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멍 보멍 들으멍](22) 슬프지 않은 여자는 없다 / 정신지

 

▲ 동생 할망에게 초대받아 언니 할망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 오른편에 보이는 두 개의 지팡이가 바로 문제의 지팡이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여기저기 피어난 이름 모를 가을꽃에 정신이 팔린 채 시골 길을 걷는다. 드넓은 가을 하늘 아래 푸릇푸릇 자라나는 취나물 밭이 있고, 그 곁 밭담길을 따라 등이 굽은 작은 할망 한 분이 걸어오신다. 지팡이가 짧아 불편하신 건지, 조금 걷다 서고 또 조금 걷다 서고를 반복하며 그녀는 걷는다. 눈이 마주치자 할망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어디 가느냐고. 날이 좋아 버스를 타고 마실 나와서 그냥 걷고 있는 거라 하니, 여자 혼자 걸으면 위험하다며 선뜻 같이 걷자 하신다. 이 얘기 저 얘기 하며 10여분 느릿느릿 걷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 할망이 잘 아는 동네 언니네 집이다.

깔끔하게 정돈된 집에는 내년이면 아흔이라는 주인 할망이 갓 삶은 고구마를 접시에 담아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초대한 올해 여든셋의 젊은(?)할망은 웃옷 주머니 속에서 비닐봉지에 담긴 고구마튀김을 꺼내신다. 두 명의 고운 할망과 함께 고구마에 겉절이 김치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달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은 고구마가 젓갈 냄새가 코를 찌르던 싱싱한 겉절이와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 

그녀들은 그렇게 하루에 한 번 씩 서로의 집을 오고 가며 자매처럼 살고 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두 분 모두 혼자다. 하지만 홀로 살아온 경력이 올해로 66년째라는 언니 할망은, 이래저래 동생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이 일이다. ‘딸이 가져다준 고기는 한 번에 먹을 만큼만 덜어서 냉동을 시켜야 한다.’, ‘청소는 미루지 말고 해야 한다.’, ‘자식도 살기 힘든데 딸이 이것저것 가져다줘도 필요 없다 말하여라’, 등등. 잔소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듣다 못 한 동생은, “예, 알아수다(알았어요).” 하고 대답만 하다가 온 지 이십 분도 안 되어 자리를 뜬다. 밥을 얹히러 가야 한다며 집을 나서려는데, 그녀의 등에다 대고 언니 할망은 또, “강(가서) 괴기(고기) 잘 해불라이(잘 처리해라). 한 번 먹을 만치만 해라이(만큼만 해라).” 하신다. 실컷 잔소리를 듣고 그냥 나가시나 했더니, 동생 할망이 문을 나서며 일을 하나 저지른다. 언니 할망이 나뭇가지를 꺾어 만들어놓은 늘씬한 지팡이를 자기 것인 양 슬쩍 가지고 나가버린 것이다. 동생 할망도 오는 길에 지팡이를 짚고 왔건만, 자기 것을 두고 언니 것을 챙겨 간다.

“나 것은 막 짧앙(너무 짧아서) 걷지 못허난(걷지 못하니), 이거 가져강(가져가서) 나중에 하나 봉가 주쿠다(주어다 줄게요).” 하시며 현관문을 닫는다. 그 바람에 화가 난 언니 할망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무사(왜) 이녁 몽둥이 놔뒁(자기 지팡이 놔두고) 놈의 것 집엉감시냐(남의 것을 가져가느냐)? 저것이 노망이 아니라 뭐여?” 잠시 큰 할망의 심기가 불편하다. 하지만 이내 괜찮아진다. 언니는 언니다.

