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그들은 누구인가] 의사와 야쿠자

존경하는 분이 계시다. 일본에서 태어나서 일본에서 자랐고, 대학은 1960년대 한국 서울에서 공부하신 분이다. 사모님은 서울에서 대학때 연애결혼을 하셔서 한국에서 오신 분이다.

이분 내외는 세상을 정확히 보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이분과 사모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존경한다.

이분의 아들에게 어릴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한국사람이 일본에서 밥을 먹고 살려면, 야쿠자를 하던지 의사를 해라'

야쿠자? 한국말로 하면 조폭(조직 폭별배, 깡패)이다. 사회에서 아주 천하게 보는 양아치들이다.

누구도 자기 아들이 깡패 즉 야쿠자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야쿠자도 자기 아들 야쿠자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분은 자기 아들에게 서슴없이 말했다. 이 말을 들으며 자란 아들은 의사가 되어서, 지금 모대학 병원에서 아주 잘 나가는 의사이다.

▲ Korea Town 과 쯔르하시(鶴橋)에 있는 한국 의사들의 병원 중 한 곳. '손 크리닉' ⓒ신재경

일본에서 밥을 먹으려면 야쿠자 아니면 의사. 이것이 일본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의 현실이다.

그러면 일본 야쿠자들은 어떤 인물들 일까?

일본 야쿠자들은 한국 조폭들보다 더 조직적이다. 한국의 군대보다 더 충성스러운 조직으로서, 조직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리며, 또 교도소 가는 것도 아주 쉽게 생각하는, 싸움꾼들의 모여 있는 곳이다, 회사 간판도 걸고, 돈 되는 일이라면 오만 못된짓 다하는 그들이다. 경찰과 교도소와는 항상 옆에 있다.

또 이들 구성원이 되면, '오야붕'은 '꼬봉'들을 먹여 살려야 되고, 꼬봉이 교도소에 가게되면 나올때까지 모든 책임을 다 해준다.

일본에서는 자기 친척중에 야쿠자가 있다면, 절대로 야쿠자가 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 집안은 천하게 하시(下視)보게 되고, 만약 싸움 할 일이라도 생기면 야쿠자를 데려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안 친척 중에 야쿠자가 있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만약 있어도 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이 세상의 상식이다.

그런데 이 야쿠자 세계에는 우리 한국사람(재일동포) 들이 많다. 구성원의 20% 정도는 동포들이 아닌가 하는 말이 있으며, 또 오야붕(우두머리)중의 약 10% 정도는 동포라는 말이 있다.

이렇게 많은 것은 이유가 있다. 우리 동포들은 성장과정에서 학교나 사회에서 차별을 받으며 크게 된다. 사춘기때 '조센진' 이라며 이유없이 얻어맞게 되고 왕따를 당하게 되면, 누구도 싸움을 하게 된다. 야쿠자를 하는 동포들에게서 야쿠자가 된 이유를 들어보면, 다들 이런 이유때문에 싸움을 해 오다보니 그런 길로 가게 되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야쿠자는 국적과 관계가 없다. 싸움만 잘 하면 되는 것이며, 싸움판에서 넌 조센진이니까 오지마, 라는 것이 없다.

야쿠자. 이거 아무나 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싸움 잘하는 것. 아무나 할 수 없다. 주먹도 세어야 하지만, 배짱도 좋아야 한다. 공부 잘하는 것보다 싸움 잘하는 것이 더 어렵다.

▲ Korea Town 과 쯔르하시(鶴橋)에 있는 한국 의사들의 병원 중 한 곳. '신 치과' ⓒ신재경

의사 또한 국적과 관계없다. 어떤 병을 잘 보는 의사가 한국사람이라고 하자. 몸이 아프면 일본의사라 했던들 한국의사라 했던들 병을 잘 낳게 해주는 의사를 찾아간다. 또한 정중하게 머리 숙여 인사까지 잘 하게 된다. 차별있는 사회에서, 차별없이 존경까지 받으면서 할 수있는 직업은 의사밖에 없다.

의사는 아무나 될 수 없다. 의과대학을 들어가야 의사가 될수 있다. 의과대학을 입학 하려면 공부를 잘해야 된다. 일본에서 의과대학 입학하기란 한국에서 의과대학 입학하기보다 더 힘들고 더 실력이 있어야 된다. 그러나 우리 한국사람들은 자식 공부시키는데는 세계 최고의 민족이다. 의사가 되면, 죽을때까지 좋은 생활이 보장된다.

또 집안 친척중에 의사가 있으면, 우리 누구는 의사. 라며 어깨를 으쓱대면서 자랑까지 할수 있다. 가문의 영광인 것이다.

관서지방(關西지방, 오사카 교토 고베가 중심인 지방)에는 12개의 의과대학(국공립 8교, 사립 4교)이 있다. 각 대학마다 입학 정원이 약100명, 약1,200명의 학생이 매년 입학을 하게된다. 오사카에서 의대를 졸업한 어느 동포의사의 말을 빌리면, 관서지방의 어느 의대나 약10%정도는 우리 동포학생인란 말을 했다. 1,200명중 약120명이 우리 동포라는 숫자이다.

