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덴 유키오 주제주일본총영사

▲ 주부산일본총영사로 부임받아 떠나게 되는 요덴 유키오 주제주일본총영사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1985년 일본 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 1923~1996)가 두 차례 제주를 방문해 『탐라 기행』을 펴냈다. 이 책은 일본에서 제주를 언급한 몇 안 되는 일본 문학작품 중 대표작으로 널리 읽히고 있다. 시바 료타로처럼 작가는 아니만, 3년 동안 제주에 살면서 제주의 속살을 밟고 만지고 느껴온 요덴 유키오 주제주일본총영사가 제주 근무를 마치고 다음 부임지로 떠나기에 앞서  사진집『내마음속에 묻어둔 ‘삼다도의 정취’』를 펴내 제주에 대한 그의 애틋한 마음을 다시 한 번 엿보게 했다.

2008년 4월 제주에 온 요덴 유키오 총영사. 일본영사관을 제외하곤 제주에 다른 대사관 또는 외교관이 없기도 하지만, 그는 영화나 TV 등에서 봐 온 외교관과는 달랐다. 이곳에서 열리는 공식 비공식 행사에 주저 없이 참여하고, 제주도민들과도 서스럼없이 말을 한다. 외교관이면서도 어떨 때 친구와 같단 느낌을 준다. 제주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도 해 준다. 그는 주말만 되면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선다. 제주의 모든 것을 알기 위해서다.  그렇게 해서 그는 제주 마니아가 됐다. 제주의 돌하르방에서부터 해녀, 굿, 오름, 한라산에 이르기까지...집 인근에 있는 방선문은 무려 80번을 넘게 찾았다고 한다. 그 80차례 동안 그는 방선문을 하나하나 사진에 담았다. 3년 전과 후 달라진 모습에서 짧은 시간이지만 역사의 흐름을 본다. 그는 제주의 자연에서 제주사람들의 생명력을 본다고 말한다.

수백년전 흘러온 역사. 문화가 지금 일본을 세계적으로 보여주는 콘텐츠가 됐듯이 그는 제주의 정체성을 지킬 것을 주문한다. 현대적 건물보다는 제주의 멋을 보여줄 수 있는 초가나 올레가 더 세계적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외국자본도 중요하지만 개발보다는 환경을 지키는 게 제주의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3일 요덴 유키오 총영사를 그의 관저에서 만났다. 그는 8일 제주를 떠나 부산총영사로 부임한다. 그는 인터뷰을 하기에 앞서 취재기자에서 선물이라며 사진첩을 내 놓는다.

▲ 요덴 유키오 주제주일본총영사가 제주생활 3년간 찍어온 제주의 독특한 자연 현상들을 찍어온 사진첩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다음은 요덴 유키오 총영사와 인터뷰 전문.

-  이외다. 놀랍다. 3년이 적은 시간은 아니지만, 작가도 아닌 외교관이 그 바쁜시간에 제주 하나하나를 담았다니 놀랍다.
“사진은 많이 찍었는데 갑자기 사진집을 만들려니 고르기가 힘들었다. 제주의 자연풍광을 담았다. 돌하르방과 돌담, 올레길, 초가, 해녀, 오름, 한라산 등 만족스럽진 않지만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많이 찍었다. 근처에 방선문이 있는데 지금까지 80회 넘게 갔다. 나름대로 하류 중류 상류 구별해서 갔다. 방선문 상 쪽으로 가려면 바위를 넘어가야 한다. 3년 전엔 비교적 간단히 올라갈 수 있었다. 그 후 태풍이나 홍수가 있어서 모래가 쓸려 내려왔다. 올라가기가 더 어려워 졌다. 그 후엔 자주 못 올라갔지만 자연이 변한 모습이나, 3년전에 안보였던 것들이 있다. 여기(사진집)에도 목사가 새긴 글이 새롭게 나타났다. 있다. 모래가 쓸려가면서 그동안 묻혀있던 것들이 새롭게 드러난 것이다. 바위를 뚫고 나오는 나무모습도 보 수 있는데, 이걸 보면서 그런 환경 속에서 이겨내고 살아온 (제주인의) 문화라든가 그런 것들 보는 듯하다. 생명력을 많이 느꼈다.”

