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과 해군기지 (2)

▲ 강정 바다는 해군기지 건설로 매립될 예정이다. 공사장비가 바다까지 나가 있다. <사진출처=조성봉 감독>
① 이른 아침, 딸아이의 등교를 챙기고 잠깐 누웠다는 것이 또 다시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문득 창문으로 비치는 아침 햇살의 기운에 깨어나긴 했지만, 어느 덧 시간은 늦은 아침이다. 그래도 얼른 털고 일어나지 못했던 것은 비단 아침햇살의 따사로움이 준 안락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 지나간 일들의 단상들이 번갈아가며 내 몸의 무게중심을 자꾸만 바닥으로 무너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 봄은 떨어지지 않는 감기와 더불어 그늘처럼 드리워진 상념으로 새싹이 돋고 꽃이 피는 줄도 몰랐다.

해마다 4.3 시기가 돌아오면, 육지로부터 이런 저런 단체와 사람들이 제주를 찾는다. 제주 4.3의 역사를 배우고, 그 흔적들을 살펴보기 위함일 것이다. 4.3 63주년을 맞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이런 현상은 이어졌다. 그 중 어느 한 단체에서 나보고 제주4.3에 대해 말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해군기지 문제도 언급해 달란다. 4.3과 해군기지...

이 강의를 준비하는 과정은 나에게 고통이었다. 무엇보다 60여년 전, 이 땅에서 벌어진 살육의 장면을 상상하고 죽음의 이미지에 나를 밀어넣는 일은 괴로운 것이었다. 해마다 4.3이 도래하지만, 고백하건데 이 시기에 열리곤 하는 각종 4.3 관련행사로부터 난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좀 떨어져 있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유족은 아니지만, 4.3시기마다 재연되는 비극의 기억에 동참하는 일이 나에게는 무언가 버거운 ‘의무’ 같은 것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에 현실의 해군기지 문제까지 얹어 누군가에게 들려줘야 하는 일이었다.

▲ 온몸으로 기지건설에 저항하는 주민들. <사진=조성봉>
2005년으로 기억한다. 4.3 57주년 위령제가 봉행되는 평화공원.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4.3영령 분노한다. 해군기지 철회하라”, “평화의 섬 역행하는 해군기지 반대한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미 4.3진상보고서가 채택되고, 4.3에 대한 대통령의 공식사과가 있은지 2년이 다 된 시기에 열리는 위령제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4.3유족 일부가 “이런데까지 와서 시위냐!”며 격렬한 항의와 심지어 발길질까지 해대는 일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심한 자괴감에 흔들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국가’폭력에 의해 크나큰 희생을 치러야 했던 4.3문제가 어렵사리 ‘국가’차원에서 해결 되어가는 마당에, 또다시 해군기지 문제로 ‘국가’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것이 일부 유족에게는 부담이자 훼방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이 사건은 4.3문제의 해결이 지향하는 상생과 화해, 평화의 논리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 이전에, 유족은 물론 어쩌면 제주의 주민 누구에게나 그것이 피해의식이든 어떤 식으로든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4.3과 해군기지 문제는 현실에서 같이가고 있었다.

해군기지 문제를 언급할 때 마다 나는 이 문제가 제주의 숙명과도 같은 일임을 강조하곤 한다. 그것은 제주가 처한 ‘위치’ 때문이다. 이는 해군기지 문제를 염려하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것이다. 지난 1937년 일제가 제주에 군비행장을 건설한 이래로 매 15년마다 주기적으로 되풀이돼 온 군사기지의 시도는 이를 증명한다. 그만큼 제주는 지리적 위치상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인 것이다.

▲ 해군기지 건설에 동원된 중장비 뒤로 한라산이 보인다. 60여년 전 4.3당시에 사람들은 살기 위해 한라산에 들었다.<사진= 조성봉>
비단 군사기지 문제가 아니더라도 유사 이래 제주는 늘 제주를 둘러싼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세력확장을 위한 교두보, 혹은 전진기지로 위치지어져 왔다. 그 때마다 제주민들은 외부세력에 의해 때로는 침탈에 따른 가혹한 학대로, 때로는 동원된 강제노역으로, 그리고 죽음으로 유린당해 왔다.

그런 제주가 오랜 고난의 역사를 뒤로 하고 근대에 들어 섬의 척박함이 오히려 천혜의 자원으로 재발견되면서 국민관광지로 각광받게 되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세계의 섬’으로 인정되는 등 ‘기회의 역사’로 나아가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 때,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있다. 설득력도 없고 명분도 취약한 해군기지 건설이 군사요충지와 평화의 섬이라는 긴장관계 속에서 수십년 버텨온 제주의 미래를 허망하게도 한순간에 군사적 갈등의 지대로 편향지어 버리는 것이다. 많은 도민들은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곧이어 공군기지도 들어오고 말 것이라는 우려에 공감한다.

