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멍 보멍 들으멍] (8) 올렛담 허물어지면 누가 쌓을까? / 정신지

 

▲ 마을올렛담. 엉성한 ‘구멍’과 ‘구불구불’이 비결인 제주의 돌담은 쉽게 비바람에 무너지지 않는다. / 사진=정신지  ⓒ제주의소리

65년째 돌담을 쌓고 계시는 한 하르방(할아버지의 제주어)이 있다. 두세 번 그를 찾아갔지만 매 번 그는 집에 없었다. 늘 할망(할머니)과 둘이서 밭일을 하고 계셨기에 바쁜 그를 방해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었다. 하지만 며칠 전, 돌멩이도 녹일 듯한 무더운 오후에 나는 다시 그의 집을 찾아갔고, 팽나무 밑 평상에 앉아 파리를 잡고 계신 하르방을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할아버지, 언제부터 돌담 쌓으신 거에요?”라고 묻자, 그의 첫 돌담은 공교롭게도 그가 아홉 살 때 일어난 4.3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고, 처절하게 무너졌다고 하신다.

 “그때, 마을이 모조리 불에 타버리고, 사람들은 살려고 피신을 갔어. 한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다 함께 살았는데, 그것도 아주 잠시였지. 선생님들이 죄다 끌려가서 죽고, 학교도 모조리 불살라버렸어. 사람들도 많이 죽고. 남은 마을 사람들이 해안가 근처로 가서 돌담 위에 새(짚)를 얹은 엉성한 초가집을 짓고 다 같이 거기 살았지. 그때 제일 처음에 한 일이 집 근처 성담을 쌓는 거였어. 만리장성처럼 말이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돌을 주어다가 담을 쌓았는데, 아마 그게 내 나이 아홉에 처음으로 쌓아본 돌담이지.

 그러고 나서 4.3사건이 끝나고, 다시 마을로 돌아왔어.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마을을 재건하려니까, 또 제일 먼저 한 일이 담을 쌓는 일이었지. 집 만드는 축담, 길 만드는 올렛담, 화장실에 통싯담, 먹고살라고 밭을 만들면 밭에는 밭담, 게다가 죽은 마을 사람들 무덤을 만들면서 거기에 산담. 그러고 보니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참 많이도 쌓았네. ”

 

▲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의 창문에서도, 창 밖에 보이는 것은 돌을 쌓아올린 만든 집과 담이다. / 사진=정신지  ⓒ제주의소리

 

▲ 농사 짓느라, 돌담 쌓느라 뭉뚝해진 하르방의 손끝에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 사진=정신지  ⓒ제주의소리

그는 1940년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 게다가 남동생까지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증조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증조할아버지 역시 4.3사건 때 돌아가시면서, 그는 집안의 모든 남자와 마을의 많던 남자들이 이유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보고 자랐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그에게는 ‘밭가는 장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만큼 그는 마을의 귀한 일꾼이었던 것이다. 어린 아들이 혼자 나르지 못하는 쟁기를 어머니가 밭에 가져다주면, 작은 꼬마의 몸으로 끙끙거리며 그녀를 도와 밭을 갈았다. 세상의 어떤 어머니가 아직 초등학생인 외아들에게 고된 일을 시키고 싶었겠느냐마는, 소도 없고 일꾼도 없어진 마을에서는 삶을 일구기 위해 모두가 일했고, 그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 기억이 그에게는 모질지 않다. 있는 사람은 베풀고, 없는 사람은 없는 형편에 서로 도우며 살았던 시절이기에, 힘이 들면 드는 대로 마을 사람들이 그의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었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자, 새마을 운동이라는 이름하에 다시 한 번 그가 쌓아올린 돌담은 무너지고 마을의 모양새가 달라져 갔다. 초가집을 헐어 시멘트로 된 양옥집이 들어서고, 길가의 올렛담들이 하나 둘 허물어지면서 흙길 위로 미끈한 새 길들이 생겨났다.

풍경만 달라진 것이 아니다. 사람들 역시 직업이 변했고 문화가 달라졌다. 누군가의 집을 짓기 위해 며칠씩 마을 청년들이 만사를 젖혀두고 함께 수눌음(품앗이의 제주어)하는 횟수는 줄고, 농사를 그만두고 시로 나가서 직업을 구하는 사람들이 불어났다. 하지만 그는 그저 어머니 곁에서 묵묵히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돌담을 쌓는 일을 해왔다.

