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멍 보멍 들으멍](14) 웃뜨르 노부부와의 만남, 첫 번째 이야기 / 정신지
 

▲ 할망이 한적히 앉아 바라보는 세상. 생기고 또 생기는 마을 앞 도로가 그녀에게는 너무나 낯설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지난봄에도 꽃이 만발했다는 벚나무 밑에 할망이 앉아있다. 할망의 오후는 지나가는 차를 바라보기도 하고 말을 건네는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면서 천천히 흐른다. 팔십 다섯을 살아온 그녀의 몸과 마음은 이제 가만히 앉아 세상을 바라보기만 해도 괜찮다. 다리가 아파 제대로 걸을 수 없는 그녀에게 있어 ‘보는 것’은 즉, ‘사는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멍하게 보고만 있는 게 아니다. 그녀가 하늘을 보는 것은 구름을 보고 바람을 느끼며 다가올 일기예보를 점치는 것.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은, 오늘 하루 누가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는지 살피며 마을의 하루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 노인들에게는 한눈에 사물을 관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허리가 구부러지고 이가 빠졌어도 그들의 내공은 세월이 흘러 단단히 굳어진 바위 같다. 신문이나 인터넷이 생기기 훨씬 이전, 사람들은 노인의 지혜를 나침반 삼아 하루하루를 살았었다. 언제 씨를 뿌리고, 어디로 물질을 나가고, 무슨 바람에 어디서 고기가 잡히는지, 갓 태어난 아기가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모든 지혜와 지식들이 노인들에게서 온 것이고, 한때 모두는 그런 현명한 노인이 되기를 희망하며 살아왔었다.

“이디도(여기도) 질(길)이 이신디(있는데), 또 질이 나고, 겐디(그런데) 지금 저디(저기) 또 새 질을 만들고. 족은(작은) 마을에 무사(왜) 질이 영(이렇게) 하영(많이) 생겸신고?(생기는 걸까?) 질만 질만…(길만 길만…). 너미(너무) 지나쳐.”

할망이 말을 꺼냈다. 공사 중인 도로를 바라보며 그녀가 혼잣말처럼 내뱉은 말을 길 가던 내가 듣는다. 잘됐다 싶어 그 옆에 앉았다. 그녀와 나는 한참을 ‘생기고 또 생기는 마을 앞 이상한 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웃뜨르(중산간 마을)에 사는 순박한 노인의 지혜로는 도저히 풀어낼 수 없는 쾌쾌하고 찝찝한 도로공사의 뒷이야기를 나는 신문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녀가 평생 밭을 일구던 마을 뒤편의 땅도 수년 전에 길을 낸다고 나라에서 사갔다고. 지금 팔면 제대로 땅값도 올라 좋았을 것을, 거의 강제로 헐값에 팔려나간 할망의 땅에는 새 길이 생겼지만 차도 몇 대 다니지 않는다. 되레 새로 난 도로 위에서 짐승들이 차에 치여 죽는다. 그런 땅에 뭐 하러 길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며 둘이 함께 혀를 찼다.

 

