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멍 보멍 들으멍] (4) 53년 해녀로 사는 그녀, 그리고 그의 아들 / 정신지

▲ 14살 물질을 시작해 53년째 해녀로 살아온 구좌읍 어느 아주머니의 집 창고엔 그녀가 해녀로 살아온 억척스런 삶이 온전히 담겨 있다. 사진=정신지 ⓒ제주의소리

  고기잡이배에 시동이 걸린다. 내가 사는 웃 뜨르(‘윗들’이라는 말로 제주에선 중산간 지역을 말한다) 마을에서는 들을 수 없는 새벽을 여는 커다란 소리에 놀라, 여섯 시가 채 되기 전에 잠에서 깨었다. 평소 같으면 실컷 자고 있을 이른 아침, 조금 전 시동을 건 그 배가 지나갔을 바다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돌담길을 지나 바다에 닿으니, 아주머니 한 분이 바다를 보고 계신다. 그러다 문득 나와 눈이 맞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소문에만 듣던 ‘제주 해녀‘ 와 아는 사이가 된 것이다. 그뿐 아니다. 그날 오후 나는 그녀의 창고에 있던 감자를 한 보따리 선물 받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서 맛있게 그것을 삶아 먹었다.

  며칠 후 나는, 알 수 없는 그녀의 묘한 매력에 이끌려, 또다시 제주의 동쪽 마을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두 번째 찾아갔을 때 그녀는 십여 명의 해녀들과 함께 작업장에 둘러앉아 갓 잡아 올린 성게를 바쁘게 손질하고 있었다. "또 온다고 하더니, 진짜 왔네!" 하며, 활짝 웃는 얼굴로 잘 여문 성게 하나를 내 입에 하나 넣어주셨다.

  구좌읍에 사는 그녀는 14살 때 물질을 시작해 53년째 해녀로 살고 있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풍선(돛단배)으로 고기를 잡던 아버지 밑에서 10남매와  자랐다. 그녀는, 스무 살이 채 되기도 전부터 전국은 물론 일본까지 나가 물질을 했다. 일찍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었지만, 남편은 쉰을 못 넘기고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친정아버지가 그랬듯 그녀도 홀어머니로 한평생 자식들을 길렀다. 돈 잘 버는 상군(해녀들을 기량에 따라 상·중·하군으로 구별, 가장 기량이 좋은 해녀)으로, 좋은 집에서, 좋은 것만 먹고 살았지만, 그것도 한때였다. 밀물이 왔다가 썰물이 되어 나가듯, 집안 사업의 실패로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마을 입구에 있는 큰 기와집이 예전엔 그녀의 집이었으나, 몇 해 전 이사를 온 집에서 지금은 독신인 아들과 함께 산다. 그러면서도, "이제 예전처럼 가진 게 없으니까, 앞으로 들어올 일만 남은 거야.” 라며 웃으신다.
 
  말끝마다 묻어나는 긍정적인 웃음이 그녀의 힘 있는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부탁한 것도 아닌데, 그녀는 다짜고짜 내게 '이어도 사나'(해녀들이 물질을 위해 배 노를 저어 바다로 나가며 부르는 소리)를 들려주셨고, 여쭈지도 않았는데, '숨비소리'(해녀가 물질을 하다 바다 위로 올라와 참던 숨을 내쉬는 휘파람 같은 소리)에 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신다. 마치, 우리의 만남이 단편적으로 끝나버릴 것을 예견이라도 하신 듯, 만나자마자 내게 건네주신 '해녀이야기 종합선물세트'. 여태껏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러 이 마을을 다녀간 걸까 하고 짐작이 갔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그녀를 찾아갔다. 무언가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함께 해안가를 걸으면 걸을수록 내 마음은 복잡해졌다.
  "물질을 하다 보면 자연히 욕심이 생겨. 그게 힘이 되어서 전복도 소라도 잡히는 거야." 그러다가도 다른 말씀 중에, "욕심을 버려야 물질도 제대로 되지. 욕심을 부린다고 없는 전복이 나타나는 건 아니거든." 하신다. 또, "해녀들끼리 경쟁이 붙다 보면, 서로 지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하게 되지." 하셨건만, 또 금세, "물속에서 경쟁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기가 한만큼 벌어오는 게 바다의 섭리인데, 경쟁은 쓰잘머리 없는 거지." 라고 하신다.

