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에 대한 전면 재검토 준비하자

   제주특별자치도 4단계 제도개선을 담은 특별법 개정안(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된 것은 지난 해 5월, 도지사 선거 직전이었다. 그러니까 벌써 10개월 가까이 국회에서 공전(空轉)하고 있는 셈이다. 제주도의 입장에서 보면 이 개정안은 매우 화급한 일이어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제주해군기지 발전계획과 제주특별자치도 지원위원회 사무처 기한 연장, 관광객 부가가치세 사후 환급, 국제학교 내국인 입학자원 확대 등 제주의 미래와 관련하여 중요한 사항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개정안이 국회에서 공전되고 있는 원인을 보면 더욱 답답하다.

 정부는 이 개정안에 영리병원 허용을 포함시켜 이를 제도화하려하고, 이에 반대하는 야권은 이 개정안의 통과를 가로 막고 있다.
 이번 회기에서도 정부는 영리병원 도입을 강하게 주장하면서 기존입장을 고수했다. 여야 정치권도 접점을 찾지 못했다. 일이 이렇게 꼬이자 불똥은 제주도로 번졌다.
 ‘해군기지 건설 지역 발전계획’을 수립해 4년간 끌어온 갈등을 해결할 단초를 찾으려던 노력들이 자칫 좌초될 상황이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가 ’해군기지 절대보전지역 변경 동의안‘을 다시 취소 의결한 것도 이런 정치권의 작태에 대한 분노의 표시다. 이에 따른 법적. 행정적 논란을 포함한 상당한 수준의 의회 파행이 불가피해 보인다.
 
  여기서 중앙정부에 묻고 싶다.
 영리병원 도입이 해군기지 문제 해결을 유보할 정도로 그렇게 중요한 국책사업인가?
해군기지 문제로 인해 지난 4년간 갈등을 겪어온 제주도민들은 정부의 의도를 도무지 알 수 없다.
왜 한 손으로는 해군기지로 도민사회를 갈등으로 몰아넣고  또 한 손으로는 영리병원 도입을 내세워 이 갈등을 해결할 단초를 가로 막는가.
 
 해군기지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제주도는 대한민국의 부속영토이고 국가의 안보상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해야하는 것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라면 부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해군기지 건설이 제주도와 마을 공동체의 평화를 해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해군기지로 인해 얻게 되는 경제적 유발효과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것은 다음다음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이 중차대한 현안에 대한 정부와 제주도의 자세는 너무 안일하게 접근 하였다. 입지 선정을 아직까지도 마을 공동체의 전통을 쭉 유지하고 있는 강정동 주민들의 주민투표로 결정한 것이라든가, 해군유치문제를 지원법으로 강제하지 못한 점 등 초동대응부터가 너무 서툴렀다. 경주 방폐장만 해도 3천억의 재정지원 외에 국책사업 유치 시 가산점 부여 등을 포함한 3조원 정도의 예산이 간접지원된 것을 보면 우리 제주의 해군기지 문제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 같다. 그야 말로 초동단계의 총체적인 전략부재가 오늘의 해군기지문제를 확대 유발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 문제는 이번 개정안 처리에서 보듯 지금도 여전히 정부의 자세가 안일하게 흐른다는 점이다.
 
  그러면 영리병원 도입은 어떤 문제인가.
 이 문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아젠다다. 영리병원 도입을 둘러싸고 정부의 중앙부처간에도 정책갈등이 진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만큼 찬반의 논란이 크지만 영리 병원 도입이 한국의 공공의료체계를 훼손시킬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영리병원 도입을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은 폭넓은 공감대를 얻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영리병원 도입으로 제주 미래가 담보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비관적이다.  영리병원보다 오히려 공공의료체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그 바탕위에서 의료 관광 사업을 공격적으로 펼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인 처방이라고 생각한다. 영리병원은 우리 의료체계상 아직은 시기상조다. 제주도의  공공의료체계를 이용한 수익구조를 고민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다.