▲ 당신 곧는(말하는) 말 잘 들어주어 기특하다며 나를 집 안으로 초대하신 할망. 씩씩하게 걷는 그녀를 따라 걷는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4.3사건 이야기가 나왔다. 노인들과 이야기를 하며 말문이 트이면 제일 먼저 나오는 제주역사의 화두. 피할 길이 없다. 묻지 않아도 나오는 4.3의 기억들은, 토해내지 않으면 독이라도 퍼질지 모르는 제주의 오래된 고질병이다. 하지만 이렇게 스스로 이야기를 꺼내는 노인들은 아직 건강하신 분들이다. 그렇지 못한 노인들은 평생을 암보다 더 독한 고질병을 안고 산다. 들어주기만 해도 약이 되는 것을, 은근히 잔인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할망이 입을 연다. “친정이 바닷가 근처라 그디로(거기로) 피난 갔주(피난 갔지). 그땐 먹을 게 어시난 게(없으니 말이야), 곡식 가져당(가져다가) 땅 팡이네(땅을 파서) 이디저디 묻어둰(여기저기 묻어 뒀어). 겐디(그런데), 마을 사람신디(에게) 걸령이네(걸려서) 몬딱 뺏겨부런(전부 뺏겨버렸어). 겅하난(그러니) 구걸허멍 살았주(구걸해서 살았지). ……나 나이 스물하나에 다시 웃뜨르에(중산간에) 올라완(올라왔어). 똘(딸) 하나 나고(낳고) 시아주방(시아주버니)이 아들 하나 나신디 4.3사건 때문에 시아주방 죽어불고(죽어버리고). 그 아기도 데려왕(데려와서) 다 고치 살았어(다 같이 살았어). 겐디 다음 해에 큰 똘이 홍역에 걸련(걸려서) 죽어불고….”

그녀의 입에서 연발되는 ‘죽어불고’라는 말이 마치 사막의 모래바람 같다. 건조할 대로 건조한 말투로 할망은 말하지만, 실상 스물하나에 첫 아기를 잃은 그녀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그런 그녀에게, “할머니 그때 많이 우셨지예(우셨죠)? 잘도(너무) 맘 아파시쿠다예(아프셨겠네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할망은, “슬프믄 어떵헐거라(슬프면 어쩔거야)…. 홍역에 죽으민(죽으면) 울지도 말랜 해서(말라고 했어). 숭봥이네(악운으로) 후제도(후에도) 조식(자식) 나민(나으면) 또 경한댄(그런다고). 게난(그러니까) 울지도 못핸. 곱앙도(숨어서도) 울지 안 허연(안 울었어).”

말을 하는 할망 목소리가 살며시 떨렸다. 잘 보이지도 않는다는 할망의 눈동자에는 이내 눈물도 고였다. 괜한 말을 꺼내 할망을 울렸나. 그런데 할망이 지팡이를 들고 일어나며 나보고 “글라(가자)” 하신다.

 

▲ 하르방은 하루에도 몇 번 씩 오래된 사진을 꺼내어 보신다. 사진 속 작은 얼굴들을 바라보며 이름을 떠올리시는 것이 하르방의 취미.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당신 곧는(말하는) 말 잘 들어주어 기특하다며 나를 집 안으로 초대하신 것이다. 할망들과 만나 몇 차례 겪은 일이지만, 이번에도 나는 그녀의 손자며느리로 발탁되었다. 손자와 나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손자의 이름도 내게 안 가르쳐주고, 이미 나를 이 집에 온 손자며느리로 취급하시며 귀여워해 주신다. 맛있는 크림빵을 주시고, 잘 여문 배도 깎아주신다. 그 누구에게도 안 통할 자랑이지만, 서른이 넘도록 시집을 안 간 나는 할망들에게 인기가 좋다. 시급히 구제해야 할 젊은이라고 생각을 해서일까? 온 동네 장가 못 간 총각을 죄다 나에게 가져다 붙이려 하신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할망 하르방의 그런 마음에 게으른 정신이 번쩍 들 뿐.

집으로 들어가니 할망보다 두 살 나이가 많다는 여든일곱의 하르방이 방안에서 옛날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때를 놓칠세라, 하르방 앞에 가서 큰소리로 내 소개를 했다. 이름이 뭐고 어디서 왔고, 교회에서 온 사람 아니라고 덧붙여 이야기 했으나, 하르방은 말없이 환하게 웃기만 한다. 할망 말에 의하면 그는 귀가 안 들린다. 말도 조금밖에 못 한다. 세 살 때 크게 앓아 죽다 살아났는데, 그때 침 시술을 잘못 받아서 귀가 먹었다고 한다.

