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물리적 충돌’ 빚는 강정 제주해군기지 공사현장
건설장비 진입저지 충돌 빈번…중재해야할 정부·도정은 어디에?

▲ 강정 해군기지 공사 현장. ⓒ제주의소리
▲ 강정 해군기지 공사 현장. ⓒ제주의소리
11일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은 그곳에 있었다. 아니, 그 곳을 밤새 지키고 있었다.

흡사 그들은 군대의 ‘5분 대기조’ 같았다. 더듬이를 곧추 세운 곤충처럼 혹시나 모를 건설 기기의 진입을 막기 위해 늘 그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날은 비까지 내렸다. 강정이 우는 것 같았다.

해군기지로 4년 이상 몸살을 앓은 강정마을에도 어느덧 봄이 왔고, 지금은 여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자연은 순리를 따르는데, 사람 사는 세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는다.

자연은 거부하는데, 사람들은 꼭 해야겠다고 떼를 쓴다. 해군기지 얘기다.

▲ 강정 해군기지 공사 현장. ⓒ제주의소리
해군기지 공사현장에서 연일 크고 작은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다는 소식이 매일 들렸다. 이른 아침 강정으로 차를 몰게 된 이유다. 지금 강정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오전 8시쯤 강정 해군기지 공사현장에 도착했다.

공사 현장 입구에 내걸린 현수막들도 찬·반으로 나뉘어 누가 목소리가 더 큰 지를 겨루는 듯하다.

공사 현장에는 이른 시각인데도 포클레인 한 대가 기계음을 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떡 버티고 선 대형 크레인은 위압감을 준다. 마구 찍어낸 테트라포트(방파제를 건설할 때 사용하는 뿔 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물·일명 삼발이)는 금방이라도 입수할 준비를 하는 듯 했다.

그나마 이날은 비 날씨 탓인지 공사 현장은 잠잠했다.

▲ 고권일 강정 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회 위원장. ⓒ제주의소리
그래도 고권일 제주해군기지 강정마을 반대대책위원장의 눈은 공사장 입구에서 떠나지 않았다. 군대의 보초병과도 같았다. 공사 차량이 진입하게 되면 ‘사이렌’으로 알려야 하는 임무도 있다.

“언제 공사 장비가 들이 닥칠지 모르잖아요. 이제는 버릇이 되어 버렸어요”.

“자연을 파괴하고 오염시키는 해군기지 공사는 불법이자 범죄행위입니다. 어마어마한 국가 폭력 앞에서 우리 주민들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겠어요, 몸으로 막는 것뿐입니다”.

고권일 위원장의 말이자 공사 현장에서 공사 장비의 진입을 맨 몸으로 막고 있는 강정주민들의 말이다.

“구럼비 바위를 깨서 콘크리트로 덮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구럼비 바위를 맨 발로 한번이라도 걸어본 사람이라면 이곳에 해군기지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겁니다”.

양윤모 감독을 좋아한다는 김용목씨(50.서울)는 강정마을에 내려온 지 5일째란다. 닷새 만에 그는 ‘해군기지 반대 투사’가 되어 버렸다.

공사 현장에는 해상 공사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방파제 공사에 쓰일 삼발이며, 이글루블록 등이 거푸집에서 하나 둘 계속 찍어 나왔다.

▲ 강정 해군기지 공사 현장. ⓒ제주의소리
현장을 지키고 있는 강정주민들은 해군기지 공사를 막아낼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고권일 위원장은 정치권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까 뭔가 달라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12일에는 야5당 국회 진상조사단이, 13일에는 4대 종단 관계자들이 강정마을을 찾을 예정이다.

이날은 정지영 감독 등 이름만 대도 알만한 영화인들이 대거 강정마을 찾았다. 이들은 구속 수감된 양윤모 감독의 석방과 해군기지 철회를 주장했다.

주민합의 없이 진행되는 공사현장은 폭력에 따른 엄청난 재앙의 불씨를 잠재하고 있었다. 물리적 충돌은 끊이지 않을 것이고, 이로 인해 주민들의 몸과 마음의 상처는 더 커질 게 분명해 보였다.

강정마을에는 ‘갈등’과 ‘폭력’만 있을 뿐 이를 중재해야 할 정부, 제주도정, 해군, 의회 등 주체는 없었다.

늦었지만 야5당이 나선 건 그나마 주민들에게 큰 위안이 되고 있다.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단을 꾸려 12일 첫 현장조사에 나서는 야5당의 활약(?)에 기대를 거는 건 어쩌면 4년을 버텨 온 강정주민들에게는 봄날 내리는 단비와도 같다.

강정은 4년 내내 세상을 향해 묻고 또 물었다. “왜 절대 보전해야 하는 강정바다에 해군기지냐”, “누구를 위한 해군기지냐”고. 정부가 정치권이 답을 줘야 할 차례다.<제주의소리>

<좌용철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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