  자존심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따온 전복이 남들 것 보다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야 자존심도 생긴다." 라고 하시면서도, "내가 따온 우뭇가사리에 수협 사람들이 등외(상품가치가 거의 없음)판정을 내리더라도, 어떻게 할 거야? 몸은 늙어 가는데 자존심이 무슨 소용이냐” 고 반문하셨기 때문이다.
 

▲ 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성게를 까고 있는 해녀.  사진=정신지 ⓒ제주의소리

 

▲ 거칠고 뭉툭해진 구좌읍 어느 해녀의 손끝엔 53년 삶이 고스란히 담겼다.  사진=정신지 ⓒ제주의소리

  욕심, 경쟁, 자존심. 그녀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던 이 세 가지 단어와 요즘 허리디스크에 걸려서 물질을 거의 못하고 있다는 그녀의 말이 우연히 겹쳐 지나간다. 의사는 집에서 쉬라고 하는데, 병원을 다녀오신 바로 그날도 그녀는 바다에 나갔다. 운동이라 하시면서. 아까 작업장에서 얼핏 보니, 다른 아주머니들보다 그녀의 성게는 크기가 작았다. 집으로 오는 길에 내 손에 쥐여주신 두 개의 전복도, 아마 작아서 팔지 않고 가져온 것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내게 불러준 '이어도 사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저 산천에 풀 이파리는 해 년마다 푸릇푸릇 젊어나지고, 이내야 몸은 해 년마다 소곡 소곡 늙어만 간다." 하지만, 작업장에는 그녀와 비슷한 나이 또래 이거나,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 해녀들뿐이다. 언젠가부터, 어린 해녀들의 푸릇푸릇함이 사라져버린 이 마을에서, 그녀는 아직 노장 해녀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전처럼 팔도강산과 일본 바다까지 누비던 상군 해녀도 아니다. 이제는 욕심도 경쟁도 자존심도 버리고, 들어올 것만 즐겁게 바라보며 사는 것이 생의 마지막 바람이라 하셨거늘, 의사의 충고를 어기고 바다에 나간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야기가 끝나갈 때 즈음 내가 물었다. "물질, 재미있어요?" 그랬더니, "재미는 뭐, 먹고살려고 하는 거지” 하셨다. 그래서 또 물었다. "진짜 별재미 없다고요? 나도 한번 해 보고 싶었는데, 재미없는 걸 왜 해요? 먹고살 것이 정말 없는 것도 아니면서."라고 말이다. 그러자 당황하셨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시고는, 그녀가 살짝 말문을 연다. "있지, 안 해본 사람은 절대 몰라. 그래도 사실 재미 같은 게 있긴 하지. 예를 들어, '오늘은 소라가 하나만 잡혀도 좋겠다.' 생각하고 나갔는데 소라가 다섯 개 보일 때. 또,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해삼은, 똥을 싼 흔적을 따라 쫓아가는데, 그건 숨바꼭질 같아서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때도 있으니까. 그러니 너도 말만 하지 말고 정 궁금하면 다음에 한번 와서 나랑 같이 물질해볼래? 해삼은 못 찾아도 보말은 한 몇 개 따게 해줄게." 

  그제야 조금 이해가 갔다. 욕심, 경쟁, 자존심이라는 키워드 뒤에 '재미'라는 것이 붙어있는 그녀의 물질하는 삶.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나 같은 젊은이가 내뱉는 욕심, 경쟁, 자존심, 재미의 정의와는 본질부터 다른 것이 아니었던가?

 

▲ 정신지

  선풍기를 틀고 마루에 누워 그녀와 수다를 떨고 있는데, 그녀의 아들이 들어왔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아들은 결혼도 팽개치고, 청년회 활동과 농사일에만 열심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버스를 타고 오던 길에 이 마을 앞에서 유난히 휘날리던 ‘한중FTA 결사반대’의 깃발이 떠올라서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것도 그의 작품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장가도 안 가고 데모만 하는 아들을 못마땅해 한다고 하신다. 하지만 그도 어멍(어머니의 제주어)를 빼닮은 걸까? 남들은 귀찮아서, 아파서 피하려 하는 것들을 스스로 찾아 하고 있다. 같은 시대, 같은 제주를 살아가는 그녀의 아들을 보며, 마룻바닥 위에 대자로 뻗어있던 내 다리가, 갑자기 싹하니 오므라든다. 다음에는 정말 물질을 배우러 다시 오리라 생각하고 집을 나서는데, 그녀가 내 가방 속에 보말을 한 봉지 넣어주신다. 미칠 노릇이다.

해녀, 해녀아들, 그리고 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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