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말 나누고 미역으로 허기 달래던 '해녀 불턱'
속말 나누고 미역으로 허기 달래던 '해녀 불턱'
  • 김순이 (-)
  • 승인 2011.04.2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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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성 문화유적100] (66) 상모3리 대낭굴 불턱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대낭굴 불턱 ⓒ김순이

땀에 젖어서 대정읍 상모리 해안의 대낭굴불턱에 도착했다. 정오 무렵이었다. 바닷가인데도 무더웠다. 바람이 거셌다. 파도는 먼 바다에서부터 하얗게 거품을 물며 달려왔다.

정산옥(1940년생, 여) 해녀는 거친 파도에 밀려온 감태를 건져서 모래에 널고 있었다. 대낭굴불턱을 찾아왔다고 하자, “아이고, 이젠 귀신 나오게 되신디…….”하며 문득 그리운 눈빛으로 불턱 쪽을 바라본다. 귀신이 나올 정도라는 건 오래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이 바닷가는 상모3리 해녀들의 바다이다.

회색빛 모래사장과 특이한 암석들의 배치는 달 표면을 연상시킨다. 예전에는 이곳에 인가라고는 하나도
없고 모래바람이 불어서 눈을 뜨기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바닷가의 모래언덕에 옹골지게 지은 불턱. 해녀들에겐 오아시스였다.

조선시대 어느 한때는 무성한 시누대 숲을 이루어서 대낭굴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 이곳은 송악산 뒤쪽이라 좌우의 풍광이 특이한 맛을 자아낸다. 그래서 해녀들은 일년에 한 번 야유회도 여기에 와서 놀았단다. 현대 여성들이 미장원에서 동네 소문을 얻어듣는다면, 예전의 해녀들은 불턱에서 정보를 교환했다.

“여기서 불 초멍(불을 쬐면서) 속말도 허고, 세상 돌아가는 말도 얻어듣고 헷주.”

불턱은 해녀의 됨됨이나 성격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평가 되는 자리이기도 했다. 남보다 먼저 바다에서 나와 동료들을 위해서 불을 피워놓는 해녀가 있는가 하면 항상 남이 해놓은 것만 따먹는 얌체도 있다. 미역 욕심에 산기(産氣)를 무시하고 물질 나왔다가 여기서 아기를 낳은 해녀도 있었단다.

“그런 애기는 별명이 불턱둥이!”

정산옥 해녀는 올해 어촌계에 바당세를 내고 해안에 밀려 온 감태 수집을 계약했다고 한다. 바당세는 일년에 약 300만원. 그해 감태값이 얼마에 책정되느냐에 따라 돈을 벌거나 본전도 못건지거나 한단다. 작년 가격은 한 칭(秤: 60㎏)에 50만원 정도였다.

이렇게 거친 바람이 부는 날은 바다 속에도 바람이 불어 먼바다에서 자라는 감태가 뿌리 채 뽑혀 파도에 실려 온다. 이를 풍조(風藻)라 한다. 마을에 따라 물질을 할 수 없을 만큼 늙거나 병든 해녀들에게만 채취권을 주어 소득을 올리게 해주는 곳도 있다. 이른바 해녀들의 경로우대요, 복지제도인 셈이다.

대낭굴불턱 안을 들여다본다. 푸르딩딩하게 얼어붙은 몸을 불에 쬐며 수다를 떨고 미역귀를 불에 구워 먹으며 허기를 달래던 바다의 전사(戰士)들이 떠오른다. 그들의 시린 영혼은 지금 어디에서 불을 쬐고 있을까. 불턱 주위는 해녀들의 숨비소리를 들으며 피어나는 순비기나무가 보라색 꽃을 피우고 있다. / 김순이

* 찾아가는 길 - 상모3리 산이수동 → 상모해녀의 집 → 바닷가 방향 서쪽 약 3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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