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69) 동일1리 날뤠소곰밧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소곰막 ⓒ김순이

내가 아는 할머니 한 분이 바닷가에 사는데 이 분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두부를 만든다. 그 맛이 하도 기막혀서 비결을 물었더니 콩도 물론 좋은 것을 쓰지만, 간수를 옛날 하던 방식 그대로 바닷물로 한다고 했다. 그저 바닷물이 아니라 며칠동안 바닷가 암반 사이에 가두어져 바람과 햇볕에 졸여진 ‘곤(아래아)물(鹽水)’을 떠다 사용한다는 것이다. 자연에서 빚어진 짭쪼롬한 곤물이야말로 다른 두부에서는 맛볼 수 없는 최상의 맛 비결인 셈이었다. 제주의 전통적인 소금제조 방법도 이런 곤물을 인공적으로 많이 만들어 가마에서 끓이는 자염(煮鹽)제조법이다.

제주에서는 마을이 처한 환경에 따라 소금의 제조방식이 달랐다. 남원읍 태흥리나 대정읍 일과리처럼 뻘밭을 이용한 마을이 있는가 하면, 애월읍 배무숭이처럼 모래를 이용한 마을도 있다. 또 애월읍 구엄리나 제주시 어영마을처럼 암반을 이용한 마을도 있다. 일과리와 동일1리 두 마을에 걸쳐 있는 날뤠소곰밧은 뻘밭형 소곰밧으로 제주도의 서부지역을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크고 소금 생산량도 많았다.

날뤠소곰밧은 위치상 서일과(日果)1리 염전과 동일과(東日)1리 염전으로 구성되었다. 1910년을 전후한 염전면적과 소금 생산량을 보면 서일과는 3,418평에 20,450근, 동일과는 4,428평에 26,750근으로 이를 합산하며 총면적 7,836평에 47,250근이 된다(정광중·강만익, 「제주도 염전의 성립 과정과 소금 생산의 전개」『탐라문화』18). 여기서 생산된 소금은 ‘날뤠소곰’이라 일컬어졌으며 그 품질을 인정받아 주로
대정, 안덕, 서귀 지역으로 팔려 나갔다. 당시는 화폐보다는 물물교환이던 때라 거개가 소금 한 되에 좁쌀이나 보리쌀 두 되를 받았다.

현재 이 날뤠소곰밧은 서귀포시청에서 보조금을 받아 예전의 소곰밧 일부를 복원, 전통체험장으로 활용할 계획이 진행 중이다. 2009년 6월에는 50년 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옛날의 소금밭에 진흙을 퍼다가 다지고 그 위에 모래를 깔았다. 모래에 바닷물을 퍼다가 뿌리는 일을 반복하면 모래에 하얗게 소금기가 피는데 이를 ‘곤섰다’고 한다. 이 곤선 모래를 바닷물로 씻어낸 물이 곤물鹽水이다. 곤물은 곤물통에 저장하여 불순물을 가라앉힌다. 올여름은 마른장마여서 곤물을 만드는 일등공신인 햇볕이 푸짐했다.

날뤠소곰밧 재현의 책임을 맡고 있는 송상환(1942년생, 남)씨에 의하면, 추석이 지나면 재현의 마지막 과정을 공개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미 소금밭 한 쪽에는 소금막을 지어놓았으며 그 옆에는 곤물을 저장하는 곤물통이 있다. 소금막에는 곤물을 끓여 소금을 만들어내는 무쇠가마솥이 설치되어 있다. 가마솥의 형태는 바닥이 평평하고 깊이가 얕은 장방형통이다. 열전도 면적이 넓어서 적은 땔감으로 많은 소금
을 졸여낼 수 있다. 날뤠소곰밧 복원이 성공하여 제주의 전통소금제조에 대한 체험을 누구나 경험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김순이

* 찾아가는 길 - 동일1리 대정서초등학교 맞은편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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