- 총영사님의 사진첩을 보니 제주의 자연과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주자연의 역사를 보는 듯하다.
“자연의 역사기도 하고, 인간의 생명력, 인내심 동시에 느낀다. 자연의 소재도 많이 있고 그 속에 제주의 역사...민속적인 집이나 올레도 그렇고. 민속 신앙도 있다. 그런 것들을 깊이 연구했으면 했는데...(부산으로) 가라고 하니 가지 않을 수 없지만(웃음) 그까진 못해 아쉽다.”
 
-3년간 있으면서 제주 속살 곳곳을 본 것 같은데, 아직 못 본 곳이 있나?
“물론 있다. 많이 있다. 오름도 있고, 세계자연유산도 표면적으론 봤지만...보통사람들이 볼 수 없는 곳, 용천동굴 같은 곳들은 전혀 보질 못했다. 이외에도 아직 (제주에 대해)모르는 게 많다. (주말에)차타고 밖으로 나가다가 관심 있으면 나가서 본다. 계곡 같은 곳도 좋아한다. 특히 제주엔 건천들이 많이 있는데, 굉장히 관심 많다. 다른 데선 보기 힘든 형태다. 웅대하고 바위도 그렇고, 비 왔을 때와 건천기에도 다르다. (관사에서)제일 가까운데서 볼 수 있는 곳이 방선문이다. 조선시대 목사들이 갔던 곳이라서 그렇지, 그런 것 상상도 되고, 거창하게 말하면 조그마한 우주를 느낄 수 있어 아주 좋다. 외국을 많이 다녔지만 가까운 데 그런 곳을 보거나 체험할 수 있는 데가 많지 않다. 또 제주도민들이 따뜻하게 받아주시고 대화를 해도 상대해 주시고, 그런 면에선 제주에는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굉장히 많다.”

▲ 주부산일본총영사로 부임받아 떠나게 되는 요덴 유키오 주제주일본총영사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일본선 느낄 수 없는 매력이 있다는 건데.
“제주는 세계자연유산을 비롯해 유네스코 자연과학분야 3관왕 했기에 자연의 아름다움은 더 말할 나위가 없지만, 해변가 바위만 해도 육지 있는 것과 비교하기만 해도 다르다. 3년 전 부임하면서 제주공항 상공에서 내려다 봤을 때 눈에 띄었던 게 파란 바다와 만발한 유채꽃, 그다음에 아주 새까만 돌, 먹돌하고 돌담들을 봤는데, 거대한 그림을 보는 것 같은 그런 인상이 깊게 남았다. 나중에 (하늘에서 봤던) 그런 곳들을 많이 다녀봤는데. 실제 들어가니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 <삼다도의 정취>를 보면 엄청난 양의 사진을 찍은 것 같은데,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산속에 들어가서 사진 찍으려니 어떤 분들이 ‘뭐하고 있냐. 수상한 사람이 왔구나’ 했었다. 돌담의 예술성을 느껴 찍고 있다고 얘기해도 미덥지 않은 때도 있었다. (초가 사진) 이런 건 굉장히 아름답다. 제주에 계신 분들은 못 느낄지도 모르지만, 오랜 역사 속 인간의 지혜가 있구나를 느낀다. 결국 자연의 미가 있는 동시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연과의 융화랄까, 받아들이며 어려울 땐 순응하고, 또 개척하면서 그 사회를 구축해 나가는 그런 개척정신, 서로가 서로를 돕는 수눌음 정신을 느낀다. 그런 것들이 아주 옛날부터 살아온 분들의 지혜로 모여 돌담 하나라도 만들진 게 아닌가 생각한다.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다.”

-제주에서 3년을 지냈다. 이제 떠날 때가 다 됐는데, 지난 3년 제주생활 어떻게 보냈는가. 
“2008년 4월 초 왔다. 딱 3년인데, 실제론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는 실감이 안된다. 제주에선 세계 표준시간보다 빨리 흐른 것 같다.(웃음) 아주 보람 있었다. 행사도 많이 참석해서 되도록 보고 느끼려 했다. 한가하다거나 실증 난 적이 전혀 없었다. 시간이 더 있었으면 하고, 언제나 그랬다. 저로선 3년이란 세월이 굉장히 짧았다.”