일본 전국에는 80개의 의과대학(국공립과 사립의대를 다 합쳐서)이 있다. 어느 의과대학이나 1개 학년 정원은 약100명이다. 의사 면허 취득율이 약 90%정도이고, 매년 약 8천명의 의사가 배출되고 있고, 그중에서 매년 약 200명에서 300명정도가 동포출신 의사가 배출 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그러면 전체에서 의사중 약 3%가 우리 동포라는 추측 계산이 된다. 일본 인구 1억2천만명, 우리 동포숫자 약 60여만명, 일본 인구중 약 0.5%가 동포의 비율이 된다. 그러나 동포의사의 비율은 약 3% 정도라는 추측이다. 일본 의료계에서 우리 동포들의 공헌도를 알수 있다.

내가 잘 아는 분이 있다. 술 한잔하면 형님이라고도 부른다. 좋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인물도 좋다. 거기에 음악에 소질이 있어서 트럼펫도 아주 잘 분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동내에서 흔히 볼수있는 아주 조그만 쌀가게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좋은 대학 출신에, 좋은 인물에 왜 저런 구멍가게를 하고 있을까? 저 정도 실력이라면 큰 기업 중역은 해야 할 인물인데, 라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분에게는 뼈아픈 차별이란 과거가 있었다.

이분이 대학을 졸업했을 때는 지금보다 더 깊은 차별이 있는 시대였다. 좋은 대학에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했건만, 한국사람이라고 취직이 되지않는 것이다. 이 회사 저 회사의 입사시험을 봐 봤지만, 너는 한국사람이니까 오지마, 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운영하는 쌀가게에서 부모님과 같이 일하다가, 지금은 그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의대을 선택하지 않아 의사가 않된 경우의 삶이다. 동포들은 이런 삶을 수도 없이 봐왔기에 자식에게 '의대 의사' 노래를 부르게 되고, 또 자식들도 바로 옆에서 동내 형님들의 삶을 봐 왔기에 공부에 열을 올려 꼭 의대에 들어갈려고 한다.

▲ Korea Town 과 쯔르하시(鶴橋)에 있는 한국 의사들의 병원 중 한 곳 '김 크리닉' ⓒ신재경

해방후 지금까지 일본사회는 우리 동포들에게 어려가지 차별을 만들어서 어렵게 살게했다. 나는 이런 차별을 3가지로 구별해 본다. 법적 차별, 사회적 차별, 마음적 차별.

법적 차별이란, 법으로 한국사람이니까 외국인이니까 할수 없는 일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한국사람이니까 외국인이니까 공무원을 할 수 없다, 는 것도 법적 차별인 것이다.

사회적 차별이란, 사회가 한국사람이니까 이 일은 할수 없다, 라며 만들어 놓은 차별을 말한다. 한국사람이니까 우리회사에 취직 할 수없다, 한국사람이니까 집 빌려줄 수 없다, 라는 차별을 말한다.

마음적 차별이란, 마음속에서 나오는 차별을 말한다. 너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은 한국사람이니까 결혼시킬수 없어, 저 사람은 한국 사람이니까 앞으로 만나지 마, 조센진이니까 발로 차버리는 것, 등등의 차별이다. 마음의 차별은 각 개인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차별이므로, 이런 차별을 없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로 할 것이다. 사실 우리 마음속에도 이런 차별이 있는지 모르겠다. 법적 사회적 차별은, 그 사회가 그 나라가 마음먹기로 하루아침에 없어질 수도 있다. 또한 차별을 하는 사회도 손해이다. 능력있는 사람을 제외시켜서 사회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한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 교육을 받고, 좋은 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건만, 회사는 취직을 시키지 않았으며, 옆집 일본 사람은 교제를 하지 않을 려고 해 왔으며, 조센진이라고 사람 취급 할려고 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우리 동포가 많은 직업이 의사와 야쿠자,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한국사람으로 살려면, 항상 차별과 동거동락을 해야 된다. 그래서 동포들은 차별, 또 「차별」이란 단어에도 아주 민감하다.

국적과 관계없이 할수 있는 직업은 야쿠자와 의사이다. 야쿠자는 존경은 받을수 없지만,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의사는 존경까지 받으면서 할수 있는 직업이다. 그러나 공부를 잘해야 될 수 있는 직업이다. 싸움 잘 하는 것과 공부 잘 할수 있는 것,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 아마도 싸움 잘 할수 있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다. / 신재경

 

 

▲ 신재경 교수 ⓒ 제주의소리
 필자 신재경 교수는 1955년 제주시에서 출생했다. 제주북초등학교, 제주제일중학교, 제주제일고등학교, 한양공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했다. 한일방직 인천공장에서 5년간 엔지니어를 한 후 1985년 일본 국비장학생으로 渡日해 龍谷大學대학원에서 석사·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京都經濟短期大學 전임강사를 거쳐 현재 京都創成大學 經營情報學部 교수로 있다. 전공은 경영정보론이며, 오사까 쯔루하시(鶴橋)에 산다. 오사카 제주도연구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기도 한 신 교수는 재일동포, 그 중에서도 재일제주인들의 삶에 대해 조사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재일동포들의 '밀항'을 밀도 있게 조사하면서 <제주의소리>에 '어떤 밀항이야기'를 연재해 왔다. 또 일본 프로야구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발휘 '신재경의 일본야구'를 써 왔다.    jejudo@nif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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