 

▲ “저기 저담도, 여기 이담도 내가 쌓은거야.” 하시며 파리채 끝으로 하르방이 가르켰다. 이 동네 돌담에 그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은 없다.  / 사진=정신지  ⓒ제주의소리

 

▲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미완성의 돌하르방. 우리가 가진 게 돌밖에 더 있느냐고 하시던 하르방의 말씀이 떠오른다.   / 사진=정신지  ⓒ제주의소리

그의 손으로 지은 집만 여섯 채. 지금 사는 집도 전에는 초가집이었던 것을 다시 허물어 양옥집으로 직접 만드신 거라며, 그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할아버지, 저한테도 돌담 쌓는 법 좀 일러주세요.”라고 내가 말하자 그는, “나도 제대로 배워서 한 게 아니고, 이게 배운다고 되는 일도 아니니까 내가 가르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여자가 어디 힘이 있다고 돌을 쌓아!”라고 웃으며 말씀하신다.

덧붙여 그는, “모르는 사람들은 돌담이 그냥 아무 돌이나 주어 와서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줄 안다. 협동해서 쌓으면 금방 쌓이는 줄 알아. 하지만 돌 하나하나에 다 생각이 들어있어. 여럿이 같이 쌓을 때는 내가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다른 이의 의견을 듣지 않으면 안 돼. 한 사람이 잘못하면 힘들게 쌓아올린 것도 한방에 무너지거든. 그리고 요즘에는 돌을 기계로 반듯하게 잘라서 쌓는 사람들도 있지만, 멋지고 튼튼해 보인다고 그게 정말 좋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구멍이 뚫려서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담이 더 강해. 비결은, 구멍이 있으니까 쓰러지지 않는 거야. 그리고 반듯하지 않고 구불구불 쌓아 놓으니까 비바람이 불어도 견뎌내는 거지. 근데 요즘 시에서 용역을 보내서 마을에 새로 쌓이는 돌담은 영, 아니야.”라고 하시며 눈살을 찌푸리셨다.

배운다고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 그가 말한 돌담의 숨은 비결이 ‘구멍’과 ‘구불구불’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갑자기 똑똑해진 느낌이 들었다. 마치 마술사에게 비법이라도 전수받은 양 어깨가 으쓱해지고, 머릿속에 형광등이 켜진다.

그러고 있는데 하르방의 며느리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슬하에 5남1녀의 자식을 둔 그는, 그 중 세 명의 아들 내외와 함께 당신 손으로 지은 집에서 살고 있다. 근처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주만 여섯 명, 보기 드문 대가족이다.

문득, 옆에서 십자수를 뜨고 있던 며느리가 내게 말했다. “아버지 말이 맞아요. 옛날에 지은 집이나 궁궐은 지금처럼 기계로 만든 것도 아닌데 부서지지도 않고 참 오래가는 게 신기해. 우리나라에 있는 만리장성도 마찬가지고, 그런 걸 그 시절에 어떻게 만들었는지 몰라. 그것도 진짜 튼튼하게.” 그러면서 그녀는 십자수를 뜨던 손을 멈추고, ‘바람 부는 제주에는 돌도 많구요.’라는 노랫말을 아느냐고 내게 되묻는 게 아닌가!

하르방의 집에는 ‘인정 많고 마음씨 좋은’ 며느리가 셋 같이 사는데, 세 분 모두 고향이 중국이다. 그래서 그는, 아들을 장가보낸 덕분에 만리장성도 보고 왔다고 자랑처럼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며느리 분에게 귀띔처럼 한 마디 했다. “그거 알아요? 언니네 동네 만리장성은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이 동네 만리장성은 시아버지께서 다 만드신 거에요!” 그랬더니 모두 큰소리로 웃는다. 그 바람에 아기가 잠에서 깨고, 웃음소리에 울음소리가 어우러져 마당이 한바탕 왁자지껄하다.

집을 나서며 내가 그에게 말했다. “손주들에게도 언젠가 돌담 쌓는 법을 알려주면 좋겠네요. 나중에 걔네가 컸을 때 제주에 돌담이 하나도 없을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알아야 할 것 아니에요, 어떻게 쌓는지? 지금은 할아버지가 무너진 담도 새 담도 다 쌓으면 되지만.” 그러자 그가 말도 안 된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되묻는다. “돌담이 없어진다고?”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빨갛게 석양이 진다. 그가 만들었을지도 모를 올렛담의 작은 구멍들을 바라보다가 태양빛에 눈이 멀 것 같다.<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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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지는 ?

이 여자, 택시 기사들과 대화 나누길 즐기는 ‘수다쟁이’다. ‘역마살’도 단단히 타고났다. 거기에다 ‘촌스러움’까지 좋아하는 독특하고 야무진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정신지(32). 파주·부산 출신의 부모님 아래 서울서 태어나 여섯 살에 제주로 이민(?) 왔지만 스무살에 다시 서울로 나갔다가 일본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지역연구학’이라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세계 17개국의 섬·지방·대도시를 떠돌며 사람과 집단,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지난 봄, 일본의 국립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이제 12년간의 지구촌 유목 생활을 마치고, 태어난 곳은 아니되, 자신을 성숙하게 키워준 ‘진짜 고향’ 제주로 지난 봄 돌아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에 짐을 풀었다.  매주 한차례 <제주의소리>를 통해 제주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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