-보통 부임지 발령을 받으면 가기 전에 부임지에 대한 사전 조사도 공부도 한다.  제주에 오기 전에 나름 3년간 무엇을 해봤으면 하겠다는 생각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 계획들을 가지고 제주에 왔었나.
“제주에서 근무를 한 선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도쿄에 있을 때 제주출신 재일한국인들이 많았고, 서울에서 한국말 배울 때 제주에서 온 사람도 있어서 부담은 없었다. 다만 재일교포사회가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이들이 많았던 역할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특히 문화교류를 했으면 하는 게 바람이었다. 또 하나는 돼지수출 해결됐으면 하는 게 중요했고, 한라산도 꼭 한 번은 올라가겠다고 생각했다.“

▲ 주부산일본총영사로 부임받아 떠나게 되는 요덴 유키오 주제주일본총영사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총영사께서 제주에 올 땐 돼지고기 수출 중단될 때였다. 그 이후에 재개됐다가 다시 육지에 구제역이 나면서 본의 아니게 다시 중단됐다. 참으로 안타까웠을 것 같다.
“그건 충격이다. 제주에 부임해 와서 김태환 지사를 처음 인사했을 때 부탁받은 게 돼지고기 재수출 관계였다. 일본 외무성과 농림수산부 담당 책임자들에게 많이 전화했다. 재작년 9월에 수출이 재개됐을 때 정말 기뻤는데, 반년 후 작년 1월 안동서  구제역 파동이 나면서 또 중단됐다. 일본 정부에 제주는 괜찮다고 이야기 했지만, 받아들여지질 않았다.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제주에 대한 좋은 기억 많은 듯하다. 이것만큼은 잊지 못하겠다는 게 있나.
“일본 대지진 때 제주에서 많이 도와주셨는데 그 기억이 제일 크다. 다음에는 작년 5월 제주서 열린 한일중 정상회의다. 그 때 총리 내외분이 같이 왔는데 근무할 때 총리를 모시는 게 보람이 있다. 당시 총리부인은 일도초등학교엘 갔는데 교육시설이나 일본어를 배우는 걸 보면서 굉장히 놀랐다. 그분들과 같이 다닐 수 있었다는 건 내겐 영광이었다.  사람에 대한 기억도 있다. 한일친선협회 강재업 회장님이나 그 전의 송봉규 회장님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게 제 인생에도 큰 도움이 됐다.”

- 밖에서 보는 제주사람들은 좀 투박하다고 할 까? 관광지로서 친절하지 않다고 하는데, 총영사께서 지켜본, 외부인-그것도 외국인의 눈에 비친 제주사람 어떤가.
“육지분들이 볼 때는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제 나름대로 해석하면, 제주사람들은 수눌음 정신 있다. 그건 서로가 말을 안 해도 이뤄지는 그런 사회인 것 같다. 저도 사무실에 있을 때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꽃이나 필통 같은 걸 정리해 주시는데, 서로 미리 양해를 얻는 과정이 없을 만큼 다 마음이 통하는 분들이라는 거다. 이게 외부에서 온 경우엔 위화감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그게 제주의 따뜻한 마음이 있기에 그렇게 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 또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에 대해 불신감이 조금 있는데, 제주가 탐라국으로 시작해서 조선시대엔 목사들이 왔다. 그 전엔 몽골의 지배도 있었는데 제주인들이 그들로부터 손해나 희생을 많이 봤던 그런 시대적 배경 역시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외부서는 독특하다는 인상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제주를 몰라서 그랬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에서 오해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 이제 제주를 떠나는 시점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3년간 살면서 제주의 장래 가능성, 잠재력을 많이 느꼈다. 세계에 내 놓을 수 있는 꿈의 제주를 만들 수 있는 요소가 많다고 생각한다. 제주분들이 어느 정도 인식하고, 어느 정도 살릴 수 있는 지 거기에 달려있다. 그것을 하려면 57만명 여기 계신 분들 중심으로 단결하면 아주 좋은 섬 만들 수 있다. 앞으로 30~40년 동안 어떻게 해 나갈지 저의 관심사항이기도 하다. 제주에 땅을 갖고 있는 분들, 육지분들도 많이 갖고 있는데, 그들이나 외국에서 투자하면 좋은 곳만 골라서 한다. 제주의 보물섬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선 전체적인 균형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외국자본 들어와서 제멋대로 하게 되면 보물섬을 100% 활용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전체적인 부분(큰 숲)을 보는 게 필요하다. 또 하나 일본관광객 입장에서 보면, 한류영향으로 제주자연이나 영화촬영지를 보러 많이 오는데 비가 오면 (관광지를)다니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복합 아울렛이 제주에 꼭 필요하다. 거기에서 쇼핑도하고 해녀노래나 춤도 볼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 복합아울렛은 실천의 문제다. 물론 시내에서 가게를 갖고 계신  은 돈벌이가 안   반대할 수도 있지만, 그분들도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절대로 어느 큰 회사만 이익을 가져가선 안된다. 제주도민 전체의 이익을 생각해서, 전체적으로 합의를 보면 틀림없이 제주는 세계적인 섬이 될 수 있다.” 

