.  제주의 진면목은 오름에 있다.  물찻오름  서쪽능선에서 바라보는 오름군락은 왜 오름이 있어야 하고 지켜져야 하는지 우리에게 답을 주고 있다.   이러한 오름이 제주인에게 무한한 가치와 생명을 주고 있기에 우리는 제주오름의 보존과 보전의 가치를 깊게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 김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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