"20세기 동북아시아의 역사 속에서 제주는 오히려 그 지정학적 위험성을 더욱 강하게 경험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차대전 말기에 일본군이 대규모로 제주에 주둔하게 되면서 제주는 일본 본토 수호를 위한 대규모 전쟁터가 되기 직전에 가까스로 그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20세기 제주 역사의 최대 비극이었던 4.3의 경험도 제주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일정한 연관이 없다고 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동원된 포크레인이 이제 바다앞까지 다다랐다. 마치 바다를 건져올릴 태세다. <사진=조성봉>
"만일에 한국, 중국, 일본 동북아3국이 상호존중,공동번영의 정신을 버리고 권주의적이고 팽창주의적인 태도로 나아가게 된다면 제주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오히려 지정학적 중요성은 다시 위험성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만일 일단의 팽창주의적 움직임 속에서 제주의 군사적 중요성이 부각되게 된다면 제주의 운명은 어떻게 될는지 상상해 보아야합니다. 그것이 다른 나라의 팽창주의적 압박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제주는 국제적 위험성 앞에 노출되고 말 것입니다"

2001년 제1회 평화포럼에서 행해졌던 제주도지사의 개막 연설문 중 일부이다. 당시 위 연설의 주인공은 현직 우근민 지사이다. 그런 우근민 지사가 왜 이제 와서 "단 한번도 해군기지를 반대해본 적이 없다”면서, 어찌 그리 당당히도 해군기지 공식 수용입장을 서둘러 밝혔는지 더 이상 묻고 싶지 않다.

다만, 그게 누구였든 이제 와서 매년 연례행사로 확대 개최하겠다는 그 평화포럼의 제1회 도지사 연설문 내용의 핵심이 바로 위의 그것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내용은  ‘가능성과 위험’ 이라는 논제로 제주의 위상과 미래를 매우 확고하게 설정했다는 것이다. 제주의 대표가 10년전 국제사회 앞에서 공식 천명한 바로 그 제주의 ‘가능성과 위험’이 이미 지금 첨예하게 현실로서 충돌하고 있다는 것을 제주도민 모두가 똑바로 봐야 한다.

연설문의 내용에도 언급된 바와 같이, 제주4.3 역시 지리적 위치로 인한 제주의 운명을 배경으로 벌어진 사건이었다. 비록 제주도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므로 이를 확보하기 위해 강경진압 작전을 폈다는 식의 구체적인 근거는 없지만, 해방이후 벌어진 한반도를 둘러싼 미.소 양진영이 벌이는 냉전대결에 있어서 한반도는 매우 민감한 위치에 있어고, 여기에 제주도에서 벌어진 5.10 단선반대운동은 당시 미군정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억제’되어야 할 문제였던 것이다.

▲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본격적인 공사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충돌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사진=조성봉>
당시 미 국무부와 군부 사이에 벌어진 주한미군 철수 논란에도 불구하고 4.3 당시 대량 학살을 가능케 했던 초토화 작전이 실질적인 미국의 군사 통제권 하에서 비롯되었고, 궁극적으로 이는 전후 냉전체제에 대응한 미국의 대한반도 전략과 맞물려 있었다는 것이 정부가 채택한 4.3진상보고서상의 내용인 것이다.

국가로 인해 제주의 주민들이 고통을 당하는 현실은 4.3이 과거의 역사가 아닌 진행형이라는 생각을 강화시킨다. 나는 4.3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로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해군기지건설이 2002년 안덕면 화순을 근거지로 추진된 이후, 남원읍 위미 2리, 위미 1리, 그리고 지금의 강정마을에 이르기까지 그 양상은 더욱 첨예해졌다. 심지어 강정마을의 한 주민은 "4.3때도 이와 같지는 않았다"고 할 정도로, 제주 해군기지 건설문제 따른 주민 갈등 문제는 4.3 이후 최대의 사건이라는 지적이다. 기지건설 문제로 인한 갈등양상은 마을 공동체내에서 그 동안 쌓아왔던 친척, 이웃간 관계의 미덕과 한 마을의 공동체성마저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식의 매우 심각한 양상으로 치달았다.
 
국가폭력이라는 관점에서도 다르지 않다.
 
해군기지 건설후보지로 강정마을이 정해지면서, 많은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을 치르고 있다. 40여명의 주민들이 각종 사건으로 고소. 고발돼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업무방해, 집시법 위반 등 현행범 신분으로 주민들을 체포해 물린 벌금만 5,000만원을 넘기고 있다.

지난 2009년 9월, 서귀포신문이 전문의에게 의뢰해 강정마을 주민들의 상태를 조사한 결과에서, 조사대상 주민의 40%이상이 ‘죽고 싶다’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해군기지 문제로 주민들에게 생겨난 단절, 증오, 상처와 같은 것들은 분명 어떤 폭력의 산물인데, 그것이 명백히 국가사업을 매개로 이뤄진 점을 반영하면, 해군기지를 밀어붙이는 당국의 모습은 또다른 국가폭력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 '행정 절차'라는 형식논리에만 의존한 채 기지건설이 추진되어지는 과정은, 해당 주민에게 있어서는 명백한 '폭력'으로 받아들여졌다. 일련의 기지건설 과정에서 드러난 구체적인 국가의 모습은 동원과 회유, 고소, 조작 등의 모습으로 다가왔고, 그것은 주민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넘어 깊은 상처가 되었던 것이다.

고유기 정책위원장.
4월, 동백이 지는 시절, 강정마을이 쓰러지고 있다. 연일, 포크레인을 앞세워 기지건설을 위해 박차를 가하는 군당국의 모습은 마치 원래부터 이 곳은 전쟁을 위한 요새임을 하루라도 빨리 낙인찍으려는 듯 보인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기지가 지키고자 하는 국가안보는 도대체 어느 국민을 위한 것인가?. 주민의 희생을 대가로 국민위에 올라서는 기지가 평화를 위한 것이라면, 그 평화는 누구의 평화인가?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정책위원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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