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멍 보멍 들으멍] (16) 할망이 풀어놓은 추석 선물 보따리 / 정신지

 

▲ 할망집의 달력은 9월인데 10월이다. 추석연휴를 손꼽아 기다리셨나? 하고 물으니, 종이가 필요해 그냥 찢어버린 거라고. 그녀에게 달력의 숫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할망은 동네에서 소문난 가수다. 86세의 연세에, 한번 시작하면 사오절 이어지는 기나긴 판소리며 민요들을 가사 하나 빠뜨리지 않고 연창한다. 시원시원한 목청에 춤사위까지 깃들여 할망이 노래를 부르면, 옆에 있던 사람들도 절로 흥이 돋는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여름 한림읍의 한 마을에서다. 폭낭(팽나무) 밑에 앉아 더위를 피하던 할망들과 마주 앉아 수다를 떠는데 할망이 회심곡이라는 판소리를 불렀었다. 언젠가 마을을 찾아온 약장수가 부르던 노래를 한 번 듣고 모조리 외워버렸다던 그녀는, 운이 좋아 알게 된 숨겨진 천재 노래꾼이다.

할망의 노래가 듣고 싶어져 다시 그 마을을 찾았다. 그런데 시작부터 운이 좋다. 마침 산책을 하러 집 앞에 나오신 할망을 붙잡고 나를 기억하시냐 물었더니, 반쯤 빠져버린 앞니를 환하게 드러내어 웃으시며, “아이고, 잘 왔쪄게(잘 왔네). 우리 집에 강 노카(가서 놀까)?” 하신다.

깨끗하게 정돈된 할망의 집에는 불필요한 것이 하나도 없다. 텅 빈 공간이지만 썰렁하지 않다. 오남매를 기르며 60년 넘게 살아왔다는 그녀의 집에서는 아직도 따스한 사람들 냄새가 난다. 마루에 앉아 밖을 바라보니, 파란 가을 하늘 밑에 유유히 자리 잡은 한라산이 보이고, 키 작은 돌담이 굽이굽이 품고 있는 정겨운 밭의 풍경도 펼쳐진다. 그리고 그 한 귀퉁이에 자리한 커다란 폭낭, 그 밑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었다.

일제강점기, 열여섯의 꽃다운 나이에 만주에 건너가 6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는 그녀는,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가 영화 같다. 공장에서 비단 짜는 노동을 하며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 드넓은 만주 벌판의 기억과 귀향길 기차 안에서 들리던 기적 소리까지. 당신이 품고 살아온 많은 기억을 너무나 선명하게 말씀해주시던 그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기도 했다.

 

▲ 화창한 가을 하늘,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 제주의 시골은 지금, 새로운 가을 농사의 시작으로 분주하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그러나, 할망의 영화 같은 지난 이야기는 다음 편에 하기로 하자. 눈물이 찔끔 나는 이야기도 많았으나, 한편으로 할망의 즐거운 이야기에 나는 배꼽을 잡고 뒹굴며 몇 번이고 웃었다. 오늘은 그녀가 들려준 보석 같은 이야기를 추석 선물인 셈 치고 독자들과 함께 맛있게 나누어 먹고 싶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지금도 제주의 시골 마을에는 각 곡식의 수확이 끝날 때 즈음 약장수가 마을을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옛 시절(1960년대 후반~)의 약장수만은 못하다고. 텔레비전도 영화관도 흔하지 않던 그 시절, 약장사는 연예인보다 인기가 좋았다. 트럭에 마을 여자들을 실어다가 약장사가 오는 곳에 내려놓고, 공짜로 세제도 주고 먹을 것도 나누어 주며 동네 아줌마들의 여심을 사로잡았다. 그러다 보니,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닌’ 약장수들의 뛰어난 화술에 속아, 곡식 팔아 모은 쌈짓돈을 죄다 약장수에게 갖다 바치기 일쑤였다.

“나가(내가) 우스운 말 고라주켜(말해줄게)” 하며 그녀가 약장수에 관련된 일화를 들려주셨다. 

“이디(여기) 사람들 모아당이네(모아다가) 약장시신디 가난(약장수한테 가니까), 눈 볽아지는(밝아지는) 빤쓰(팬티)가 있댄(있다고). 우리도 그 말 들엉(들어서) 눈 볽게 허잰(밝게 하려고) 5만 원 줭 사서(주고 샀어). 5만 원에 빤쓰 다섯 개.
경헌디(그런데), 그걸 어떵허느냐 허민(어떻게 하느냐 하면), 빤쓰 하나는 대가리에(머리에) 쓰고, 또 하나는 눈에 더끄고(덮고), 또 하나는 입고, 경허민(그렇게 하면) 눈이 좋아진댄 허난. 하영들(많이들) 샀주게(샀지).

겐디 그추룩(그런데 그렇게) 며칠 해봐도 눈이 안 볽아져. 옆집 벗신디(친구에게) 강이네(가서) ‘눈 호끔(조금) 좋아져샤(좋아졌어)?’ 하고 솔짜기(조용히) 물어도 아무추룩도(아무렇지도) 않댄(않다고). 경허난(그러니) 그제사(그제야) ‘아이고 속았구나!’ 해서(했어).”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웬만한 코미디 영화 저리가라다. 30년이 지난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녀 역시 그 기억을 떠올릴 때 마다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다 하신다.

