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만에 다시 찾은 죽음의 길"
4.3도민연대, '4.3유적지 순례'…"영령의 가신 길 따라나서다" 김두황씨, "삶과 죽음 교차했던곳 다시 오니 슬픔 뿐"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가 4일 옛 목포형무소 터와 재소자 희생지역에서 7번째 '2006 전국 4.3 유적지 순례 및 진혼제'를 개최했다.
이날 순례에는 도민연대와 4.3 유족, 이영길 전 정무부지사, 정민구 주민자치연대 대표, 민중가수 최상돈씨 등 50여명이 참여했다.
주정공장 터는 49년부터 선무공작으로 산에서 내려온 도민들이 어떠한 적법적인 절차없이 즉결처분되거나 육지부의 형무소로 끌려가기 전에 집결돼 있던 곳이었다. 그 숫자가 5000명 이상이라는 것이 연구자들이 주장이다.
목포형무소는 현재 아파트단지로 변해 있어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수형인들이 노역장으로 사용했던 '석산(石山)'에서 일제시대 형무소 생활을 하다 숨진 비석들이 있어 형무소가 있었다는 것을 겨우 알 정도다.
해방후에도 목포형무소 수형인들이 석산에서 돌을 채석했고, 1949년 9월14일 사상 초유의 600여명 교도소 탈옥사건이 터졌을 때는 석산에서 수형인들이 총살됐던 현장이었다는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날 순례에서는 목포형무소에서 수감됐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김두황(80) 할아버지가 함께 했다. 또 목포형무소에서 아버지가 수형생활을 하다 행방불명된 4.3 유족회 홍성수 상임부회장이 참여했다.
김 할아버지는 "내가 어떻게 살아났는 지 모르겠다"며 "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57년만에 전 삶과 죽음이 교차했던 이곳에 다시 돌아오니 슬프고 한이없다. 저는 살아남았지만 구천으로 먼저 떠난 영령들에게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홍 부회장은 "그동안 어떻게 아버지가 희생됐는 지 몰랐지만 지난 2001년 이곳을 처음 방문해 수형생활을 했고, 49년 탈옥사건 전후 아버지가 행방불명된 것을 알게 됐다"며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순례단은 목포형무소 뒷쪽 석산 기슭에서 목포형무소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4.3 희생자 119명과 생사를 알지 못하는 500여명의 무명신위를 모시고 진혼제를 진행했다.
김종혁 도민연대 운영위원이 '초혼', 김용범 공동대표가 '고유문', 윤춘광 공동대표가 '주제사'를 했다.
이어 "몇몇 인사들은 4.3특별법 개정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거나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며 진상규명을 피해가고자 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런 행동은 형무소에서 희생된 4.3영령을 두번 욕되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둘째날에는 동목포 역전 매장지, 목포경찰서 뒤 학살매장지, 한센인 거주지, 목포시내 학살지 등을 둘러보고, 광주로 이동해 5.18 광주민주화공원에 참배한다.
영령들 가신 길, 살아남은 자 따라나서다 - 김경훈 시인 |
야, 이 빨갱이 새끼들아 그렇게 우리는 죽음의 길로 향하는 배를 타게 되었네 구토와 설사와 멀미는 차라리 우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었네 목포형무소 그 높다란 벽안에 갇혀서야 1949년 9월14일 목포형무소 탈주사건이 있을 때 1950년 625전쟁이 터진 후에도 우리는 죽은 목숨이었네 살아서 그리운 부모형제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다 아직도 내 눈에 그리운 고향 식구들의 얼굴이 밟혀있다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