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이 김홍구, 오름속으로] 제지기-설오름-도라미

봄이 오는 길목에 기대어  봄을 기다리는 조그마한 오름이 있다.   서귀포 보목동에 있는 제지기가 그렇다.   바다건너  남풍을 타고  섶섬을 휘돌아  보목포구를 지나  제지기로 향하는 봄은 제지기를 지나 도라미를 넘고 성널오름을 타고 물장오리를 감싸안고 제주시로 향한다.  이제는 완연한 봄이다. 이 봄이 오기까지 힘겨웠던 이들도  다가올  따스한 시간이 아름답기를  봄 햇살에 바래본다.

제지기는 해발 94.8m,  비고 85m 이며 형태는 원추형이다.   절이 있었다하여 절오름, 절을 지키는  사람이 있었다하여 절지기에서 제지기로 불리웠다는 유래가 있다.  오름은 주로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다.  옛날엔 여기에 올라오면 세상 시름을  놓고 한숨 쉬어가기에 제격이었다.

▲ 제지기 ⓒ김홍구
제지기로 오르는 등반로는 오래전에 철로에 깔던 침목으로 만들어졌다.   자원을 아낀다는  취지에서 등반로에 깔았을지는 모르나 그 침목이 환경에 많은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은 이미 밝혀졌다.  지금도 침목에서  찌든 기름찌꺼기가  나오고 있다.  기름냄새가 등반로를 따라 진동하고  있다.  정상에서 이 냄새를 맡으며 운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환경을 생각할 줄 모르는 판단착오가 지금은 제지기와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철거해서 환경을 정비했으면 한다.

▲ 등반로 ⓒ김홍구
제지기를  오르다 중간에 있는 바위에 서면 한라산과 마주하게 된다.  삼매봉,  고근산, 각시바위,  살오름, 도라미,  칡오름, 걸세오름,  자배봉,  예촌망이  한눈에 들어오고 백록담을 중심으로 방애오름 삼형제와 사라오름, 성널오름등이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 제지기에서 바라본 한라산 방향 ⓒ김홍구

스치는 발길에 제비꽃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다.   자주괴불주머니도 보인다.  갓 나온 벌이 열심히 꽃을 찾아 돌아다닌다.  지금부터는 꽃과 곤충들의 계절이 시작되는 것이다. 봄이 주는 향기는  바람, 꽃, 풀, 나무, 곤충등 가리지 않고 맡을 수 있다.  그저 오르고 내리는 오름이 아니라 자신의 건강만을 위한 오름이 아니라 자연과 바라보며 대화하며 느끼며 여유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 제비꽃 ⓒ김홍구

▲ 자주괴불주머니 ⓒ김홍구

보목마을 안쪽에 수줍은 듯 숨어 있는 제지기는 바다내음이 포구를 넘어 오름에 다다르면 그 내음을 주는 섶섬이 역시나 수줍은 듯 소나무 사이로 살포시 보인다.  타원형인 섶섬은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는 파초일엽이 있고  낚시꾼이 좋아하는 바릇괴기가 있고 주위에는 지귀도를 비롯한 문섬과 범섬, 새섬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바람과 파도를 벗삼아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귀도는 해발 5m 정도의 야트막한 섬이지만 예전엔 이곳에도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파도가 잔잔하면 그저 고요하고 평화롭게 보이는 지귀도, 바람타는 섬에서 바람이 멈추는  순간 그 고요한 적막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 섶섬 ⓒ김홍구

▲ 문섬-범섬-새섬 ⓒ김홍구

▲ 지귀도 ⓒ김홍구

내려가는 길에 털머위와 제비꽃이 한쌍인 양 다정하게 보인다.  하늘래기는 소나무에 걸려있고  덩굴은 나무를 타고 승천하려는듯 하늘로 향하고 섶섬이 보이는 등반로는  한껏 여유로워 보인다.  이런 게 봄이다. 

▲ 털머위와 제비꽃-하늘래기-덩굴-포구로 내려가는 길 ⓒ김홍구
보목포구에서 바라보는 제지기는 또 다른 멋이다.  보목포구에 자리배가 들어 오면 바다냄새가 아닌 사람사는 냄새가 난다. 제주사람이라면 자리를 모르는 사람이 있으랴마는 시인 한기팔님의 <보목리사람들> 끝머리에 "...다만 눈으로만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먼바다의 물빛, 하늘 한쪽의 푸른 빛 키우며 키우며 마음에 등을 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에 태어나 한 번 사는 맛 나게 사는 거 보려거든 이 나라의 남끝동 보목리에 와서 보면 그걸 안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맛나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이랴마는 요즘같이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 생각해 볼 말이다.

▲ 제지기 ⓒ김홍구

오름은 멋있고 크고 아름다운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기에는 얕고 볼품없고 그저그만한 오름도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오름을  거의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그대로 있는 것도 아니다.  방주오름도 그렇고 봉아오름도 그렇고  농경지를 넓히고  또는 인위적인 개발에 의하여 크게 훼손되는 경우도 많다.   서귀포에 있는 설오름은 정상까지 과수원으로 완벽하게 개간되어 있다.   아마도 웬만한 사람은 찾지도 못할 오름이다.  다만 도로명에 서리오름길이라고 명명해준 것이 그나마 이 오름의 존재를 알려 주는 것이리라. 