 

▲ 두 할망은, 하루에 한 번씩 서로의 집을 오가며 자매처럼 지낸다. 그런 그들의 한적한 오후에 길 가던 처자가 불쑥 나타나도, 웃음으로 나그네를 반겨주시는 할망들. 사막의 오아시스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 언니 할망은 고구마를 삶아놓고, 동생 할망은 고구마튀김을 가지고 왔다. 겉절이 김치와 함께 먹는 고구마는 환상적이다. 노인정에서 만들었다는 과자를 선보이시는 언니 할망. 하나 먹어봤더니 그 또한 꿀맛이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홀어미로 한평생을 살아온 그녀에게는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단단해지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젊은 날 그녀에게 세상은 온통 공포투성이였다. 유난히 무서웠던 것은 ‘남자’와 ‘어머니’. 할망의 어머니 역시 스물여덟에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었기에,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그녀는 엄하게 자랐다. 홀로 오누이를 기르던 할망의 어머니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여자였다. 

“옛날엔 놀 것이 어성(없어서) 공기허고(공기놀이하고) 배뜰래기(줄넘기) 행 놀아신디(하며 놀았는데), 짚신 신엉(신고) 놀래 감시민(놀러 가고 있으면) 어멍이 짚신 헐어분댄(어머니가 짚신 헌다고) 집밖에도 못 나가게 해나서(했었어). 그땐 학교도 어신(없던) 때라, 후제(후에) 야학이라도 배우젠허난(배우려고 하니까), 다른 사촌은 다 감신디(가는데) 어멍이 나는 못 가게 문을 똑 잠가불고(잠가버리고)…. ”

게다가 처녀 적에는, 마을에 들어와 있던 일본군들에게 몇 번이고 몹쓸 짓을 당할 뻔했었다. 홀어미에 어린 딸까지 있는 그녀의 집에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일본 남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기에, 늘 온 집안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스물둘이 되던 해 그녀는 옆 마을 총각에게 시집을 간다. 중매였으나 총각은 할망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혹은 사연이 있었는지 결혼을 거부했었다. 할망 말에 의하면, ‘남편이 너무 잘나서 나 같은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었던 모양’이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 나도 모르게 ‘쳇!’하고 할망 대신 불끈 화를 냈다. 하지만 어렵사리 시작된 신혼생활도 이 년 만에 끝이 난다. 첫 아들을 낳던 해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며, 스물넷의 꽃다운 나이에 과부가 된 것이다. 할망의 억센 표현을 빌리자면, ‘지랄 맞은 4.3사건’ 때문이다.

“아방이 사무실에 오랭 행(오라고 해서), 저녁에 아기 업고 갔주(갔지). 경헌디(그런데) 사람이 어서(없어). 어디로 가부러신가 행(갔나 해서) 뒷날 다시 가보난(가보니) 그디서 죽어부러선 게(거기서 죽어있었어). 그때는 폰폰허연(막막해서). 아무 철에도 몰란(아무 철이 없었어). 지금 같으민(같으면) 더 억울할 건디(것인데), 그때는 다 죽을 걸로 아난(아니까)…. 6.25도 그 자락은(그 정도는) 안 했쪄(안 했어). 일제시대엔 먹을 것은 가져갔지만, 사람을 앞에서 죽이고 해시냐게(했었나)? 거, 왜, 제주도 호끄만헌디(작은 곳에) 지랄을 해놨냐게…. (때리거나 총으로 쏘면) 늙은이는 두 바퀴에 죽고, 젊은이는 서너 번 대엿 번 둥그러사(둥글어야) 죽어라(죽더라고). 나 그런 거 다 봤쪄(봤어).”

 

