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년을 이어온 산란(産卵)의 생(生)과 사(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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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편지(15)] 어리목 연못가의 고추잠자리

▲ 고추잠자리의 성숙한 수컷은 가을날 잘익은 고추처럼 빨갛다.ⓒ오희삼

뜨거운 여름 볕이 연못 위의 수련 봉오리를 열어젖힐 때, 잠자리들은 떼 지어 연못 위 허공을 유영한다. 그들의 비행은 가볍고 날렵하다. 잠자리의 비행궤적은 종잡을 수 없이 빠르고 유추할 수 없이 복잡하다. 그들은 다만 날개 달린 동물의 자유를 만끽하듯, 풀잎 끝에 앉았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느 새 눈앞에 잉잉거린다. 그 작고 가벼운 몸집에서 어찌 그리 재빠른 동작이 나오는지 저들의 동력원(動力源)은 나의 관념 안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라이트형제가 발견한 비행원리의 핵심은 물체를 허공에 떠 있을 수 있게 하는 양력(揚力)이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며 팔을 차창 밖으로 비행기의 날개처럼 펼쳐낼 때, 손의 단면에 와 닿는 바람의 각도에 따라 손은 들려지고 내려지는데 손이 들려지는 힘이 양력이다. 이것은 다만 물체를 허공에 띄울 수 있는 힘만을 제공할 뿐이다.

비행의 지향은 ‘떠 있으며’ 동시에 나아감인데, 이 나아감(推力)을 위해 ‘비행기’는 동력을 필요로 한다. 떠있음과 나아감의 조합으로 비행하는 ‘비행기’의 이동경로는 대체로 이차원 방정식으로 설정이 가능하다. 이 이동경로가 곧 항로(航路)인데, 최첨단 비행기라 할지라도 오직 설정된 항로에서만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비행기’의 조종은 설정된 항로를 따라 안전하게 떠있음과 안전하게 나아감을 위한 복잡한 장치들을 조작하는 단순함에 있다.

▲ 고추잠자리의 투명한 날개는 그물맥인데 저 가벼운 날개가 갖가지 묘기를 부리는 비행의 원천이다.ⓒ오희삼

잠자리는 이 단순한 비행기의 구조적 원형에 가장 가까운 날곤충이다. 선형(線形) 몸체와 열십자로 교차하는 쌍날개를 탑재한 잠자리의 기하학적 구조는 비행기와 같은데, 이는 비행기의 설계가 잠자리의 몸에서 빌어왔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비행기’의 비행은 단지 이동의 방편으로만 설계되었을 뿐인데, 잠자리의 비행은 단순한 이동만을 위한 비행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노동행위이자 잠자리의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 밀잠자리의 수컷. 잠자리는 비행기의 구조적 원형에 가장 가까운 날곤충이다. 선형(線形) 몸체와 열십자로 교차하는 쌍날개를 탑재한 잠자리의 기하학적 구조는 비행기와 같은데, 이는 비행기의 설계가 잠자리의 몸에서 빌어왔음을 증거하는 것이다.ⓒ오희삼
잠자리는 오직 생존하기 위해서 비행한다. 하루살이나 모기나 파리 같은 먹이를 사냥하는데 소요되는 능력은 잠자리의 비행능력에 정비례한다. 잠자리는 ‘비행기’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갖가지 선회비행과 순간적인 180도의 회전, 상하좌우로의 전환 등을 언제나 어디서나 해낼 수 있다. 이런 비행의 기술은 오직 먹이를 사냥하기 위한 비행이고 날쌘 비행능력은 오직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일 뿐이다.

‘비행기’에게 설정되는 항로는 잠자리들에게 존재로써의 의미가 없다. 삼차원의 공간속으로 날개를 저어 가는 무수한 궤적이 곧 잠자리의 항로인데, 저들의 이동경로는 삼차원 방정식으로의 계량이 불가능하다. 저들의 비행경로는 수치로 계량되거나 논리로 이해되는 경계선의 외곽에 있다.

