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에서 만난 사람=고권일 해군기지반대대책위 위원장

▲ 고권일 강정 해군기지반대대책위 위원장.ⓒ제주의소리
강정바다가 울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범섬은 짙은 안개로 자취를 감췄다. 연산호 군락을 품고 있는 강정바다를 오롯이 지켜내고자 생업까지 내팽개친 이가 있다.

고권일 강정 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회 위원장이다. 그는 만화가다. 그런데 만화를 그려본 지가 언제인지 모른다. 강정 해군기지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덕 해안가에 천막을 치고, 24시가 강정바다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인들의 기자회견이 있던 11일. 앞서 강정 바다를 하염없이 지켜보던 고권일 위원장을 만났다.

고 위원장은 빗물과 강정바다의 상관관계부터 설명했다. 비가 오면 강정천이 불 테고, 불어난 오탁수는 강정바다로 흘러든다. 그런데 지금 해군이 쳐놓은 오탁방지막 때문에 물길이 바뀌어버렸다고 했다. 결국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범섬 연산호 군락지를 황폐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제주에 왜 해군기지가 들어서야 하는지라는 근본적인 물음부터 던졌다.

정부 스스로 제주해군기지 건설 배경으로 삼았던 ‘대양해군’정책을 사실상 접었기 때문에 제주해군기지를 굳이 건설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였다.

고 위원장은 “조금만 있으면 내년 정부 예산안을 짜게 된다. 정부 스스로가 ‘대양해군’정책을 포기한 만큼 제주해군기지 건설 관련 예산은 반영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야5당에서 진상조사에 돌입한 만큼 최소한 올해 수준만큼으로 ‘동결’을 요구했을 경우 한나라당도 반대할 명분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 고권일 강정 해군기지반대대책위 위원장.ⓒ제주의소리
그렇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는 ‘우문’을 던졌다.

그의 답변은 명쾌했다. 일단은 불법·편법으로 진행되고 있는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 “정부(해군)가 해군기지 주변지역발전계획안을 확정하겠다고 한 올 연말까지 만이라도 공사를 중단하겠다고 할 경우 주민들에게 (발전계획안 수립과정에) 참여할 지 여부를 물어볼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국회 차원의 청문회 개최를 주문하기도 했다. 국책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는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강정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왜 도지사가 입지선정에 개입했으며, 해군이 토지 강제수용 과정에서 주민들을 협박한 내용 등에 대한 진상을 철저히 가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군의 토지 강제수용을 말하던 중에는 “양아치도 아니고, 땅을 강제로 빼앗아 놓고는…, 해군이 무슨 권한으로 가지고 주민들을 협박하나. 행정도 아니고, 이것들 전부 청문회 감”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다.

현재 해군기지 문제로 인해 강정마을 공동체는 완전히 붕괴된 상태다. 반대 투쟁 과정에서 33명(47건)이 전과자가 돼야 했다. 생업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천만원의 벌금 폭탄은 이들의 억장을 두 번씩 무너뜨리고 있다.

이에 고 위원장은 ‘4.3’에 빗댔다. 국가폭력에 의한 주민희생이라는 점이 빼 닮았다는 것.

그는 “전체 해안 중에서 3%만이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이 됐다. 왜 하필 3%밖에 되지 않는 강정 절대보전지역에 해군기지를 만들어야 하는지 정부는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을 설득·납득시키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국가폭력’에 다름 아니라고 목소리 톤을 높이기도 했다.

결국 유네스코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해안 경관이 파괴되고, 연산호 군락지가 황폐화된다면 ‘생물권보전지역’타이틀을 철회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해군의 멸종위기종 ‘붉은발말똥게’를 이전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미친 짓”이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붉은발말똥게가 중덕 해안에 서식하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데, 전혀 서식환경이 다른 곳에 옮겨 놨다고 생존을 보장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밖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공사현장 입구였다. 그는 “언제 공사 차량들이 밀고 들어올 지 모른다”고 했다. 차량이 진입하는 순간 그는 사이렌을 울려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을 불러 모으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24시간 강정 중덕해안가에서 숙식하는 고 위원장의 강정바다 파수꾼 역할이 언제쯤 끝날까. 그날이 승리하는 날이라고 했다. <제주의소리>

<좌용철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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