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멍, 보멍, 들으멍] 길 위의 달인으로 살아가는 택시기사들 / 정신지

▲ 우리 주변엔 '길 위의 달인'으로 살아가는 택시기사들이 많다. 핸들을 굳게 잡고 있는 어느 택시기사의 손등엔 단순히 세월뿐만 아니라 세상사 많은 이야기들이 묻어있다. 사진 = 정신지 ⓒ제주의소리

지도를 들여다보고, 걷거나 탈것을 이용하면서 우리는 어느 한 장소를 알아가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몸을 움직인다는 개개인의 신체성이, 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곳’에 대한 정보와 생각을 좌지우지한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 우리는 걸으면 걸은 만큼, 버스를 타면 타는 만큼, 세상과 만난다.

  십 수 년간 오랜 유랑생활을 접고 최근 제주에 돌아온 내게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터벅터벅 걷기를 좋아하고, 자동차보다는 자전거를 선호하는 내가, 요즘 부쩍 택시를 즐겨 타게 되었다는 것. 이유는 세 가지다. 하나는, 한 시간에 한대 밖에 버스가 안 다니는 시골로 이사를 왔다는 것.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외국이나 타지에 비교해서 택시비가 저렴하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전부터 나는 택시 기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넓은 세계관을 한없이 동경해왔었기 때문이다.

  택시기사들은 하루에도 수십 명의 타인과 만나고 거미줄보다 복잡한 동선을 그리면서 마을 구석구석을 달린다. 어느 제주민요의 가사처럼 “느영나영 두리둥실”, 그리고 “낮에 낮에나 밤에 밤에나” 끊임없이 새로운 손님을 싣고서 제주의 길을 돌고, 또 돈다.

  세상에는 어부나 농부, 종교인과 학자 등,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직업이 있다. 평생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그 분야의 달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감동적이다. 택시 기사라는 직업도 그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택시라는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사람의 단편적인 만남이 아닐까 싶다. 가만히 달리고 있는 차 속에 차창 밖의 세상이 잠시 들어와서는, 또다시 차창 밖의 내가 모르는 세상에 그들이 내려진다.

  어느 택시 기사님은,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신문을 보지 않아도 오늘 하루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하신다. 제각각인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 유쾌하고 불쾌한 다양한 경험들 속에서 가능한 이야기다. 또 다른 택시 기사분의 “나는 오늘도 차 안에서 도를 닦는다”는 말씀처럼, 세상의 택시들은 지금도 길 위에서 영업 중이다.

  물론, 모든 손님이 소통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처럼, 기사님들도 가지각색이다. 더욱이, 최근 있었던 전국적인 택시 파업을 비롯한 사회의 여러 가지 현실들 탓에, 손님과 기사님 모두가 그리 흔쾌하지 못한 오늘을 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랬다. 소통이란, 생각이 맞고 성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 할 때 진정한 의미가 생기는 것이라고.

 

▲ 자가용과 대리운전이 늘어나고 있다. 또 관광객은 늘지만 렌터카도 늘어난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택시기사로 살아가는 분들의 어려움도 커지고 있다.  사진 = 정신지 ⓒ제주의소리

올해 나이 일흔셋을 맞이하셨다는 한 노장기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있죠? 저는 택시를 한 40년간 타는데,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택시를 타는 사람이나 모는 사람이나, 여든 살까지 갈지도 모르는 버릇을 안고 차에 타는 거라고. 남한테 자주 짜증을 부리고, 느긋하게 참지 못하는 성격의 사람이 택시에 타면, 오만가지 이유로 택시 기사한테 화를 내기 십상이고, 또 그런 사람이 기사가 되면, 손님한테 화풀이나 하면서 결국 제화에 제가 못 이겨서 기사생활도 오래 못 갑니다.” 맞는 말씀이시다. 