▲ 제주만의 독특한 자연을 찍어온 사진들에 대해 설명할 때, 요덴 유키오 총영사는 그 어느때 보다 열정적이다. 오른쪽은 이재홍 제주의소리 편집국장.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육지나 타 시도에 없는 제주만의 장점을 살리라는 말이 무겁게 들린다.
“제주는 역시 제주의 맛이 나야 한다. 현대적인 건물은 필요 없다. 뭐랄까, 복합아울렛은 굉장히 크게 만들어야 한다. 외곽은 제주의 돌담으로 에워쌓고, 옛 문을 만들고, 올레길도 만들어 그 길로 들어와야 한다. 가게들도 2층 초가로 만들면 비가와도 쇼핑도 할 수 있다. 중간에 커피숖도 놓고 식당도 만들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 그리고 하루 한 두 번 해녀춤 공연도 좋다. 제주밖에 없는 아울렛, 제주만의 독자성이 있는 아울렛을 만들어야 한다.”

- 3년동안 지켜 본 제주의 경쟁력은 결국 ‘제주다움’ ‘제주문화’에 있는 것 같다. 
“서구든 어디든 화려한 것과 동시에 문화를 본다. 제주엔 제주의 독특함이 많아서 그것을 꼭 표면적으로 발달시키는 게 중요하다. 지금까지 구축해온 민속문화를 잃어버리게 해선 안된다. 올레걷기도 다시 되살린 문화다. 해녀들도 그렇다. 제가 하고 싶은 것들 중 하나가 해녀관계다. 일본 미에현에도 해녀가 있는데, 제주와 교류를 했으면 좋겠다. 양 지역이 자매결연 등을 맺는 걸 추진하다 잘 안 됐지만 양 지역이 꼭 할 수 있도록 후임자에게 넘기겠다.”

- 관광문제가 나오니 친절문제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친절하면 역시 일본이다. 우리가 일본 친절문화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있는 것 같다.
“친절은 교육이다. 그 이상이 없다. 70년대 후반 서울에서 유학했다. 당시 서울은 불친절 했다. 백화점 점원들도 굉장히 불친절했다. 그런데 15년 후 서울 갔을 때 완전히 달라져있었다. 당시 일본 백화점에 가 보면 90도로 인사하는데, 어떻게 하면 손님들의 기분을 좋게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거다. 그게 매상에 영향을 준다. 친절은 교육이다. 쑥쓰러운 게 있을 수 있지만, 장사할 때는 어떻게 하면 좋다 라든지...(속에 있는)마음은 친절한데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이나 태도로 그걸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 ”

