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멍 보멍 들으멍](31) 겨우내 단단해진 꽃망울도 예쁜 꽃 되어 자식들 기다려 / 정신지

간만에 태양이 눈부시다. 추위가 걷히고 생기가 돌기 시작한 마을에는 유난히 어르신들의 외출이 눈에 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말씀을 나누시는 할망, 햇살을 맞으며 어딘가로 향하는 하르방, 트럭 뒤에 실려 주인과 함께 마실을 나가는 멍멍이까지. 너나 할 것 없이 살짝 들떠 보이는 따스한 날이다.

검정 코트를 말끔히 차려입고 중절모를 쓴 노신사 한 분이 길을 걷는다. 점심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그가 집을 나선 이유는 단 하나. 노인정에 노래를 부르러 가기 위해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노인정 노래방에서 노래한다는 그는 올해 연세가 아흔 하고도 둘이라신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그의 젊음에 화들짝 놀란다.

“놈들도 나신디 경 고라라(남들도 내게 그렇게 말해). 젊어 보인덴(보인다고). 목소리도 아흔 난 하르방 닮지 안허덴(아흔 된 할아버지 같지 않다고) 칭찬도 허곡(하고). 우리 아들이영 고치(아들과 같이) 걸어도, 아들이랜 허민 믿질 아니허여(아들이라고 하면 믿지 않아). 가이가(그 아이가) 벌써 칠십이 넘어시난(넘었으니), 나영 형제추룩 보염실거여(나와 형제처럼 보일 거야). 일 안 행 노난(일 안 하고 노니까) 젊게 사는 거주게, 하하하.”

▲ 노인정 이층에 있는 노래방으로 이동중이다. 모두들 나그네의 노래솜씨가 궁금하신지 발을 재촉하신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그를 따라 노인정에 도착했으나 아직 아무도 없다. 하르방과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열일곱이 되던 해에 결혼하고 곧장 만주로 건너갔다고 하신다. 일본강점기 때의 일이다. 공장에서 기계공으로 일했는데 이듬해 새색시를 만주로 불러 함께 살다가 해방 후 제주로 돌아왔다. ‘자, 이제 얼마나 파란만장한 그의 만주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가?’ 잔뜩 기대하며 이것저것 여쭈었으나, 대답은 안 하시고 반주 없이 대뜸 노래를 부르신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고
부평 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봄도 푸르련만
버들피리 꺾어 불던 그때는 옛날

노인정 안에 울려 퍼지는 그의 애틋한 노랫소리에 전율이 돋는다. “거 주게(그런 거지).” 노래를 끝내신 하르방이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마치 뮤지컬 배우처럼 하고 싶은 말을 노래에 얹어 불러주신 게 아닐까 하고 혼자 감탄을 했지만, 다 사연이 있는 노래다. 알고 보니 이 ‘타향살이’라는 곡은, 1933년에 발표된 이후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만주에 이민을 간 동포들 사이에서 즐겨 불리던 일종의 망향가였다. 만주에서 타향살이하시던 그가 고향 제주를 그리워하며 불렀을 그 노래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청춘의 기억이 아련히 묻어난다.

하르방이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종이를 한 장 꺼내셨다. 무언가 살펴보니, 그가 즐겨 부르는 노래의 곡목과 노래방 번호가 빼곡히 적힌 애창곡 리스트다. 손바닥만 한 종이를 뚫어지라 쳐다보며 다음 곡을 생각 중이신 하르방, 노래를 좋아하는 마음이 보통이 아니다. 그의 애창곡들이 하나 둘 쏟아져 나오는 사이, 마을 하르방들이 하나 둘 들어오신다. 그 틈에 둘러싸여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노인정의 분위기는 이미 전국노래자랑. 노래판이 벌어지고, 이미 마이크를 손에 쥔 나 역시 만사를 제쳐놓고 ‘동백 아가씨’를 부르고 있지 않은가. 점심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노인정에서 트로트를 부르며 하르방들과 놀고 있는 나 자신이 좀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결국 이런 날도 오는구나.’ 하며 피식 혼자 웃는다.

▲ 음정 박자 모조리 완벽하신 하르방의 노래. 명가수 초청 라이브 콘서트를 방불케한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 하르방이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는 애창곡리스트. 노래도 잘하시거니와 92의 연세에 기억력도 보통이 아니시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 점심시간도 채 되기전에 하르방들과 함께 전국노래자랑. 필자도 동백아가씨를 부르며 흥이났다. 사진촬영은 하르방께서 하심.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아흔을 넘기신 하르방 두 분과 80대의 하르방이 서너 분. 함께 이야기하고 있자니 여러 이야기가 한데 섞여 정신이 없다. 한국전쟁 당시에 머리에 총상을 입어 죽다 살아났다는 한 하르방이 내 옆에 앉으시더니 뚫어지라 내 얼굴을 보신다. ‘관상이라도 봐주시려나’ 했더니 날 더러, “이녁은(너는) 생긴 것이 꼭 밭에 이신(있는) 놈삐(무) 닮다.” 하면서 깔깔 웃으신다. (그래도 호박이나 감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 말에 내가 경악을 하며 “아이, 할아버지. 놈삐가 뭡니까? 시집도 안 간 처녀신디(에게).”라고 투덜거리자, 크게 웃으시며 그가 말한다.