 

▲ 할망이 내게 주신 추석 선물. 동네에서 가장 맛좋은 호박이라며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이제도(지금도) 약장시가 댕겨. 다마네기(양파) 작업할 때, 봄 나민(되면) 그때 오주(오지). 작업허영(해서) 할망들 돈 있댄게(있으니까). 올해도 한 서너 번 와서. 이제는 사람들이 욕앙이네(약아서) 가잰(가려고) 안 허여(안 해). 경헌디, 전에는 아니 사는 사람들이 어서난(없었어). 다리 아픈 거에 좋댄 허난(좋다고 하니까) 한번은30만 원어치 약도 사나서(샀었어). 경헌디 먹어봐도 아니 좋으난, 아기들이영 서방이영(자식들이랑 남편이랑) 알면 혼나카부댄(혼날까봐서) 불살라 부런게(불살라 버렸어). 경헌디 물로 된 약이 담아졍 이서 부난 타질 안 허연(물로 된 약이 담겨 있어서 타지 않았어). 서방신디(남편에게) 걸령이네(걸려서), 한 번만 더 약장시 구경 가민(구경 가면) 집에서 내 몰아부켄(내 쫓아버린다고)…….”

순수한 마음에 약장수의 화술에 넘어가 약을 사고도, 마음 조마조마해가며 약발이 듣기를 기다리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자니 웃다가도 마음이 짠하다.

할망은 올 추석을 혼자 지낸다고 했다. 한평생 명절이란 명절은 도맡아 제사준비를 해 오셨지만, 10여 년 전에 며느리들에게 바통을 넘기신 채 명예퇴직(?)하셨다. 시에 사는 아들의 집에 대가족이 모여 추석을 지내고, 연휴 기간 중 음식을 가득 싸안고 자식들이 할망을 보러올 것이라 한다. 그러니 사실 혼자는 아닌데, 할망은 내게 ‘혼자임’을 강조하신다. 숨기려 하셔도 혼자 사는 할망은 알게 모르게 외로운 거다. 

한창 이야기를 하다가 할망이 대뜸 나더러 노래를 한 곡 뽑으라 명하셨다. “노래마씸(노래요)? 할머니 추룩(처럼) 잘은 못해도, 부르랜(부르라고) 하시난(하시니까) 한 곡 부르쿠다(부를게요).” 말해놓고 나도 놀랐다. 무슨 배짱으로 노장의 천재 명창 앞에서 이런 반응을 보였는지. 얼마나 웃기는 경쟁심이던가! 그녀에게 질세라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불후의 명곡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완창(?)했다. 그러자 할망은, 내 노래가 끝나자마자 “조오타!” 한마디 하시고, 부탁도 안 했는데 노래를 이어간다. 그렇다, 나는 명가수가 노래를 부르기 전 무대 위의 분위기를 띄우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그녀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부르신 노래가 흘러나온다.

“노세 놀아 젊어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요리 허영(해서) 날 속이고, 저리 허영 날 속이고,
속이는 당신은 좋거니와, 속는 이 내 맘은 어찌 헐고.
얼씨구나 절씨구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너와 나가 회청들 적에 백 년 살기로 정을 두고,
해로 백 년도 못살아서 정찰소(경찰서) 모퉁이 웬일이더냐.
얼씨구나 절씨구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열 리를 두고 나는 간다.
가기랑 갈지언정 정 말고 미련 두고 가라.
아프라고 때렸더냐 사랑에 넘쳐 때렸나니,
조금도 섭섭히 생각 마오.
얼씨구나 절씨구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조오타!”

할망의 열창이 끝나자, 나의 박수갈채 환호로 집안이 떠나갈 듯했다. 이 역시 약장사가 부른 노래를 외워 스스로 편곡(?)을 했다. 할망은 글을 쓰지도 읽지도 못한다는데, 한 번 들은 노래를 통째로 삼켜 잡수시는 위대한 재능이 있다. 그런 대단한 할망이 내게 주신 추석 선물이 내 마음을 토실토실 살찌웠는지, 아침도 거르고 집을 나섰건만 금세 배가 불러왔다.
 

▲ 이야기가 끝나고 할망이 산책을 나가려는데 동네 아주머니가 할망에게 새로 심을 마늘을 골라달라며 부탁하셨다. 여든여섯의 나이에도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집을 나서려는데 할망이, “집에 호박 이시냐(있어)? 나가(내가) 맛 좋은 호박 주카(줄까)?” 하신다. 그래서 “할머니 드십서(드세요). 나는 장에 강(가서) 사 먹어도 되어 마씨.”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가 소리 없이 자리를 옮겨 낡은 서랍장을 열고 무언가 꺼내셨다.
“이거 가졍강(가져가서) 내년 봄에 심으라. 잘도 맛좋은 호박이라.” 하시며 한 움큼의 ‘호박씨’를 신문지에 싸서 내 손에 쥐어 주시는 것이 아닌가.

내가 만나온 제주 할망들의 위대함은 도대체 어디부터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 걸까? 정처 없는 생각을 하며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마치 추석연휴를 맞아 우주여행이라도 다녀온 듯한 기분이다. <제주의소리>

<정신지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정신지는 ?

   

이 여자, 택시 기사들과 대화 나누길 즐기는 ‘수다쟁이’다. ‘역마살’도 단단히 타고났다. 거기에다 ‘촌스러움’까지 좋아하는 독특하고 야무진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정신지(32). 파주·부산 출신의 부모님 아래 서울서 태어나 여섯 살에 제주로 이민(?) 왔지만 스무살에 다시 서울로 나갔다가 일본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지역연구학’이라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세계 17개국의 섬·지방·대도시를 떠돌며 사람과 집단,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지난 봄, 일본의 국립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이제 12년간의 지구촌 유목 생활을 마치고, 태어난 곳은 아니되, 자신을 성숙하게 키워준 ‘진짜 고향’ 제주로 지난 봄 돌아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에 짐을 풀었다.  매주 한차례 <제주의소리>를 통해 제주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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