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멍 들으멍 보멍] (28) 한라산에서 띄운 새해 소망 ‘함께’ / 정신지

 

▲ 눈바람이 걷히고 신비한 한라산 정상이 자취를 드러낸다. 윗세오름 근처에서.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겨울 한라산에 올랐다. 보이는 것이 온통 하얗게 덮여서일까, 잡상이 보이지 않으니 잡념 또한 없다. 하얀 능선을 날아다니는 시꺼먼 까마귀와 군데군데 보이는 노루 발자국이 반가울 정도로 세상은 단조롭다. 머리 위의 파란 하늘과 눈앞의 푸른 바다가 위아래 없이 뒤섞이고, 발밑의 새하얀 것은 구름인지 눈인지. 지칠 새도 없이 감탄하며 걷고 또 걷는 한겨울의 산행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조용하고 따뜻하다.

어느 소설가는, ‘한라산은 신비하면서 자상하고 푸근하면서 자랑스럽다’고 묘사하면서 제주도를 밟는 것을 ‘감미로운 실종’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여행자의 매력적인 감상이다. 하지만 제주사람들에게 있어 한라산은 보다 현실적이다. 언제 무슨 일이 있어도 늘 그 자리에 서 계신 어멍 마음 같은 산이고, 돌아가신 하르방이 잠든 산이다.

그 젖줄을 타고 흘러온 물에 밥을 해 먹고, 한라산 한 자락에서 얻어온 나무와 돌로 마을과 학교가 생겼다. 그렇게 제주의 사람들은 제 각각의 방향과 거리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며, 산과 함께 자라고 늙어왔다.

지난 한 해 나는 참 많은 할망 하르방을 만났다. 운이 좋아 만난 그들은, 내게 커피도 권하고 사진도 보여주시며 잠시나마 내게 당신 삶의 일부를 나누어 주셨다. 하지만 더 많은 어르신은 말 걸기가 무서울 정도로 바쁜 하루를 살고 계셨다. 이제 좀 내려놓고 편히 쉬며 살 수도 있을 나이에도, 쪼글쪼글한 손을 한 시도 놓을 줄 모르는 어르신들의 말 없는 부지런함이 오히려 나를 긴장하게 하였다. 홀로 사는 할망 하르방들의 살아있는 눈빛에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늙고 병든 어르신들의 강인함에 시작부터 나는 지고, 또 졌다. 그러다가 한 해를 정리하며 오르게 된 한라산. 조용히 산을 걸으멍 보멍 들으멍 많은 것을 느낀다.

 

▲ 나무 위에 핀 꽃도 풀 위에 핀 꽃도 겨울에는 다 모아 눈꽃이라 부른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 발밑의 하얀 것이 구름인지 눈인지. 서귀포 시내와 앞바다가 그대로 내려다보인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남벽 분기점을 지나 돈내코 방향으로 내려오던 길에서 나는 한라산국립공원에서 근무하시는 산지기 아저씨 한 분을 만났다. 내가 이 길을 가는 오늘의 마지막 등산객이라며, 젊은 처자의 안전을 위해 그는 같이 하산하자 하신다. 문득 호기심이 생겨 그에게 물었다. “혹시, 일 때문에 산에서 자 보신 적 있으세요?” 그랬더니 그는 발령이 난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으나, 동료들은 순번을 정해서 대피소에서 당직을 선다고 한다.

“대피소에서 보면 남쪽 하늘에 노인성(老人星)이라는 별이 보여요. 그 별을 보면 장수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정말 보고 싶어 하는 별. 아무나 볼 수 있는 별이 아닌데, 거기서 자면 혼자 실컷 노인성을 보니까.” 그가 말했다. 한라산에서만 보인다는 노인성을 맘껏 바라보고, 섬을 둘러싼 고깃배의 불빛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는 국립공원 산지기 아저씨들이 한없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산지기 아저씨들이 누리는 행복의 순간은 그들이 해야 하는 엄청난 일들에 비교하면 찰나일 뿐이다. 그가 말을 이었다. 