설오름은 서리오름 또는 사레오름이라고도 한다.  오름마다 불리워지는 이름이 몇개씩은 되지만 제주어인 서리, 사레에서 설오름으로 불리워지는 것 같다.  해발 50.1m,  비고 15m 이며 원추형이다.

▲ 설오름 너머 제지기와 섶섬 ⓒ김홍구
정상에서는 밀감나무로 인하여 주위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정상부근에 있는 물탱크시설에  올라서면 한라산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동쪽으로는 예촌망이 가깝게 느껴진다.   한라산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있다 내려오는데 어디선가 묘한(?)  향기가 난다.  이 냄새로 사스레피나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꽃이 예쁘다고 향기가 다 좋지는 않다.  향기가 좋은 꽃에는 아름다운 벌과 나비가 모여들고 이처럼 사스레피나무의 꽃에는 파리류가 많이 찾아든다.  인간사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도 살아가는 방법이다.  꽃향기는 좋지 않지만 사람에게는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시 꽃이나 사람이나 겉으로는 알 수가 없다.   진정 그것의 내면을 들여다 볼 때까지는 말이다. 

▲ 사스레피나무 꽃 ⓒ김홍구
제주에는 귤이 있다.  제주에는 박물관도 많다.  그런데 제주를 제대로 알려주는 박물관은 거의 없다.  나머지는 제주가 아닌 다른 곳에 더 크고 웅장하게 많이 있다.  제주를 보려면 제주다운 것을 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다.  제주를 나타내는 박물관은 제주평화박물관, 제주해녀박물관, 국립제주박물관,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과 제주감귤박물관이 있다.  제주감귤박물관은 제주특산물인 감귤을 테마로 감귤의세계를 한눈에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서귀포의 오름중에 도라미 굼부리 한귀퉁이에 만들어져 있다.  해발 117.8m,  비고 63m 이며 복합형 화산체를 이루고있다

▲ 도라미와 감귤박물관 ⓒ김홍구
박물관 뒤쪽으로 도라미로 들어 간다.  그런데 입구부터가 너무 인위적이다.  오름과 어울리지 않는 나무데크며 방부목 등산로는 도리어 걷기에 방해가 되고 힘이 든다.   그리고 등반로가 너무 넓다.   오름에  갈때 사람들은 넓고 편한 길을  원하지 않는다.  힘들지만 걷기에 좋고 숲이 있고 조용하며 자연을 관찰 할 수 있는 길을 원한다.  데크는 무릎에 영향을 주며 방부목은 튀어 나와 있어 주변을 감상하며 걸을 수가 없다.  아이들이 흠칫 넘어지기라도 하면 크게 다칠 위험도 있다.  넓은 길은 오름을 파괴하고 그곳에 있는 식생들을 변하게 한다.  자연과 어울지 않는 길은 만들지 않음만 못한 것이다.

▲ 도라미 등반로 ⓒ김홍구
봄을 알리는 들꽃이 곳곳에 피어 있다.  열매모양이 마치  개의 그것을 닮았다하여 붙혀진 개불알꽃,  광대의 춤사위를 닮았다하여 붙혀진 광대나물,  이 나물로는  육지에선 배고픈 시절에 나물무침 또는 된장국도 끓여 먹었다는데 너무나 작고 소박한 것이 아름답기만 하다.   그리고 남산에서 맨처음 발견했다고 해서 붙혀진 남산제비꽃,  하얀색의 순수함이 묻어나오는 꽃이다.  노란괴불주머니도 있다.  괴불주머니란  어린아이가 주머니 끈 끝에 차는 세모모양의 조그만 노리개를 뜻하는데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들꽃이 피는 봄이다.  몸을 숙여  보면 작지만 무척이나 아름다운 들꽃을 볼 수가 있다.

▲ 개불알꽃-광대나물-남산제비꽃-노란괴불주머니 ⓒ김홍구
오름에 들어서면 가까이 칡오름과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아직도  잔설이 남아 있는 한라산은 언제봐도 영산이다.  남동쪽으로 예촌망과 지귀도가 보인다.  남쪽으로  돌아 가면  웅대한 절벽이 있다. 도라미 너머로 보이는 한라산이 구름과 어우러져 포근하게 보인다.

▲ 한라산과 칡오름 ⓒ김홍구

▲ 도라미 남쪽 절벽 ⓒ김홍구

▲ 도라미 너머 한라산 ⓒ김홍구

벚꽃이 피기 시작한다.  흐드러진 벚꽃이 뭇사람을 설레게 할 것이다.  감귤박물관답게 귤나무도  많다. 화사한 유채꽃 속에 파묻혀 있는 저 무덤속 주인공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인간이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로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생각케 한다.  오름몽생이도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난다면 들꽃이 아름답게 피는 오름에  바람처럼 있고 싶다.   인간의  행복은 자신의 머리 속에 있고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가슴 속에 있다.  이제 제주의 자연에서 봄을 한껏 느껴보자.

▲ 벚꽃 ⓒ김홍구

▲ 귤 ⓒ김홍구

▲ 유채꽃과 무덤 ⓒ김홍구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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