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63주년] 본풀이 증언자 양상준씨 "지금도 기가막혀"제주공항 학살지서 형 유해 확인...“후세 본받아선 안돼”

“아기 업은 엄마를 한 총알에 쏴버리는 경우가 어디 있나. 아기라도 내려 주던지... 이런 막대한 시국인지, 나라인지 분간도 안 되지만. 참... 기가 막힌다”

양상준(73, 제주시 노형동) 씨는 4.3 당시 형수와 조카를 한 번에 잃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원통해 했다. 어린 조카는 변변한 이름 하나 얻지 못한 채였다.

▲ 4.3증언 본풀이 증언자로 나선 양상준 씨.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2일 제주도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4.3증언 본풀이마당에 증언자로 선 양 씨는 “4.3 당시 가족들 많이 죽은 거 자랑하러 온 기분”이라며 말을 시작했다.

양 씨는 형 둘과 형수, 조카, 큰 아버지, 사촌형을 4.3 당시 한 번에 잃었다.  때문에 매년 4월 3일이면 제주4.3평화공원 내 위령단에서 둘러봐야 할 표석만 네 군데다. 4.3관련 제사만 여섯번이다.

그는 “국민을 죽이라는 ‘죄명’은 없다”면서 “당시는 사람 하나 죽이는 건 파리 죽이는 걸로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제주 노형 월랑마을에 살던 양 씨 가족들은 소개령에 따라 해안가 마을인 제주시 도두동으로 옮겨 갔다.

둘 째 형과 작은 형만은 산으로 피해 갔는데, 이게 화근이었다. ‘귀순해 오면 석방해 준다’는 경찰들의 말에 산에서 내려온 두 형은 그대로 경찰에게 잡혀갔다. 둘째 형은 정뜨르비행장에서 죽었고, 작은 형은 인천형무소에서 숨졌다.

양 씨는 “작은 형 이름이 양상진인데, 인천형무소에 잡혀가서 거기서 죽었다고 ‘통지’가 왔다. 신체를 가져가라 했지만 갈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내가 제사를 모시고 있다”고 했다.

둘째 형인 양상민 씨의 유해는 제주국제공항 대규모 집단 학살지에 대한 유해발굴 사업을 통해 찾았다. 유전자 감식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71구 중 한 구였다. 양 씨를 통해 4.3 당시 정뜨르비행장 분위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정뜨르비행장에 잡아간 사람들은 굶겨 죽일 작정이더라. 밥을 주지 않아서 어머니가 매일 밥을 해서 날랐다. 우리도 못먹는 차에 형에겐 삼식을 전부 갔다줬다. 하루는 어머니가 검정 고무신 한 켤레를 사왔다. ‘이걸 어디 가져갈거냐’ 했더니 ‘형님 신이 다 떨어졌다해서 가져간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고무신을 비행장에 가져간다는 어머니는 어두워져도 돌아오지 않는 거다. 성문이 닫힌 후에야 돌아온 어머니가 말하길 ‘비행장서 어제 죽었다’는 거다. 비행장에서 죽은 것도 아니고 다른 데서 죽여서 비행장에 굴 파서 묻었다고 한다”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양 씨는 경찰들의 횡포도 생생히 기억했다. “노형동에 돌아와 움막 짓고 사는데, 그때는 너나 없이 전부 가난하지 않나. 지서에서 몇 사람이 와서 살았었다. 우리 보고 도두까지 내려가 생수를 매일 떠 오라고 시켰다. 우리도 노형동 궂은 물로 밥 해먹던 때였다. 하루는 내가 물을 길러 갔다 오는데, 지쳐서 시간이 늦었다. 그런 나를 놀다 왔다면 한 발질 두 발질 해대는 거다”

그는 “밥을 굶으니 어디 가서 힘내서 일도 못하고. 날 밝으면 밭에 나가고, 겨우 밀가루 배급 받아와 그거 먹고 살았던 기억이 난다”며 “4.3으로 성담 보초서랴, 경찰관들 먹을거리 대랴, 심부름 하랴... 공부를 못한 것이 제일 아쉽다”고 밝혔다.

한때 8남매로 남부럽지 않은 대가족을 이뤘던 양씨는 6.25때 큰 누님을 잃고 3~40년 전 큰 형님을 잃어 집안 큰 일을 도맡아 왔다.

그는 “생각하니 기가 막힌다”면서 “후세들이 본 받을 일이 아니다. 정부에서 돈 들여 표석을 세웠지만,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세상을...왜 그때는 사람을 그렇게 잘 죽이는지. 그게 사람 사는 곳이었냐”고 한풀이 했다.

이날 증언 본풀이 마당엔 박두선(88, 제주시 오라동), 강조행(88,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씨도 증언자로 나섰다.

4.3증언 본풀이 마당은 2002년 제주민예총이 주최한 이후 2004년부턴 (사)제주4.3연구소가 맡아서 올해로 열 번째 진행해 오고 있다. 4.3 당시의 기억들을 공유하고 잊지 말자는 취지로 열려온 증언 본풀이에는 현재까지 45명이 증언자로 나섰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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