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그들은 누구인가] 재일동포 1세대부터 5세대까지

한국에서 외국에 나가서 사는 동포는 약 7백만명이 있다. 미국에 약 200만명(합법이민및 기타등등을 포함), 중국에도 약 200만명, 일본은 귀화한 사람까지 합쳐서 약 100만명이다. 어느 나라이든 정든 고향을 떠나서 그 나라에 가서 산다는 것은 대단한 각오가 필요한 것이지만, 일본의 재일동포는 다른 나라의 동포와는 성격이 다르다.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일본 자기들의 전쟁을 위한 강제징병및 강제징용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볼때 이점은 다른 어느 나라의 이민과도 다르다. 또한 한국에서 외국에 나가서 사는 동포중에 재일동포가 제일 역사가 길다.

한국에서 일본에 처음 온 사람을 1세라고 한다. 그 1세에서 태어난 자식을 2세라고 한다. 2세에서 태어난 사람은 3세가 된다. 지금 일본에는 재일 5세까지 있다. 부모와 자식이 같이 일본에 왔다. 부모는 1세가 되고 자식도 한국에서 왔기에 1세이지만, 자식은 보통 1.5세라고 해서 부모와 구별을 한다.

한세대를 보통 30년으로 본다. 그러면 지금 재일동포의 역사는 약 100년이다. 식민지 초기에 일본에 온 사람들의 자손이 지금 5세들이다. 5세까지 일본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그 나라의 국민으로 동화하지 않고 한국사람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재일동포들이다.

▲ 1세 할머니들이 다니는 야간중학 모습. ⓒ신재경

한국에서 일본에 온 1세를, 필자는 일본 온 시기를 기준으로 편의상 3종류로 구분하고 있다. 해방전 1세, 밀항 1세, 비행기 1세

해방전 1세(제주도 동포들은 군대환 1세): 해방전 식민지 시기에 일본에 온 사람들. 식민지 시절은 한국 사람들의 국적은 일본이었다. 당시의 일본은 1억 일본인이라고 했다(일본본토에 7천만 일본인, 한반도에 2천만 한국사람 일본인, 타이완에 1천만 타이완사람 일본인). 이 시기는 지금에 비해서 간단히 일본을 왕래 할 수가 있었다. 또 많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일본 전쟁때문에 강제징병및 강제징용으로 일본에 끌려 와야만 했다.

밀항 1세: 해방후(1945년)부터 여행 자유화(1988년) 사이에는 한국 정부에서 여권 만드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다. 설령 여권을 만들었다해도 일본 비자를 받는 것 또한 상당히 어려웠다. 당시에는 일본에 가고 싶은 사람들은 밀항으로 일본을 향할수 밖에 없었다.

비행기 1세: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여행자유화가 되었다. 자유스럽게 여권을 만들게 되었다. 또 일본 입국도 관광비자(당시는 15일기간, 지금은 3개월기간)도 쉽게 받을수 있어서, 비행기 타고서 맥주까지 한잔 해가며 일본에 온 사람들이다. 이 비행기 1세들은 지금도 오고 있다.

▲ 야간중학에 다니는 할머니의 작문. ⓒ신재경

▲ ⓒ신재경

1세
한국에서 돈 가지고 일본 온 사람없고, 한국에서 일본말 다 배워서 일본 온 사람없다. 밤중자축이란 제주도 말이 있다. 깜깜한 밤이어서 오른쪽도 왼쪽도 모른다는 말이다. 말을 모르기에 왼쪽도 오른쪽도 모르는 그런 세상속에서, 무일푼으로 일본에 왔기에 살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했고, 또 지금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서라면 돈은 없어도 말은 알아서 왼쪽인지 오른쪽인지는 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죽기 아니면 살기의 처절한 고생을 한 사람들이다. 해방전 1세, 밀항 1세들은 이런 '왁왁한' 세상속에서 성공을 해서,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동내에 나라에 돈을 보내고, 또 한국이 어려울때 투자도 많이 한 사람들이다.

一匹の狼(いっぴきのおおかみ)라는 일본말이 있다. 직역은 '한마리의 늑대' 이고, 의역으로는 '독불장군' 이란 뜻이다. 자기만의 세계가 있고 그 자기만의 세계를 다른 세계와 타협하지 않을려는 경향이 있다. 그야말로 독불장군인 것이다. 말 모르고 글 모른 그런 세상속을 살아오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성격인 것이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독불장군 경향이 심하다.