‘비행기’는 양력의 힘을 빌어 뜨지만, 잠자리는 날개의 펄럭임으로 뜬다. 단 한 순간을 머물기 위하여 잠자리의 날개는 수천 번의 진동을 한다. ‘비행기’는 추진력의 바탕 위에 나아가면서 뜨지만, 잠자리의 비행은 헬리콥타처럼 떠있음과 나아감의 분리가 가능하다. 나아가지 않고 단지 떠있기만 할 수 있는 이 단순한 부양력을 잠자리는 날개의 진동에서 그 힘을 얻고 헬리콥타는 블래이드의 회전력으로 얻는다.

그렇다하더라도 비행기와 헬리콥타의 비행역학은 단지 이동의 편리성에만 맞추어져 있을 뿐이며, 잠자리의 비행역학을 완전히 복제하진 못한다. 복잡다단한 잠자리의 비행술의 동력은 두 쌍의 날개의 역학속에 3억년 간 퇴적된 저들의 유전자 속에만 저장되어 있다.

▲ 뜨거운 여름 볕이 연못 위의 수련 봉오리를 열어젖힐 때, 잠자리들은 떼 지어 연못 위 허공을 유영한다.ⓒ오희삼
대개의 잠자리는 한해살이다. 그들의 고향은 물속이다. 알에서 깨어난 잠자리는 유충의 형태로 연못이나 늪 속의 물풀과 바닥의 진흙 속에서 유년을 보낸다. 어린 유충을 수채(水蠆)라 하는데 어미의 보살핌, 그 살가운 모성애의 존재를 모르는 어린 수채들의 삶은 가엾다. 태어나면서부터의 독립과 홀로 섬을, 다만 잠자리들은 행위로써 보여주는데 알에서 부화한 잠자리의 애벌레들은 봄 동안 여러 번의 탈피과정을 거친다. 여러 번의 실패를 통하여 스스로 살길을 터득한 잠자리들에게만 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자유의 날개가 주어진다.

잠자리는 번데기의 과정을 건너뛰고 곧바로 성충(成蟲)이 되는 불완전변태를 한다. 뜨거운 햇살이 유월의 하늘에 쏟아질 때 잠자리들은 빛나는 날개를 달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우화(羽化)다. 우화하는 순간에 잠자리들은 태어날 때부터 몸속에 지녔던 날개를 편다. 여름날의 물가에서 잠자리들은 날개를 펄럭거리며 삼차원의 무한공간을 비행한다. 펄럭일 수 있는 날개가 잠자리들에게는 곧 어른이 되는 상징일 터인데, 여름은 저들에게 날개를 펄럭일 수 있는 생애의 첫 여름이자 또한 마지막 여름이다.

▲ 물구나무를 서는 고추잠자리 수컷. 잠자리들의 생의 목적은 산란이다. 산란은 모든 비행의 지향점이며 뜨거운 여름날 건강한 알을 수정하기 위하여 수컷들은 정성을 다한다.ⓒ오희삼
여름 내내 잠자리는 노동으로써의 비행을 하는데, 저들의 비행은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있다. 그들이 태어난 연못가에서 내년 여름을 맞이할 알을 산란하는 일인데, 잠자리 종족이 이 땅에 태어난 이래 3억년을 이어온 그들만의 전통이다. 한 잠자리의 생(生)은 산란(産卵)으로 짧은 삶을 마감하지만, 산란을 통한 죽음(死)으로써 한 잠자리의 삶은 완성된다. 완성된 개별적 삶들의 생과 사가 이어지고 포개지면서 잠자리 종족의 삶은 영위되고 그렇게 3억년의 시간을 이어왔다.

비행을 통한 사냥으로 잠자리는 몸속에 에너지를 저장하는데, 그 쓰임은 오직 건강한 알의 생산에 있다. 허공에서 잠자리들의 교접(交接) 행위는 쾌락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며, 목숨을 담보로 이루어지는 그들의 교접은 성(聖)스러운 종교적 의식과도 같다. 수련 꽃 활짝 핀 연못가의 허공은 의식의 제단이 된다.