▲ 세상에 한 명밖에 없는 할망 남편의, 세상에 한 장밖에 없는 사진이다. 4.3추모 공원에 모셔다 놓고 나라에서는 비석도 세워주었다고 하나, 모두가 부질 없는 짓이라고 할망은 말했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 집으로 나서는데 할망이 배웅을 나오신다. 한 장 찍었는데 인사를 하다보니 흔들렸다. 웃는 모습이 고운 언니 할망의 미소가, 떠나는 나그네의 움추린 등판을 따스히 비추어주는 것 같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폭력과 쟁탈의 나날들에는 늘상 지독한 공포의 냄새를 풍기는 ‘남자’들이 있었다. 아버지의 사랑도, 남편의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살아온 그녀에게, 남자는 오로지 하나 있는 아들뿐. 혼자 그 시절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른다 하신다. 어떤 이는 돼지를 기르던 통시(화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와 구린내를 풍기며 할머니를 얻어가려 했었고, 어느 날은 집에 와보니 창문이 열린 채 벌거벗은 남자가 이불 위에 누워있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조차 홀로된 그녀를 지켜주지 않았고, 4.3때는 목직(경비)을 서던 마을 남자들이 일하다 말고 집으로 들어오려 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결심했다. 믿을 놈 하나 없는 시국에 새서방 얻을 생각 말고 일만 하자고. 아이를 등에 업고 밥을 싸서 다니며 풀을 베고, 미친 듯 일을 했다. 밭을 갈고 있으면 잡념도 줄었다. 나이를 먹고 몸이 늙은 후에도 술에 취한 남자가 자신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점점 단단해진 그녀는 이제 몽둥이로 남자들을 후려칠 정도로 강한 여인이 되어있었다. 성인이 된 아들은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돈을 벌어왔고, 홀어미를 돌봤다. 그리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녀의 아기는 이제 손주를 거닌 멋진 할아버지가 되었다.

“징손을 보난(증손을 봤으니), 옛날 같아시민(같았으면) 싯게(제사)명절을 안 헌댄 허여(안 한다고 해). 나가 죽어도 싯게가 필요 없는 거. 복 받고 죽은 거난(죽은 거니까). 허이고, 혼저 가살 건디(빨리 눈 감아야 하는데). 여든 아홉이난 올해 가질 건가? 올해 죽어불민(죽으면) 딱 좋아. 이추룩 오래 살지 몰란게(이렇게 오래 살지 몰랐어). 일흔 되던 해에, 죽을 때 입을 상복도 지어 놔신디(만들어 놓았는데), 이제 그거 몬딱(전부) 좀 먹엉이네(좀 쓸어서) 데껴부러서(던져버렸어), 하하. 이제 허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어서(없어).  갖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디도(곳도) 어서. 손지들 외에는 보고 싶은 것도 어서게. 무서운 것도 없고. 이젠 영해도(이래도) 죽지 아니 허는 나가 제일 무서워. 하하.”

할망이 말씀을 끝내고는 안방으로 가셔서 무언가를 들고 나오셨다. 세상에 한 장밖에 없는 돌아가신 그녀의 남편의 사진이었다.
“잘 생기긴 한거여, 이(잘 생기긴 했어, 그지)? 게난(그러니까) 나신디 안 오켄(안 오려고) 한 거라. 하하하.”
말끝마다 하하하 웃으시는 할망이 아무리 슬퍼 보여도 그것은 나의 착각이다. 그 언젠가 할망이 하르방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제일 먼저 무슨 말씀을 건네실까? 스물넷의 꽃다운 젊음을 간직한 그들의 다음 이야기를 마음속에 그려보는 나. 그런 나야말로 ‘슬픈 여자다’ 라고 할망이 말을 하는 것 같다. <제주의소리>

<정신지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정신지는 ?

이 여자, 택시 기사들과 대화 나누길 즐기는 ‘수다쟁이’다. ‘역마살’도 단단히 타고났다. 거기에다 ‘촌스러움’까지 좋아하는 독특하고 야무진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정신지(32). 파주·부산 출신의 부모님 아래 서울서 태어나 여섯 살에 제주로 이민(?) 왔지만 스무살에 다시 서울로 나갔다가 일본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지역연구학’이라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세계 17개국의 섬·지방·대도시를 떠돌며 사람과 집단,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지난 봄, 일본의 국립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이제 12년간의 지구촌 유목 생활을 마치고, 태어난 곳은 아니되, 자신을 성숙하게 키워준 ‘진짜 고향’ 제주로 지난 봄 돌아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에 짐을 풀었다.  매주 한차례 <제주의소리>를 통해 제주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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