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서기에서 민선 군수 3선 연임한 입지전적 인물

[신철주 군수] 일등 북군 만들기 앞장 전국 최고 기록해 낸 '마당발'

2005-06-22     이승록 기자

22일 타계한 신철주 군수는 마을 리(里) 서기로 출발, 민선 3선의 군수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38년 8월4일 북제주군 한림읍 귀덕리에서 4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나 귀덕교, 한림중, 한림공고를 졸업한 고인은 고등학교 졸업한 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이사무소 서기로 마을의 궂은 일을 도맡았다.

공직은 제주도와 북군에서 주로 근무했고, 1975년 37세의 나이로 사무관에 승진했고, 1989년 서기관으로 승진해 도 공보관.기획담당관.식산국장.지역경제국장.내무국장 등을 거쳐 1994년 공직생활 30년만에 제30대 북군수로 임명받아 1995년 3월까지 마지막 관선 군수를 역임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서막을 알리는 1995년 첫 민선 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당선된 신 군수는 주민들로부터 그 능력과 실력을 인정받아 1998년 민선 2기, 2002년 민선 3기로 도내 최초로 민선 3선의 영광을 안았다.

고인은 재임기간 동안 탁월한 지도력과 추진력으로 일반회계예산 군단위 전국최고, 전국최초 노인존경군 선포 등 전국 최고의 기록을 양산한 군수로 정평이 나 있다. 

또 세계 최대 규모의 돌문화 공원조성, 바다목장화 사업 유치 추진, 도서지역 물문제 해결, 하귀1지구 도시개발 사업 등 굵직굵직한 사업과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고 신철주 군수의 큰 형은 한라대학 학장을 역임한 신용준씨, 대구대학교 총장을 지낸 둘째형 신상준씨, 농업을 경영하는 셋째형 신경도씨가 있다. 유족으로는 부매자씨(65)와의 슬하에 1남4녀를 두고 있다.

주요 수상경력으로 1979년 대통령 녹조근정훈장, 1999년 삼성복지재단으로부터 삼성효행상 특별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