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64) 대평리 난드르 일렛당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난드르일렛당 입구 ⓒ장혜련

대평리는 해안지역에 아주 밀집하여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마을 주위엔 기암절벽과 군산에 둘러싸여 있어 안온한 느낌을 주는 마을이다. 제주에서는 보기 드문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는데 바닷가에서 멀리 뻗어나간 넓은 들판이라 해서 ‘큰드르’, ‘난드르’라고도 불린다.

제주의 신당들은 주로 마을의 입구나 마을 안쪽 고즈넉한 곳에 위치한다. 당이 이렇게 마을중심부가 아닌 곳에 위치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당본풀이에 보면 신들이 인가 곁에 좌정했다가 “개소리도 듣기 싫다, 닭소리도 듣기 싫다. 인발이 세다.”등의 이유로 좌정처를 옮겼다는 설명들이 더러 보인다. 그러므로 당은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면서도 나름 조용하고 아늑한 곳에 위치하게 된다. 난드르일렛당은 평야의 가운데 수목에 둘러싸여 아늑하게 조성되어 있다.

마을사람들은 이 당을 ‘할망당’이라고 부른다. 박애자(1930년생, 여)에 따르면 대평리 출신들은 서울과 일본에 살아도 일 년에 한 번씩은 찾아온다고 한다. 할망당에 안 다니면 어딘지 모르게 해를 입는 것 같아 다니게 된다고 한다.

부모님 세대의 얘기를 들어보면 ‘당케’에 배가 들어오면 할망당에 먼저 들른다. 그렇지 않으면 배가 난파된다는 믿음이 있다.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이 마을사람들의 당에 대한 믿음은 남녀 구분 없이 유독 깊다.

여성들이 당을 찾아 기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성들도 면체육대회 등을 앞두고는 당을 찾아가 우승을 기원했다. 또 마을청년들은 군에 입대할 때 찾아가 건강한 군대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무사안녕을 빌었다.

이 할망당에 갈 때는 반드시 마을회관 서쪽에 있는 ‘할망물’을 떠다가 제물을 마련했다. 제일은 7일, 13일, 27일이다. 일렛당인 경우 17일이 아니라 열사흘인 13일에 당에 가는 경우가 더러 있다.

메 3기, 왼쪽 용왕님께 메 1기, 생선이나 돼지고기, 소고기 가리지 않고 형편 닿는 대로 준비하며, 과일 3종류와 지전, 물색, 실을 가지고 간다. 신당은 이 지역의 특징적인 판석형태의 자연석으로 제단과 제장이 둘러져 있으며 신목에는 물색과 지전이 걸려 있다.

제주의 당을 찾아다니다 보면 모두 자신의 마을 당신(堂神)이 가장 세다고 한다. 그것은 그만큼 자신이 믿는 대상이 영험함을 말하는 것이리라. 이곳 역시 당에 얽힌 일화들이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 제주4·3사건 당시 한청단에서 당을 부수겠다고 하자 동네사람들이 빨리 서둘러 당신을 피신시킨 일도 있고, 당을 잘못 손봤다가 여러 사람이 죽어나가는 일을 당한 후엔 이 당에 대한 믿음이 더욱 확고해졌다.

지금도 신성시되는 마을의 이 공간은 새로 보수하고 싶어도 그 화가 미칠까 봐 누구도 앞에 나서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일화들과 함께 할망당은 오늘도 마을의 안녕과 풍요의 기원을 난드르 대평원에서 펼쳐 보이고 있다. / 장혜련

*찾아가는 길 - 마을회관 서쪽 300m → 난드르펜션을 끼고 작은 농로 밭 사이 작은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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