“게난(그러니까) 날 속영(속여서) 이디(여기) 데려온 거라. 열일곱에 이 마을에 시집와신디(시집왔는데), 중매하는 사람이 이추룩한(이런) 하르방이랜 곧지 안 허연게(말하지 않은 거지). 처음에 보난(보니) 얼굴도 밉지 않게 생겨신디(생겼는데). 시집 왕(와서) 고만히(가만히) 새각시로 방에 앉았는데, 남자가 말하는 걸 영 몰라. ‘이상허다.’ 생각해신디 겅해도(그래도) 그땐 몰란(몰랐어). 이제라면 강이네(가서) 소문이라도 듣고 허지. 먼디서 시집와부난(먼데서 시집오니까) 누게가(누가) 가르쳐줘?”

할망은 그 시대의 모든 젊은이들이 그랬듯 중매로 결혼했다. 하지만 누구도 하르방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이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화가 난 그녀는 시집 안 살겠다고 친정으로 내려갔다.

“겐디 그놈의 4.3사건이 낭이네(나서)…. 시아주방은 강(가서) 죽어 불고, 친정 가니까 잠도 못 자게 헌저(빨리) 가랜 쫓아불고게(가라고 쫓아내고). 시아주방이 죽고 나서, 내 도민증(주민등록증)에 붉은 글이 써젼(써졌어). 나가 웃뜨르에서 첩자로 댕겸짼(다닌다고). 친정에서도 쫓아내고….”

 

▲ 할망이 젊었을 때 친구들과 찍은 천지연 폭포 앞에서의 사진을 보여주셨다.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은 할망이 참 예뻤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에휴, 하며 크게 할망이 한숨을 짓는다. 땅이 꺼질 듯했으나, 할망의 방은 꺼질듯 어두컴컴한 옛집이 아니다. 얼마 전에 자식들이 돈을 모아 살기 쉽게 고쳐준 새하얀 집. 화장실도 집 안에 있고, 천장도 높다. 4남1녀 모두 효성이 지극하다. 

할망이 커피를 만드는 동안, 하르방과 옛날 사진들을 본다. 성인이 한참 지난 막내 손주(내가 임의로 시집 온 그 남자!)의 벌거벗은 돌 사진을 가리키며 하르방은 껄껄 웃는다.

커피를 마시며, 하르방 등 뒤에서 할망과 나는 하르방의 이야기를 했다. 6.25전쟁이 나고, 귀도 안 들리는 신랑이 신체검사에 합격했다는 이유로 군에 끌려가지만, 그녀는 알았다. 며칠 못 가 다시 돌아오리라는 사실을. 그녀의 예감대로 이틀 만에 신랑이 군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그 둘은 하루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살고 있다.

한창 이야기가 무르익어갈 때 즈음, 막내며느리가 왔다. 할망이 벌떡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하는 말. “장남 벌초허래 서울서 내려와샤(내려왔어)? 야이헌티(이 아이에게) 장게 보내불라게(장가 보내버려라).”

할망과의 기나긴 이야기는 다음에도 계속된다. 과연 나는 그녀의 막내 손자와 중매까지 갈 것인가?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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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지는 ?

   

이 여자, 택시 기사들과 대화 나누길 즐기는 ‘수다쟁이’다. ‘역마살’도 단단히 타고났다. 거기에다 ‘촌스러움’까지 좋아하는 독특하고 야무진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정신지(32). 파주·부산 출신의 부모님 아래 서울서 태어나 여섯 살에 제주로 이민(?) 왔지만 스무살에 다시 서울로 나갔다가 일본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지역연구학’이라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세계 17개국의 섬·지방·대도시를 떠돌며 사람과 집단,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지난 봄, 일본의 국립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이제 12년간의 지구촌 유목 생활을 마치고, 태어난 곳은 아니되, 자신을 성숙하게 키워준 ‘진짜 고향’ 제주로 지난 봄 돌아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에 짐을 풀었다.  매주 한차례 <제주의소리>를 통해 제주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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