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만드는 남자의 따뜻한 이야기 2

하루에 거의 열세 시간을 가게에서 보냅니다. 아침밥을 먹고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 지운이를 학교에 데려다 줍니다. 그리고는 오 분 정도 천천히 걸어서 가게 문을 엽니다. 집과 학교, 식당을 선으로 쭉 그린다면 직각삼각형으로 그릴 수 있겠습니다. 이 세 곳, 각각의 거리는 채 삼백 미터도 걸리지 않습니다.

올해 1월 15일 식당을 시작한 후, 제 활동영역은 이곳들을 거의 벗어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운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운동 삼아 동네 한 바퀴를 걸어, 가게 문을 여는 시간이 오전 아홉 시입니다. 그때부터 열세 시간 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저녁 열 시까지 가게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가끔 해바라기를 하거나 찬거리를 사러 나가기도 하지만 다 지척입니다. 바로 코 앞, 오 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이지요.

오후 세 시부터 다섯 시까지는 저 혼자 있습니다. 오전에 점심식사를 같이 준비하시는 분이 퇴근을 하고, 저녁까지 같이 하시는 분이 오기 전까지의 시간, 그 두 시간 말이지요.

단 한 그릇도 팔리지 않다

그 두 시간 동안, 가게 한 구석에서 잠깐 눈을 붙이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잡다한 글을 쓰기도 합니다.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 괜히 허둥지둥 바쁘기만 한 것에서 벗어나, 조금은 제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가끔 그 시간에 늦은 점심 먹으러 지인이 찾아와주면 밥상물리고 자근자근 얘기 나누기도 했고요.

그런데 지난주(3월 마지막 주) 며칠 동안 점심 때 가게가 한가했습니다. 점심 때 단 한 그릇도 팔지 못한 날도 있었으니까요. 손님이 없다 보면 자연, 가게 문 쪽으로 시선이 쏠리고, 그러다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 '그래 오늘만 이런 거야. 내일은 손님이 많을 거야.' 스스로 위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며칠간 계속 반복되자 조금 힘이 빠지더군요. 특히나 저 혼자 있는 그 두 시간이 괴롭더군요. 괜시리 울적한 기분만 들기도 했고요. 저도 모르게 한숨만 나왔습니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급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전에 일하는 분이 퇴근하여 세 시가 조금 넘은 시간, 가게 문을 잠갔습니다. 가게 주위라도 조금 걸으면 기분이 조금 나아질까 싶어서였습니다. 가게 유리문에는 제 핸드폰 번호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어쩌면 밖에서 손님의 전화를 받는다면 오히려 고맙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참 시원했습니다. 밖은 조금 흐렸고 쌀쌀했지만 오히려 기분은  상쾌했습니다. 가게를 나와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발길을 근처에 있는 수목원으로 돌렸습니다. 수목원 입구 소나무 오솔길도 걷고, 절에 들려 삼배라도 할 요량이었습니다. 그러면 조금 기분이 나아질 거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 비를 머금은 사찰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절은 참 아늑하고 좋습니다. 풍경소리도 맑게 느껴집니다. ⓒ 강충민
 
백팔배를 하다

향을 꽂고 삼배를 드렸습니다. 삼배를 하고 반배를 올려 마무리를 했는데도 미진한 느낌이 들어 계속 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백팔 배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정성껏 절을 하다 보면 가게의 일도 어쩌면 마음공부라고 생각이 들 것 같았습니다. 기껏 며칠 손님의 많고 적음에 신경 쓴 제 자신에게도 질책이 될 것 같았고요.

이마를 대웅전 바닥에 세게 내려치고 양손을 펴서 올리고, 일어서 무심코 앞을 보면 촛불이 잔잔하게 빛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백 팔배라 조금씩 힘에 부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저는 횟수를 포기하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기로 했습니다. 삼십 분이 지났다고 느꼈을 무렵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후들거리는 다리에, 땡기는 허벅지의 통증에 잠그고 온 가게생각을 잊기 위함이 더 컸는지도 모릅니다.
 
대웅전 벽면에 걸린 시계는 어느새 오후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양쪽으로 문을 닫아놓은 터라 대웅전 안에 놓인 난로가 따뜻하여, 어느새 제 이마에도 송글송글 땀이 맺혔습니다. 잠시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다시 내려갈 채비를 했습니다. 심호흡 크게 한 번 했고요.

이제 다시 가게에 들어가면 마음을 비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처음 마음처럼 "一喜一悲(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을 것도 같았습니다.
  

▲ 발판밑에 벗어 놓았던 신발 발판 밑 신발을 벗어 놓았습니다. 신발을 벗어 대웅전에 들었을때는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 강충민

대웅전 문고리를 미는 순간, 후욱 하고 물기가 가슴에 안겨 왔습니다. 가게 문을 닫고 나설 때 흐렸던 날씨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후드달린 점퍼라 가게에 갈 때까지는 그나마 안심이라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대웅전 댓돌 밑에 벗어놓은 제 신발에 신경이 미쳤습니다. 제가 절을 하는 동안 내린 비를 오롯이 맞았다면 질퍽질퍽 끌다시피 가게까지 걸어가야 할 판이었습니다.

제 신발을 비에 젖지 않게 댓돌 위에 엎어 놓은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 댓돌 위에 올려져 엎어진 신발 백팔배를 하고 밖을 나오니 제 신발이 이렇게 댓돌 위에 올려져 엎어져 있었습니다. 비에 젖지 말라고요. 그 덕에 제 신발은 하나도 젖지 않았습니다. ⓒ 강충민

그런데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분명 대웅전으로 들어가면서 댓돌 밑에 벗어놓은 제 신발은 처마 밑, 댓돌 위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신발은 거꾸로 엎어져 있었습니다. 밑창이 위로 향하여 빗물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것이지요. 누가 그랬을까요. 기껏 며칠 손님 없다고 징징대며 절에 올라왔던 옹졸한 자기중심적인 저를 위해 누가 그랬을까요.

울컥 가슴이 메여 왔습니다. 정성스레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마음을 비우고, 정성을 다하다 대웅전을 나서는 길, 비가 내렸을 것입니다. 그러다 당신의 젖은 신발을 보고는 옆에 있는 제 신발을 봤을 것입니다. 그 분은 자연스레 당신 신발이 젖었으니, 다른 누군가의 신발만이라도 젖지 않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렇게 제 신발을 엎어 놓고 절을 나섰을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의 양말은 젖은 채로 말이지요.

부끄러웠습니다. 그동안 저는 앞에서만 헤헤거리며, 선한 웃음 웃고 있었습니다. 비 오는 날 댓돌 밑에 벗어놓은 남의 신발이 젖을까, 처마 밑 댓돌 위로 올려 엎어 놓는 배려가 제겐 없었습니다. 가게를 찾아준 분들에 고마움을 느끼는, 그런 마음이 부족했습니다. 
  

▲ 절을 내려가는 길 누군가도 비오는 날 절을 올리고 도시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마음비우고 욕심버리고 배려하고 고마워하는 공부를 하면서요. ⓒ 강충민

그 마음 좋은 분이 누구였는지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가 절을 올릴 때, 누가 대웅전에 있었는지도 의아했습니다. 어쩌면 관세음보살님이 나투셔서 저를 꾸짖지 않고 몸소 행하고 가르쳐 주신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절을 나와 점퍼에 달린 후드에 새근새근 떨어지는 빗방울이 오히려 상쾌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주참여환경연대 4월 소식지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기사에 실린 신발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해 기자가 연출했습니다.-

<제주의소리>

<강충민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제휴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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