1세들은 한국문화를 가지고 와서 한국문화 그대로 살려고 한다. 또한 살고 있다. 특히 집안에서 가족들간의 관계도 한국 그대로 할려고 하고 있고, 관혼상제도 종교도 한국 그대로 이다. 또 그들의 고향은 한국이며, 학교도 한국에서 나왔다. 한국에 부모형제가 있고 동창및 친구들이 있다. 고향 친목회 및 학교동문회도 일본에 있다. 한국과 다름없이 살려고 하고 있고, 고향에 한국 가족에 무슨 일이 있으면 달려 갈려고 한다. 돈만 있으면 한국으로 보낼려고 하고 한국에 재산 사는 것을 좋아한다. 정신및 마음의 중심은 한국의 고향 어느곳에 가 있다.

▲ ⓒ신재경

적당히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한국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죽을 때는 한국에 가서 죽겠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 가서 죽는 사람도 드물다. 인간의 최종말기는 가족, 특히 배우자나 자식이 있는 곳에서 죽게 된다.

일본말도 잘 하는 사람이 있지만, 다들 발음이 나쁘다. 한국에서 몇살 때 일본에 왔느냐에 따라 발음이 좀 좋고, 더 나쁘다. 역시 발음은 일본땅을 밟은 나이에 비례한다.

자식들이 일본 사람과 결혼 한다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반대를 한다. 또 한국사람 중에서도 같은 고향사람과 결혼하기를 원한다. 부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자식이라면 좋으련만 그렇치 못한 경우도 많다. 이쯤 되면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은 한국의 유교 문화를 그대로 가지고 온다. 본인이 부모에게 했던 유교적 풍속대로, 또 본인이 부모에게 했던 그대로를 자기 자식이 해 주기를 바라지만, 자식들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 문화에 익숙해 있다.

▲ 조선학교 학예회 풍경. ⓒ신재경

2세
이들의 고향은 일본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다. 일본어가 원어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다수가 한국말을 조금씩은 할 수 있다. 부모들이 집안에서 쓰는 한국말을 그대로 배운 것이다. 입으로 말하는 말은 어렵지만 듣는 것은 상당한 수준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 제주도 사투리만 들을수 있고 말 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집안에서 부모가 제주도 사투리만 썼기 때문이다.

한국은 부모의 고향에 불과하다. 한국에 대한 친근감도 정도 있다고는 할 수 있지만 부모 보다는 못하다. 한국에 있는 친척들과도 그리 가까운 정을 못 느낀다. 한국에 있는 친척들은 한국식 친척관계를 원하지만, 이들은 한국식 친척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국에선 일본을 향해 욕이 나오고 일본에선 한국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꺄우뚱 거린다. 이 세대부터 한국에서는 이들을 보면서 짝사랑을 하기 시작한다. 한국식 친척관계로 이런 사랑 저런 사랑을 일본으로 보내지만, 한국으로 향하는 그 사랑에 다한 대답은 한국식 같지 않다. 그래서 한국에선 욕이 나올수도 있고 짝사랑으로 끝나고 마는 경우가 많다.

제일 갈등이 많은 세대이다. 집에 가면 일본말도 잘 못하는 완고한 부모가 있는 일본이지만, 집밖은 일본이다. 집안에서 부모들은 한국 유교 문화이다. 한국에서 특히 아버지의 말씀은 곧 헌법이요, 아버지가 하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반대를 하지 못하게, 아버지에게서 강요를 받은 세대이지만, 집밖은 더 자유스러운 일본문화이다. 어릴때는 어느 집이나 다들 그렇게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성장하면서 일본 친구들의 집안도 보게 된다. 친구들의 집안은 일본이다. 왜 우리 집안은? 왜 우리 아버지는? 이
라며 아버지와의 갈등도 많은 세대이다.

▲ ⓒ신재경

관혼상제등은 한국식 그대로 하려고 한다. 부모로부터 그렇게 가르킴을 받아왔기에 이 세대까지는 부모의 가르킴데로 행해지고 있다. 공부에 대한 압력도 꽤나 받은 세대이다. 일본도 공부를 좋아하는 나라이
지만 한국보다는 덜하다. 부모가 자식에게 공부를 강요하지만 한국처럼 강요하지는 않는다. 또 공부가 싫다면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도 일본에는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온 1세들은 자식에게 한국식 공부를 강요한다. 특히 당시의 1세들은 선비의 나라에서 온 1세들이다. 본인이 공부를 못해서 고생을 했기에 자식들은 공부로 성공해서 높은 직책으로 성공해 주길 바라는 세대이다. 공부를 잘 할 수가 있어서 공부로 성공하여 의사라도 되면 좋은련만, 그렇치 못한 사람들은 어지간히 부모로부터 잔소리께나 들은 세대들이다. 그래서 2세들은 의사가 많다.