▲ 주부산일본총영사로 부임받아 떠나게 되는 요덴 유키오 주제주일본총영사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일본이 어려움 많이 겪고 있다. 제주도민을 비롯한 한국 국민들이 하루 빨리 대지진 상처에서 치유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이런 마음에 대해 일본에서 얼마 전 간 나오토 총리가 감사서한도 보냈는데, 현재 일본 현지 반응은 어떤가.
“제일 감동을 느낀 것이 그거다. 이번 일본 대지진처럼 큰 피해는 없었기에, 일본을 맨 처음 지원한 게 한국이었다. 구조대원과 성금을 보내고, 지원물자도 보내줬다. 제주에선 우근민 지사가 직접 총영사관에 와서 격려 해주고, 귀중한 삼다수를 500톤 보내겠다 해주셨다. 또 여러 단체와 각계각층에 있는 분들이 도움을 주시고, 학생들도 1만3천통의 편지를 전달해 왔다. 언론에서도 일본을 돕자는 보도를 해주고 있다. 이런 이웃의 고마움을 이번만큼 많이 느낀 적은 없고, 역시 이웃은 중요하구나 생각했다. 일본사람도 당연히 이웃의 고마움을 깨닫게 됐을 거고 앞으로 이것에 대해서는 잊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간 총리가 감사 메시지를 보내주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도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지..고맙다는 말씀 드리고 싶은 분이 많은데 이번에 연락도 다 못하고 가게 돼 죄송스럽다.”

- 총영사께서는 2007년 태안 유출 사건 있을 때 일본 구조단 이끌고 와 10일 동안 현장 봉사활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일간 애증이 있고, 영토 문제로 갈등도 있지만 서로가 아플 때 도와주는 이런 한일 관계 더 앞으로도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태안 유출사고 전에 일본에서도 큰 유출사고가 있었다. 그때 일 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뭔가 경험 있는 사람들이 직접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전문가들과 함께 왔다. 처음에는 해안가에 기름이 덮여 있었지만 일주일만에 깨끗해졌다.  한국분들이 자원봉사로 서로 힘을 합쳐 기름을 없애는데 일본에서 온 전문가들이 완전히 놀랐다. 적어도 한 달 정도는 일해야 하는 것이었다. 한국민의 단결심에 놀랐다. 그게 태안의 기적이었다. 태안에서 일본 전문가들과 함께 매일 밤 늦도록 같이 모여서 보고서를 작성했고 그걸 드리고 갔다. 자연재해나 큰 사고가 일어났을 때 국가를 떠나 인도주의적 입장서 돕는 게 사람으로선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번에 미증유의 사고가 났을 때 한국 쪽에서 금방 자기 일처럼 생각해 주는마음에 대해 뭐라고 감사해야할지 모를 정도다. 한국과 일본은 마음이 통하는 관계다. 다른 나라도 다녔지만 정이 제일 통한다. 일본과 중국, 한국 세 나라 중에서 한국의 정이 가장 깊다.”

- 한국에 대한 총영사의 인식이나 깊이가 상당하다. 언제 한국을 처음 접하게 됐나.
“1974년이다. 외무성 들어온 게 1973년인데 1년 동안 외무성에서 일을 배우고 난 후 첫 부임지가 한국이었다. 한국을 택하게 된 건, 대학에서 한국어도 배웠고, 내가 나고 자란 곳이 관서지방인 효고현인데, 오사카에도 친척이 많아 고등학교를 다녔다. 거기에서 한복이 한국옷이란 걸 알았다. 외무성에 들어 온 후 희망어학을 3지망까지 쓰도록 했는데, 제1지방에 한국어를 써넣어서 오게 됐다. 지금까지 15년 동안 한국에서 생활했다. 서울 부산 두 번씩 12년, 제주에서 3년 했다. 이제 부산에서 3년 생활하게 된다.”

-며칠 있으면 총영사님이 제주를 떠난다. 부산에 가셔도 제주를 많이 생각해 주시길 바란다.
“제주를 떠나서 이젠 생각할 수가 없다. 부산에 제주도 분들 많다고 한다. 영도에 제주 도민회라가 있는데 가서 꼭 인사드릴 생각이다. 부산에 일본인들이 4천여명 있는데, 그들에게도 제주-세계7대자연경관 투표를 하도록 제주에 소개하겠다. 그동안 제주도민 여러분들 정말 고마웠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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