“가끔 산에서 길을 잃거나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럴 때면, 없는 길 만들어가면서 며칠씩 등산객을 찾아다니고. 무서운 일도 많죠, 아무래도 자연이니까. 게다가, 지난번 태풍으로 진달래 밭의 진달래가 염수 피해를 입어서 삼 분의 이가 다 죽어버렸어요. 이제 한라산에 철쭉만 남을 시절이 곧 올지도 몰라요. 보통사람들 눈에는 잘 안 보여도 조금씩 산이 망가지고 있으니까.”

얽히고설켜 돌아가는 산 밑의 시끄러운 개발과 파괴의 소리가 들리기나 하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말없이 받아들이고만 있는 건지, 한라산은 오늘도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있다. 아니, 서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영원히 웅장하고 아름다울 것 같은 한라산도 조금씩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니, 역시 나는 보고 싶은 세상만 보고 있었나 보다.

 

▲ 산 위에서 바라다보니, 수많은 오름들이 정겨운 형제들 같아 보인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 말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운 색깔에 지치는 줄 모르고 산을 오른다. 오르고 올라도 감동이 끊이지를 않는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산전수전 다 겪은 할망 하르방은 언제나 묵묵하다. 진달래가 죽고 나무들이 부러져도 한라산이 태연한 것처럼. 할망 하르방과 한라산이 있어 오늘의 우리가 있거늘, 진작 그들은 모든 것을 ‘관조’할 뿐이다. 몸이 늙고 나이를 먹었으니 힘이 없어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만큼의 관대함으로 변화를 바라볼 수 있기에 그런 거다. “내일사 죽어부러시민 조켜(내일은 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습관처럼 입에 베인 그들이지만, 오늘도 귤을 따고 해초를 케러 다니는 할망 하르방. 온 힘을 다 해, 살 만큼 살아오셨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산을 몇 번이나 왕복할 힘이 있고, 보이는 것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력과 청력이 있건만, 가끔 너무 쉽게 관조자가 되어버리려고 하지 않는가? 관심이라는 마음이 빠진 관조는 한낮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지난 한 해 만나 뵌 할망 하르방과 한라산이 내게 주신 가장 큰 가르침이다.

산은 오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작 우리의 제주도에는 이미 산이 되어버린 마음의 소유자가 많이 있다. 굳이 말은 않고 있지만, 그들 대부분이 어딘가 아프다. 산이 품고 있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 변화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함께 느낄 수 있을 때, 산이 산다워지고 섬이 섬다워진다.

그저 경치만 보고 ‘아, 좋다’로 끝나는 것이 아닌,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산행. 대한민국에서는 한라산에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노인성’이 오늘도 우리를 비추고 있지 않은가.

2013년 계사년 새해에는 함께 걷자.  “수눌멍 살암시민 고찌 잘 살아진다(서로 도우며 살고 있으면 함께 잘 살 수 있다)”던 우리 할망 하르방의 말씀을 새기며 함께 걷자, 걷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들릴 터이니, 관심 어린 자는 얻을 것도 많다. / 정신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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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지는 ?

이 여자, 택시 기사들과 대화 나누길 즐기는 ‘수다쟁이’다. ‘역마살’도 단단히 타고났다. 거기에다 ‘촌스러움’까지 좋아하는 독특하고 야무진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정신지(32). 파주·부산 출신의 부모님 아래 서울서 태어나 여섯 살에 제주로 이민(?) 왔지만 스무살에 다시 서울로 나갔다가 일본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지역연구학’이라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세계 17개국의 섬·지방·대도시를 떠돌며 사람과 집단,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지난 봄, 일본의 국립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이제 12년간의 지구촌 유목 생활을 마치고, 태어난 곳은 아니되, 자신을 성숙하게 키워준 ‘진짜 고향’ 제주로 지난 봄 돌아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에 짐을 풀었다.  매주 한차례 <제주의소리>를 통해 제주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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