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편지(15)] 어리목 연못가의 고추잠자리
뜨거운 여름 볕이 연못 위의 수련 봉오리를 열어젖힐 때, 잠자리들은 떼 지어 연못 위 허공을 유영한다. 그들의 비행은 가볍고 날렵하다. 잠자리의 비행궤적은 종잡을 수 없이 빠르고 유추할 수 없이 복잡하다. 그들은 다만 날개 달린 동물의 자유를 만끽하듯, 풀잎 끝에 앉았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느 새 눈앞에 잉잉거린다. 그 작고 가벼운 몸집에서 어찌 그리 재빠른 동작이 나오는지 저들의 동력원(動力源)은 나의 관념 안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라이트형제가 발견한 비행원리의 핵심은 물체를 허공에 떠 있을 수 있게 하는 양력(揚力)이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며 팔을 차창 밖으로 비행기의 날개처럼 펼쳐낼 때, 손의 단면에 와 닿는 바람의 각도에 따라 손은 들려지고 내려지는데 손이 들려지는 힘이 양력이다. 이것은 다만 물체를 허공에 띄울 수 있는 힘만을 제공할 뿐이다.
비행의 지향은 ‘떠 있으며’ 동시에 나아감인데, 이 나아감(推力)을 위해 ‘비행기’는 동력을 필요로 한다. 떠있음과 나아감의 조합으로 비행하는 ‘비행기’의 이동경로는 대체로 이차원 방정식으로 설정이 가능하다. 이 이동경로가 곧 항로(航路)인데, 최첨단 비행기라 할지라도 오직 설정된 항로에서만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비행기’의 조종은 설정된 항로를 따라 안전하게 떠있음과 안전하게 나아감을 위한 복잡한 장치들을 조작하는 단순함에 있다.
잠자리는 이 단순한 비행기의 구조적 원형에 가장 가까운 날곤충이다. 선형(線形) 몸체와 열십자로 교차하는 쌍날개를 탑재한 잠자리의 기하학적 구조는 비행기와 같은데, 이는 비행기의 설계가 잠자리의 몸에서 빌어왔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비행기’의 비행은 단지 이동의 방편으로만 설계되었을 뿐인데, 잠자리의 비행은 단순한 이동만을 위한 비행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노동행위이자 잠자리의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비행기’에게 설정되는 항로는 잠자리들에게 존재로써의 의미가 없다. 삼차원의 공간속으로 날개를 저어 가는 무수한 궤적이 곧 잠자리의 항로인데, 저들의 이동경로는 삼차원 방정식으로의 계량이 불가능하다. 저들의 비행경로는 수치로 계량되거나 논리로 이해되는 경계선의 외곽에 있다.
‘비행기’는 양력의 힘을 빌어 뜨지만, 잠자리는 날개의 펄럭임으로 뜬다. 단 한 순간을 머물기 위하여 잠자리의 날개는 수천 번의 진동을 한다. ‘비행기’는 추진력의 바탕 위에 나아가면서 뜨지만, 잠자리의 비행은 헬리콥타처럼 떠있음과 나아감의 분리가 가능하다. 나아가지 않고 단지 떠있기만 할 수 있는 이 단순한 부양력을 잠자리는 날개의 진동에서 그 힘을 얻고 헬리콥타는 블래이드의 회전력으로 얻는다.
그렇다하더라도 비행기와 헬리콥타의 비행역학은 단지 이동의 편리성에만 맞추어져 있을 뿐이며, 잠자리의 비행역학을 완전히 복제하진 못한다. 복잡다단한 잠자리의 비행술의 동력은 두 쌍의 날개의 역학속에 3억년 간 퇴적된 저들의 유전자 속에만 저장되어 있다.
잠자리는 번데기의 과정을 건너뛰고 곧바로 성충(成蟲)이 되는 불완전변태를 한다. 뜨거운 햇살이 유월의 하늘에 쏟아질 때 잠자리들은 빛나는 날개를 달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우화(羽化)다. 우화하는 순간에 잠자리들은 태어날 때부터 몸속에 지녔던 날개를 편다. 여름날의 물가에서 잠자리들은 날개를 펄럭거리며 삼차원의 무한공간을 비행한다. 펄럭일 수 있는 날개가 잠자리들에게는 곧 어른이 되는 상징일 터인데, 여름은 저들에게 날개를 펄럭일 수 있는 생애의 첫 여름이자 또한 마지막 여름이다.
비행을 통한 사냥으로 잠자리는 몸속에 에너지를 저장하는데, 그 쓰임은 오직 건강한 알의 생산에 있다. 허공에서 잠자리들의 교접(交接) 행위는 쾌락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며, 목숨을 담보로 이루어지는 그들의 교접은 성(聖)스러운 종교적 의식과도 같다. 수련 꽃 활짝 핀 연못가의 허공은 의식의 제단이 된다.
수컷의 꼬리 끝에는 갈고리 모양의 부속기 한 쌍이 있는데, 이는 교접할 때 암컷의 머리와 가슴 사이에 패인 홈통에 끼워 두 몸을 단단히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허공에서 두 몸을 하나로 엮기 위해서다. 부속기로 연결된 두 몸은 공중 급유하는 비행기와 같다. 뜨거운 햇볕이 축복처럼 쏟아지는 여름 날, 잠자리들의 교접은 이루어진다.
교접의 순간에도 떠 있기 위한 날갯짓은 계속 되어야한다. 떠 있을 때, 나아가기 위한 동력보다 더 많은 힘이 필요한 것이어서, 허공에 떠 있기 위한 날갯짓은 더 힘차야 한다. (헬리콥타도 나아갈 때보다 떠 있을 때 더 많은 연료를 소비한다)
고통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암컷은 온몸을 휘어 꼬리 끝 마디에 있는 교접기를, 가슴언저리에 있는 수컷의 교접기에 접합시킨다. 접합의 순간에 일직선이던 두 몸은 허공에 하트모양을 그려내는데, 이 찰나의 순간에 수컷의 꼬리 끝 마디에 저장된 정자가 교접된 가슴부위로 이동하며 수정이 이루어진다.
수정이 끝나면 잠자리는 곧바로 산란한다. 암컷은 꼬리를 바르르 떨면서 물속으로 알을 보낸다. 수컷들도 산란 동안은 주변을 지키며 암컷을 호위한다. 지난겨울 추위 속에서 제 삶을 품어주었던 물속으로 잠자리는 자신의 분신들을 떠나보낸다. 다시 만날 기약은 없다. 1년 후 다시 여름이 오면 산란된 알들 중 몇몇은 제 어미처럼 산란을 할 것이다. 그리고 제 분신들과 생이별을 할 것이다.
※ 오희삼 님은 한라산국립공원에서 10년째 청원경찰로 근무하고 있는 한라산지킴이입니다. 한라산을 사랑하는 마음을 좋은 글과 사진으로 담아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