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68) 동일1리 홍물과생이물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홍물(위쪽)과 생이물(아래쪽) ⓒ제주의소리

제주의 7월은 가을 작물을 파종하기 위한 준비로 일손이 바쁘다. 제주시를 기준으로 동부지역은 당근과 양파, 서부지역은 마늘과 감자를 주 작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마늘은 요즘 들어 건강식품으로 인기가 치솟고 있다. 지난 해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세계10대 건강식품에 마늘이 들어 있고, 과학자들도 최고의 항암식품으로 추천하고 있다.

제주도 서부지역 중에도 대정읍 마늘이 이미 오래 전부터 그 맛과 질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비결에는 좋은 물과 토질 덕분이다.

동일1리에 있는 홍물도 그 이름을 날리는 물 중의 하나이다. 홍물이라는 이름도 수량이 홍수가 난 것처럼 풍부하게 솟는다 하여 붙여졌다 한다. 바닷가 포구에서 용출하는 이 물은 밀물 때는 바닷물에 덮이고 썰물 때는 드러난다. 현재 이 물의 상태는 아주 건강하다. 시멘트로 잘 단장하여 먹는 물, 채소 씻는 곳, 빨래하는 곳의 구분을 잘 해놓았을 뿐더러 지금도 마을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다. 홍물 바로 옆에는 부속으로 생이물이 딸려 있다. 이 마을 남성들만이 사용하는 목욕통이다. 홍물은 남자아이들도 7살이 되면 들어가지 못하는 여성만의 공간이다.

1970년대 제주에 수도가 시설되면서 마을의 생명수였던 물들은 버림받고 잊혀질 수밖에 없었다. 버림받은 것, 잊혀진 것들의 말로는 그저 저 홀로 앓다가 쓸쓸히 사라져가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홍물인 경우, 마을사람들이 끊임없이 사용해줌으로써 그 존재이유를 잃지 않고 있다.

아무리 홍수처럼 터지는 애정도 받아주지 않으면 결국은 물길을 돌리게 마련이다. 얼마나 많은 물들이 버림받은 슬픔으로 여위어 가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면 이 글을 읽는 지금 자기 마을의 물을 찾아가 보면 알 것이다. 홍물이 지금도 기세 좋게 솟아나고 있는 데에는 든든한 빽이 있기 때문이다.

동일리청년회가 이 물을 관리하고 있노라고 마을안내판에도 밝히고 있다. 자연이건 인간이건 자기를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존재가 있는 한 생명은 광휘를 잃지 않는다.

7월의 마지막 날, 홍물을 찾았다. 가는 날이 소풍날이었다. 청년회에서 물가에 천막을 세 곳에 치고 평상을 가져다 놓고 흥겨운 회식이 벌어지고 있었다. 메뉴도 자연식 그대로였다. 녹두빛 전복죽과 생선회, 마당에서 키운 상추와 풋고추, 그리고 소주와 음료수. 소풍장소를 바닷가의 홍물 장소로 고른 건 여름이라 그랬다 한다. 방학 중인 아이들도 신나게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다. 가을에 파종할 마늘씨앗 고르기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단란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모습이야말로 건강한 농촌의 바람직한 상이었다. 처음 보는 나그네에게도 아무런 낯가림 없이 전복죽을 권하는 그들에게서 홍물의 넘치는 인정이 느껴졌다. / 김순이

* 찾아가는 길 - 동일1리 버스정류장 → 옆길로 직진 300m →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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