이 2세들의 시기는 대체로 민족적 차별 국적 차별때문에 공부는 했어도 공무원 및 선생님도 못되었고, 좋은회사 일류회사에 취직도 못한 너무 우울한 세대들이다. 의사는 예외다. 의사는 되기만 하면 차별과 그리 상관없이 취직이 되고 개업도 가능하다. 더욱더 소문난 의사가 된다면 한국사람 의사라도 너도나도 줄을 선다. 아픈 사람은 한국사람 의사라도 절까지 하면서 잘 봐달라고 애원한다. 그래서 동포중에는 의사가 많다.

일본사람이 되는 귀화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다. 1세들은 귀화를 생각치도 않는다. 그러니까 심각한 생각도 않는다. 이 세대부터 귀화에 대해서 머리 아프게 생각하게 된다. 아직도 마음 어디엔가는 찐하게 한국이 남아있는 세대들이다.

▲ ⓒ신재경

▲ ⓒ신재경

3세
일본에서 태어난 2세의 후손들이다. 일본문화에 상당히 동화된 세대들이다. 한국과는 당연히 멀어졌다. 멀어진 것이 아니라 한국은 할아버지의 나라, 우리 나라가 아닌 외국으로 보이는 세대이다. 민족학교인 조선학교, 민단학교인 건국학교나 금강학교를 다니지 않은 한 한국어(말)와도 멀어진 세대들이다. 2세의 부모들이 일본어가 원어이기에 이들도 한국말과는 자연히 멀어졌다. 말만 멀어진 것이 아니라 문화도 멀어졌다.

한국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2세들은 한국에서 태어난 부모들로 부터 한국을 강요받은 세대이다. 2세들은 자기 자식에게 한국을 강요하지 않는다. 자기들도 잘 모르니까. 또 부모에게서 강요받았던 그것이 싫어서.

3세쯤 되면 정이 아닌 문화적 차원에서 한국을 접근할려고 한다. 한국어를 공부하는데도 내나라 내조국이라서 공부한다는 것이 아니라, 교양을 위해서 공부하고, 한국에 관해서도 본인의 교양을 넓힐려고 또 높이려고 공부하는 자세이다. 그러나 일본사람들에 비해서 한국에는 정이 있다.

▲ ⓒ신재경

사람에 따라서 다르지만 자식이 일본 사람과 결혼을 한다면 반대는 할지언정 윗세대들이 했던 그러한 강렬한 반대는 하지 않는다. 앞으로 일본에 살면서 행복한 길이 어느 길이냐에 따라 한국사람이라는 테두리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4세 이후가 되면, 3세들보다 더 일본에 가까운 문화를 가지게 되어, 동화되어 있다. 지금 결혼하는 남자이든 여자이든 결혼상대의 90%가 일본사람이다. 10%가 안된 사람들만 한국사람끼리, 또 2%정도가 일본사람도 한국사람도 아닌 다른나라 사람들과 결혼하고 있다.

일본 사람들과 결혼 한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자식들은 일본 호적에도 한국 호적에도 올리고 있다. 어느쪽을 택하는냐는 선택은 자식이 성인이 되었을때 자식의 의향에 맡기려 하고 있다. / 신재경

 

 

▲ 신재경 교수 ⓒ 제주의소리
 필자 신재경 교수는 1955년 제주시에서 출생했다. 제주북초등학교, 제주제일중학교, 제주제일고등학교, 한양공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했다. 한일방직 인천공장에서 5년간 엔지니어를 한 후 1985년 일본 국비장학생으로 渡日해 龍谷大學대학원에서 석사·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京都經濟短期大學 전임강사를 거쳐 현재 京都創成大學 經營情報學部 교수로 있다. 전공은 경영정보론이며, 오사까 쯔루하시(鶴橋)에 산다. 오사카 제주도연구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기도 한 신 교수는 재일동포, 그 중에서도 재일제주인들의 삶에 대해 조사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재일동포들의 '밀항'을 밀도 있게 조사하면서 <제주의소리>에 '어떤 밀항이야기'를 연재해 왔다. 또 일본 프로야구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발휘 '신재경의 일본야구'를 써 왔다.    jejudo@nifty.com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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