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71) 무릉2리 모동장 축일본향당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모동장 축일본향당 ⓒ김순이

제주신화에는 야무지고 당찬 감은장아기가 나온다. 이 여신은 부모로부터 누구 덕에 사느냐는 질문을 받자,“나의 타고난 복으로 산다.”는 당돌하고도 깜찍한 대답을 한다. 막내 딸로부터 그런 불효막심한 말을 들은 부모는 당황 정도가 아니라 아예 황당했을 것이다. 분노한 부모는,“당장 너 입던 옷, 너 쓰던 그릇 다 가지고 나가라.”고 했다. 이쯤 되면 감은장아기는 울면서 잘못했노라고 빌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선선히 보따리를 꾸려 검은암소에 싣고 집을 나가고 만다. 이때 감은장아기가 집에서 데리고 나온 검은암소야말로 그저 단순한 소가 아니라 행운의 상징이요, 우주의 현묘한 기를 품은 모든 가능성을 의미한다.

우리 민족은 고대로부터 검은암소를 신성시 해왔다. 그래서 국가의 제사에는 반드시 검은암소를 희생으로 사용하였다. 대정읍 무릉2리에 있는 모동장은 조선시대에 국가의례용 검은암소를 공급하기 위해 특별히 설치 경영하던 국영목장이었다.

이 목장을 중심으로 해서 목자와 주민들이 설립한 당이 축일본향당이다. 이 당은 유난히 그 권능이 세고 영험하기로 이름이 높다. 일제강점기에 이 당을 없애려고 헌병이 들어섰다가 즉사했다는 이야기는 지금은 전설이 되어 있다.

일명 ‘던드리당’이라고도 불리며 무릉2리 평지동 밭 사이에 있다. 섬처럼 고립된 성역이다. 신목을 안쪽에 두고 돌담을 둥글게 에웠다. 주변에는 까마귀쪽나무와 예덕나무, 팽나무가 우거져 있어 여름 한낮에도 어둑하고 서늘한 기운이 서려 있다.

이 당은 독특하게도 마을의 대표자인 남성제관 5명을 뽑아서 평지동마을제(본향제)를 지내왔다. 무속제의와 유교식제의가 혼합된 형태인 셈이다. 당신은 본래는 축일할망, 축일하르방으로 모두 소의 수호신이다. 당을 매었던 심방 2명이 죽으면서 이 당에 의지하겠다는 말을 남겨 그들도 신격화되어 함께 모셔왔다.

제일은 정월의 좋은 날을 택하며 마을회관에서 3일 정성으로 합숙하였다. 가호마다 돈을 3천원, 5천원씩 거두어 제물마련을 했다. 중요한 제물로는 좁쌀메, 산디메는 반드시 산메로 올리고, 제물로는 소의 중요한 부위를 날것으로 올리며 과일 중에서도 댕유지(唐柚子)는 반드시 올렸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축산단지를 이루어 소들의 울음소리가 구수하게 들려오던 시절은 가고, 지금은 소 키우는 집이 겨우 한두 집밖에 남지 않았다고 김봉옥(1932년생, 남)씨는 말해준다. 그래서 4년 전 온 마을이 돈을 모아 본향제를 지제하는 큰굿을 심방 4명을 초청하여 하룻밤 하루낮을 꼬박 치렀다. 그러나 아직도 축일이면 답답한 사람들은 할망을 찾아가 의지하고 있다. / 김순이

*찾아가는 길 - 신도3리 사거리 → 무릉2리(한라산쪽 방향) 맨초남로 3㎞ 400m직진 → 비닐하우스 옆
길로 8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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