“게난(그러니까), 좋은 반려자를 만나구쟁 허민(만나고자 하면), 이녁이 먼저 좋은 소름(사람)이 되어야 한다. 좋은 소름이영(사람과) 고치(같이) 되기를 바라는 이녁이 나쁜 소름이민, 그건 인연이 되질 아니허여(되지 않아).” 소중한 덕담이다. 그러면서 손주를 내게 소개하시겠다는 하르방, 요번 설 맹질(명질)에 꼭 다시 노인정을 찾아오라고 신신당부하시며 잘 익은 귤을 하나 건네주신다. 

개똥이 언제 오느냐, 소똥인 언제 오느냐, 어르신들께서 서로에게 자식의 안부를 묻으신다. 설을 맞이하여 고향을 찾아올 자식 손주 생각에 모두의 기분이 들떠 있는 것일까. 노인정의 분위기가 전국노래자랑에서 전국자식자랑으로 바뀌어 버린 듯 했으나, 이래도 저래도 시간은 즐겁게 간다.

▲ 길에서 만난 할망께서 나그네에게 간식하라고 건네주신 귤. 마음이 따뜻해진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 이제는 많이 사라져버린 구형 버스정류소. 빛바랜 분홍빛 벽에 할망의 수줍은 미소, 거기에 창밖으로 동백꽃까지 폈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흥겹운 노인정을 빠져나와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보니, 이번에는 집 앞 마당에서 햇볕을 쬐고 계시던 할망들을 만났다. 세 분 계셨는데 그 중 둘이 벌써 아흔을 넘기셨단다. 오늘 만난 어르신 중 벌써 네 분이 건강한 90대라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든든하다. 할망들 역시 곧 있으면 설을 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올 자식들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얼굴이 하나같이 즐거워 보이신다. 분위기를 깰 수 없어 잠시 머물다가 나오려는데, 할망 한 분이 내 호주머니에 귤을 몇 개 넣어주신다. “미깡(귤)도 하나신디(많았는데), 귤 공장에 다 폴아불고(팔아버리고) 이제 이것 밖에 어쪄(없다).”

돌아다니는 내내 가슴이 벅차다. 다른 때와 같이 한 어르신 앞에 죽치고 않아 옛날이야기를 들은 것도 아닌데, 오늘은 보고만 있어도 마음속에 새순이 돋는 느낌이다. 혼자 지내는 것이 맘 편하고 좋다며 할망 하르방은 늘 말씀하셨거늘, 그 깊은 속뜻에 언제나 존재하는 그리움은 늘 어미의 것이고 아비의 것이다. 죽을 고생 해 가며 길러온 자식들이 일 년에 한두 번 돌아오는 지금, 고향 땅에는 동백꽃이 피기 시작했다. 겨우내 단단해진 작은 꽃망울들이 하나 둘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듯, 할망 하르방의 자식을 향한 그리움도 이때만큼은 예쁜 꽃이 되어 자식들을 기다리는 것만 같다.

돌아오는 길, 오래된 버스정류장에 홀로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한 할망을 만났다. 다른 마을에서 시집을 와서 사 남매를 낳고 기르며 50여 년을 살았다. 하르방도 먼저 떠나시고, 자식분들도 모두 육지에 사신다니 남은 건 할망 뿐이다. 외롭지 않으냐고 철없이 내가 묻자 할망이 대답하신다. 

“난 지금도 행복합니다. 혼자서 자고 혼자서 먹어도, 동네에 사람도 싯고(있고). 조식(자식)들은 다 욕앙(커서) 행복하게 살암시난(살고 있으니), 외로울 거 없습니다. 나는 저 멀리 한경면에서 시집을 와신디, 여자는 시집와불민 그만이주(시집오면 그만이지), 고향도 그립지 않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조식들 보레(보러) 비행기 타고 부산에 갑니다만, 그것이 내일 모래라. 젓갈도 사곡(사고), 반찬도 다 맹글엉 놔수다(만들어 놨습니다).”

그렇게 할망은 보따리 한가득 고향을 챙겨 넣고, 타향살이하는 자식들을 보러 곧 떠나신다. 가슴이 설레시는지 수줍게 웃는 할망이 참 아름답다. 그런 그녀를 공항에서 마중할 자식들을 떠올리니, 내 입가에도 웃음이 번진다. 노인정 하르방들이 화투를 치며 짬짬이 모아둔 쌈짓돈, 할망들이 귤을 팔아 만든 돈, 이제 그 정성 어린 돈의 주인공들이 세배하러 하나 둘 고향에 모여들겠지. 

계사년 새해에도 이 섬의 모든 할망 하르방이 건강하고 평화로우시길. 고향에 돌아와 있는 당신이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할망 하르방 손 한 번 더 잡아 드리시길. ‘좋은사람 만나려거든 먼저 좋은 사람이 되라’던 노인정 하르방의 덕담을 다시 한 번 깊이 마음에 새기며.<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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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지는 ?

   

이 여자, 택시 기사들과 대화 나누길 즐기는 ‘수다쟁이’다. ‘역마살’도 단단히 타고났다. 거기에다 ‘촌스러움’까지 좋아하는 독특하고 야무진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정신지(32). 파주·부산 출신의 부모님 아래 서울서 태어나 여섯 살에 제주로 이민(?) 왔지만 스무살에 다시 서울로 나갔다가 일본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지역연구학’이라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세계 17개국의 섬·지방·대도시를 떠돌며 사람과 집단,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지난 봄, 일본의 국립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이제 12년간의 지구촌 유목 생활을 마치고, 태어난 곳은 아니되, 자신을 성숙하게 키워준 ‘진짜 고향’ 제주로 지난 봄 돌아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에 짐을 풀었다.  매주 한차례 <제주의소리>를 통해 제주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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