  40년을 택시 핸들을 잡으셨으니 ‘생활의 달인’이 따로 있을까. 노장 기사님의 거침없는 철학이 계속 이어진다. “저는 별반 배운 것도 없고 딱히 손에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40년 가깝게 택시를 몰아 손주까지 키우고 나니, 제 나름의 요령은 생겼습니다. 손주뻘 되는 사람들이 술에 취해 택시에 타면, 정말 얄미운 짓도 많이 합니다만, 미워도 어쩌겠습니까, 그저, 손주 녀석처럼 아직 덜 자란 손님인데. 일단 그냥 다 받아주고, 택시비도 다 받고 나서 가끔 정말 화가 났을 때는, 내릴 적에 한마디 하죠. ‘이녁 어디 사는 누겐지, 아방이름 한번 고라봅써.(당신 어디에 사시는 누구신지, 아버지 이름 한번 얘기해보세요.) 잘하믄 이녁네 하르방이영 나영 친구일지도 모르난. (어쩌면 당신 할아버지랑 저랑 친구일지 모르니까.)’, 이러니 저도 아직 수양이 덜된 노인인거죠. 끝까지 참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가끔 화가 치솟을 때도 있거든요. 사람이니까. 하하하." 평생 동안 고향 제주의 길을 달려온 노장 택시기사에게만 존재할지 모르는 이 배짱 있는 한마디에, 저까지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며칠 전에는, 또 다른 택시 안에서 50대 후반이라 하시는 내 아버지뻘의 기사님과 만났다. 이런저런 대화중에 택시기사님이 자신의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가슴이 뭉클했다.
  "그래, 내가 언제 한번은 대학생인 우리 아들을 조수석에 태우고 택시 운전을 한 적이 있었어. 아방일이 어떤 것인지 한번 보여주고 싶어서. 근데, 타시는 손님 마다 묻는 거야, 이거 합승 아니냐고. 그래서 내가 양해를 구하고 ‘제 아들입니다.’ 그러면, 몇몇 손님은 아들도 택시운전사 시키시려고 그러냐 물으시고, 그럴 때 마다 아들은 그냥 옆에 앉아 가만히 미소만 지었어.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집에 돌아갈 적에, 아들이 글쎄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 ‘아버지, 이 일도 꽤 헐만 허우다예?’ (이 일도 꽤 할만하네요?) 그때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지 뭐야."

  농사로 치면 ‘자식농사를 참 잘 지으셨구나’란 생각이 스쳤다. 기사님의 이야기는 잠시 더 이어졌다. “팔불출처럼 자식 자랑을 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 우리 아들이 서울대학교에 다녀. 군 복무 마치고 방학 때 잠시 내려왔다가 자기 놀기도 바쁜데 택시도 같이 타보려고 하고, 아방 기죽지 말라고 그런 말도 해주는 게 참 기특했어. 나는 녀석이 어디 가도 기죽지 않고, 건강히 잘 살면 좋겠어. 아방도 택시운전사이긴 하지만 기죽지 않고 그 녀석을 키웠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할 거니까….”

  제주에 살아 숨 쉬는 평범한 이들의 일상을 기록하고자 나는 요즘 자주 걷는다. 굳이 한 사람의 이야기에 몇 시간이고 귀를 기울이지 않더라도, 이렇듯 의도하지 않은 만남과 대화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이것이 바로, 내가 택시 기사님들이 제주의 방방곡곡을 달리며 수집하신 세상이야기에 커다란 매력을 느끼는 이유다.

  자가용과 대리운전이 늘어나고, 제주의 관광산업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렌터카가 불어났다. 택시는 많아지는데 손님이 없고, 사람들은 교통체증에 시달리며 한적한 거리를 원한다. 얼마 전의 택시 파업에 관한 시민의 의견 속에는, 택시가 없어서 불편을 겪었다는 목소리만큼, 택시가 없어서 좋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세상이 변하고 물정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그 변화의 소용돌이와 함께 사라져버렸고, 사라지고 있고, 사라져버릴 것들이 참으로 많다.

  기사님들과 이야기를 하며, 제주를 달릴 만큼 달려온 그들의 미터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의 목소리와 발자취가 담겨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세상의 구석까지 연결될 수 있는 인터넷을 즐겨 쓰면서, 사람들은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을 선호한다. 그래서 전혀 모르는 타인과 함께해야만 하는 택시라는 공간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불편한 시간 속에서 나와 기사님은 같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생명공동체가 아닌가? 몇 분 전, 혹은 몇 년 전, 당신이 찾고 있던 일상의 의문에 대한 대답을 가진 택시기사님을, 혹은 그런 손님을 만났을지도 모를 택시 안에서, 나는 오늘도 무한한 소통의 가능성을 느낀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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