  시.군을 폐지한 제주특별자치법은 어떤가.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도를 시.군 폐지의 정책 실험지역으로 설정해서 추진된 사업이다. 그야 말로 모델 시범케이스였다. 그런데 도입 과정의 어설픈 전략으로 인해 핵심적인 자치권 이양도, 재정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한 ‘특별하지 않은 자치도’가 됐다.
 최근 기초자치단체를 통합한 지역(마산.진해.창원) 등에 비하면 지조를 너무 싼 값에 팔아 버린 격이다.  제주도가 도민들에게 점진 형이니 혁신 형이니 하면서 혹세무민(惑世誣民)적인 주민 투표를 통해서 얻은 결실치고는 너무나 초라한 성적표다.

 역사 문화적으로 볼 때 제주도 사람들은 중앙정부에 대해 두 가지의 兩價的(ambivalent)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제주도가 섬이고 척박한 땅이기 때문에 중앙의 도움을 받아서 살 수 밖에 없다는 중앙선망의식이다. 다른 하나는 수탈만 일삼았지 해준 것 하나도 없는 중앙으로부터 제주도가 독립해서 살아야 한다는 분리주의 의식이다. 여기서 제주사람에게는 중앙의 권력도 외세로 인식된다. 중앙은 가렴주구를 일삼는 왕실과 그를 둘러싼 정치세력까지를 포함한다. 제주도민들의 수용범위를 벗어난 가혹한 조세징수나 정책강요 등의 중앙권력의 작태가 횡횡할 때, 잠재화되어 있던 제주도민들의 분리주의 의식은 조직화. 현재화 된다. 대표적인 것이 제주도가 일개 군으로 한반도에 복속된 후 면면히 이어져 온 민란이다. 이것은 바로 제주도민들에게 베풀어 준바 없이 수탈만 일삼는 중앙의 권력에 대한 원망이 축적. 표출된 것이다. 한 예로 광복 후 외부 세력인  타 지방 응원경찰이 제주도에 들어와 자행한 행패도 4.3을 촉발시킨 원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노태우  정권 당시 한 꽃다운 젊은이(고 양용찬군)를 분신하게 만든 특조법(정책강요)에 대한 거도적인 반대운동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법은 중앙정부의 힘을 이용해서 잘 살아 봐야 되겠다는 제주도민들의 중앙선망의식의 제도적 표현이다. 그러나 특별자치도가 출범한지 4년이 경과하고 있지만 기대했던 성과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중앙정부와 제주도의 관점은 다르다.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라는 것이다.

중앙정부는 행정․제도․예산적 측면에서 충분히 지원하고 있으나 제주도의 운용역량 미흡으로 성과를 창출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반면, 제주도의 입장에서는 중앙정부가 타 지방자치단체와의 형평성문제와 시범적 성격의 생색용 지원만이 있을 뿐 통 큰 지원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도민들은 중앙정부가 특별자치도의 성격에 부합된 적극적, 차별적, 특례적 지원이 미흡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없다는 게 문제다.
입증 자료가 없으니 중앙정부를 설득하고 지원 요청의 당위성을 주장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중앙정부의 지원에 대한 타 광역자치단체와의 비교 평가를 통해 제주도에 어느 정도의 행.재정적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검증 작업이 필요하다. 전문 연구기관에 의뢰하여 중앙정부가 제주특별자치도에 지원하고 있는 각종 부문에 대해서 타 자치단체와 비교할 수 있는 객관적인 평가지표를 개발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크게는 자치부문, 재정부문, 사업부문, 국책과제 등에 대한 세부적인 객관적 평가 지표를 개발하고 이에 근거하여 타 자치단체와 비교하여야 한다. 그래서 이 결과자료를 중앙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로 활용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과대 포장된 특별자치도에 대한 타 지방자치단체의 견제를 완화시키고 제대로 된 특별자치도를 성공시킬 추동력을 얻기 위한 도민의 힘을 결집시키는 촉진제로 삼아야 한다.

▲ 고충석 전 제주대 총장
  만약 평가지표분석 결과가 제주특별자치법의 취지대로 제주도가 ‘특별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거나 그럴 경향성이 현저히 높을 것으로 판명되면, 이 특별법을 일반법으로 바꾸는 문제 등을 포함한 특별법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기초자치단체 부활 문제도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고충석 전 제주대 총장(행정학 교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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