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 칼럼] 가다피 축출은 리비아인 손으로

화석연료의 고갈과 지구 온난화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한동안 원전 르네상스에 대한 기대가 컸다. 온실가스 배출이 전무한데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OECD는 현재 전세계 에너지 수요의 16%를 생산하고 있는 원전의 발전량이 2030년에는 22%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그러나 이번 일본의 참사는 원전의 방사능 유출사고의 악몽을 되살렸다. 공교롭게도 지난 3월 초 미국의 월 스트리트 저널과 NBC가 정부의 재정지출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되는 항목을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7%가 원전건설 지원금을 꼽았다고 한다.

내년 예산에 반영되어 있는 360억불이 삭감되면 초기비용이 큰 원전 건설은 타격을 받는다. EU도 총 143개에 달하는 원자로에 대해 '스트레스 테스트'를 하겠다고 한다.

석유는 전세계 에너지의 40%를 공급하고 있다. 그 중 중동지역이 37%를 생산하고 있으며 매장량으로 보면 이 지역에 50%가 몰려 있다. 현재 중동에 일고 있는 자유화의 모래바람은 이렇게 중요한 중동산 원유공급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런데 다국적군은 리비아 사태에 군사적 개입을 단행하면서도 작전의 목적이 가다피의 축출에 있지 않고 인명살상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굳이 선을 긋고 있다. 리비아 정권의 타도는 리비아인 자신들의 힘으로 하도록 놔두어야 한다는 취지가 그 배경에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UN, 그리고 아랍연맹으로부터 승인받은 다국적군의 행동 범위이기도 하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도 최근 사설을 통해 다국적군이 차제에 가다피를 축출해 이번 전쟁을 속전속결로 끝내고 싶은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슬람 국가의 권력이동을 이슬람 내부의 문제로 보려 하는 서방의 태도는 매우 눈여겨 볼만한 변화다.

가다피 축출은 리비아인 손으로

이집트계 미국인으로서 캘리포니아 공대교수이며 1999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아메드 지와일(Ahmed Zewail)도 이런 주장을 한다.

"미국은 이집트군에 매년 13억불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이중 10분의 1을 할애하면 세계수준의 과학고등학교를 매년 10개씩 이집트 곳곳에 세울 수가 있다. 아랍 세계에서의 자유의 신장을 위해 나쁜 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면 이보다 더 위력적인 무기는 없을 것이다." 그는 현재 미국대학을 떠나 이집트 재건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자유와 번영은 인류보편적 가치다. 서방이 원하는 것은 이슬람 세계와 서방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되 이 가치를 함께 누리자는 것임을 이슬람 세계에 천명할 기회가 지금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리고 그 결과가 매우 불투명할지라도 이집트와 리비아에 대해 서방이 지원은 하되 직접 좌지우지하지는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아랍 세계의 변화를 주시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느린 변화이며 그 동안 중동의 정정불안은 장기화될 것이다. 그에 따라 석유 및 석유 관련 주요 상품의 가격 상승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이미 진전되고 있었지만 그 동안의 국제유동성의 범람도 거시경제적인 측면에서 물가상승의 여건을 제공했다. 돈이 너무 많이 풀린 것이다.

인플레이션 문제는 뒤로 하고 우선 경기침체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국제공조의 일환이다. 유가뿐 아니라 전반적인 물가수준이 오르게 되어 있다.

고물가와 저성장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은 이제 피하기 어렵다.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합한 소위 고통지수(misery index)도 함께 오를 것이다.

중국은 지난 14일 폐막한 전국인민대회에서 내수기반 확대로 무게중심을 옮긴 5개년 계획을 확정했다. 고용과 복지를 위해서는 외형적 경제성장을 늦출 수도 있다는 여유를 보이기까지 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고통지수 높여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현재 일본의 고통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1923년 관동 대지진은 일본을 군국주의로 무장하게 만들었다. 비록 패전국이 되었지만 한때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정도로 강해졌던 것만은 사실이며 원자탄 피폭 이후에도 곧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활했다.

이번의 참사도 지난 20년간의 정체와 무기력에 하나의 목적의식을 선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일본은 수년 내에 아마도 지금보다 더 강한 모습으로 부활할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중국과 일본을 좌우에 둔 우리나라, 그리고 한반도는 다가오는 스태그플레이션의 터널을 어떻게 통과하려고 하는지 다시 한번 심각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 이 기사는 내일신문(http://www.naeil.com) 제휴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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