▲ 수컷의 꼬리 끝에는 갈고리 모양의 부속기 한 쌍이 있는데, 이는 교접할 때 암컷의 머리와 가슴 사이에 패인 홈통에 끼워 두 몸을 단단히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위의 빨간색이 수컷이고 암컷은 오렌지색이다.ⓒ오희삼

수컷의 꼬리 끝에는 갈고리 모양의 부속기 한 쌍이 있는데, 이는 교접할 때 암컷의 머리와 가슴 사이에 패인 홈통에 끼워 두 몸을 단단히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허공에서 두 몸을 하나로 엮기 위해서다. 부속기로 연결된 두 몸은 공중 급유하는 비행기와 같다. 뜨거운 햇볕이 축복처럼 쏟아지는 여름 날, 잠자리들의 교접은 이루어진다.
교접의 순간에도 떠 있기 위한 날갯짓은 계속 되어야한다. 떠 있을 때, 나아가기 위한 동력보다 더 많은 힘이 필요한 것이어서, 허공에 떠 있기 위한 날갯짓은 더 힘차야 한다. (헬리콥타도 나아갈 때보다 떠 있을 때 더 많은 연료를 소비한다)

고통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암컷은 온몸을 휘어 꼬리 끝 마디에 있는 교접기를, 가슴언저리에 있는 수컷의 교접기에 접합시킨다. 접합의 순간에 일직선이던 두 몸은 허공에 하트모양을 그려내는데, 이 찰나의 순간에 수컷의 꼬리 끝 마디에 저장된 정자가 교접된 가슴부위로 이동하며 수정이 이루어진다.

▲ 수정이 끝나면 잠자리는 곧바로 산란한다. 암컷은 꼬리를 바르르 떨면서 물속으로 알을 보낸다. 수컷들도 산란 동안은 주변을 지키며 암컷을 호위한다.ⓒ오희삼

수정이 끝나면 잠자리는 곧바로 산란한다. 암컷은 꼬리를 바르르 떨면서 물속으로 알을 보낸다. 수컷들도 산란 동안은 주변을 지키며 암컷을 호위한다. 지난겨울 추위 속에서 제 삶을 품어주었던 물속으로 잠자리는 자신의 분신들을 떠나보낸다. 다시 만날 기약은 없다. 1년 후 다시 여름이 오면 산란된 알들 중 몇몇은 제 어미처럼 산란을 할 것이다. 그리고 제 분신들과 생이별을 할 것이다.

▲ 잠자리의 산란은 3억년을 이어온 그들의 생존법이다.ⓒ오희삼
야생의 모든 동물들의 죽음은 비극적이다. 생이 괴롭거나 고달파서 자살하는 야생동물을 우리의 관념 안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산란 후 어느 허공에 떠 있지 못하고 지상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잠자리의 주검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고 가볍고 가엾다. 죽어서 껍데기만 남은 잠자리의 몸은 말한다. 날지 못하는 잠자리는 이미 잠자리의 생이 아니라고.

▲ 한 잠자리의 생(生)은 산란(産卵)으로 짧은 삶을 마감하지만, 산란을 통한 죽음(死)으로써 한 잠자리의 삶은 완성된다. 완성된 개별적 삶들의 생과 사가 이어지고 포개지면서 잠자리 종족의 삶은 영위되고 그렇게 3억년의 시간을 이어왔다.ⓒ오희삼

※ 오희삼 님은 한라산국립공원에서 10년째 청원경찰로 근무하고 있는 한라산지킴이입니다. 한라산을 사랑하는 마음을 좋은 글과 사진으로 담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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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2008-01-11 23:52:14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좋은자료 잘보고갑니다.
222.***.***.152

황선혜 2007-12-28 13:34:22
좋은사이트 잘보고갑니다.
222.***.***.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