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호 연재칼럼> (7) ‘믿지 못하는 사회’...서로 깎아내리다 가장 가난한 땅 된 제주
 
    2012년은 전 세계 29개국에서 대선이 치러진 ‘글로벌 선거의 해’였습니다. G2체제 양축인 미국은 오바마 2기 체제를 열었고, 중국은 시진핑 10년을 출범시켰습니다. 일본은 자민당이 정권을 탈환해 극우파 아베 신조를 총리로 선출했고, 러시아에선 푸틴이 다시 정권을 잡았습니다.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은 대한민국과 함께 한반도 주변 6개국 모두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했습니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 2013년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정치적 경제적 격동의 해가 될 것입니다. 동북아 중심이자 아주 작은 섬 제주에겐 ‘위기이자 기회’가 될 새해 벽두에 <제주의소리>는 새로운 의제를 던지고자 합니다. 이 글은 고운호 제주내일포럼 공동대표가 6개월에 걸쳐 준비해 온 원고지 819장 분량의 방대한 제언으로, <제주의소리>는  매주 1회씩 10여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다소 논쟁적일 수도 있지만 민선 자치단체장 ‘20년 체제’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체제를 준비하는 제주사회가 한번은 반드시 넘어야 할 ‘도전과 응전’의 담론을 독자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여덟째, 제주사회는 최하위권에 맴도는 ‘사회적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자고로 우리의 정치판은 온갖 루머와 거짓말과 협잡이 난무하는 저급한 세계로 전락해 버렸다. 신의를 지키는 정치인이 오히려 배척당하는 우스꽝스런 모습이 비일비재하다. 아침에 한 말을 저녁에 뒤집고 금방 이야기해 놓고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잡아뗀다.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위선을 덕지덕지 붙이고도 자랑스럽게 돌아다니는 정치인들이 너무 많다.

부패는 불신에서 싹이 트고 뿌리를 내린다. 서로 깊은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면 편법에 기댈 이유가 없다. 믿지 못하기 때문에 정당한 방법을 외면한다. 혈연·지연·학연 같은 연줄을 동원하고 불법을 자행한다.

기계가 잘 돌아가려면 기름칠을 해야 하듯, 사회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되기 위해선 ‘신뢰라는 윤활유’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지도자부터 신뢰가 훼손되지 않도록 처신을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러나 신의를 중요시하는 정치 지도자를 찾는 일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렵다. 배신과 변절로 점철된 우리의 정치판에서 신의를 지키려고 애쓰는 정치 지도자가 있다면 얼마나 고맙고 자랑스러운 일이겠는가.

 # ‘사회적 신뢰’, 물적자본·인적자본에 이은 ‘제3의 자본’...사회발전 원동력 

지도자부터 신의의 정치를 구현하지 못하면 사회 개혁이나 발전도 다 공염불이다. 향후 우리가 선진국 문턱을 넘어설 수 있는가 없는가도 정직과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지속적 확충 여부에 달렸다.

세계적인 경영대학 INSEAD의 교수인 안토니오 파타스(Antonio Fatas)와 일리안 미호프(Illian Mihov) 등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수준, 경제의 개방성, 부정부패 수준 등으로 측정한 사회기반구조(social infrastructure)의 질적 수준이 국민소득과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다고 밝혔다.

노동과 자본 등 생산요소의 양적 증가가 과거처럼 수월하지 않는 상황에서 상호간의 신뢰를 핵심요소로 하는 사회적 자본은 경제 전반의 고비용 구조를 완화하고 갈등을 낮춰 성장력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세계은행은 사회적 신뢰도가 10% 상승할 때 경제성장률은 0.8% 상승한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 신뢰는 물적 자본, 인적 자본과 함께 사회를 발전시키고 구성원을 행복하게 만드는 제3의 자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주 사회의 사회적 신뢰도는 과연 어떤가. 도정 정책이나 도지사의 리더십을 신뢰하는 도민은 어느 정도인가. 전․현직 지사 간에 도를 넘는 암투와 질시가 제주사회의 신뢰도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가. 그들의 갈등이 제주사회의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인 신뢰도 추락을 부채질 하면서 우리들의 성장력마저 갈아먹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따져야 한다.

올해 상반기가 지나면 현지 지사의 레임덕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2014년 지방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도정 자체가 선거정국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취약한 재정상황과 각종 현안이 실타래처럼 얽히면서 도정의 추진동력이 크게 떨어질건 아닌지 우려가 높다.

이렇게 되면 관료 사회에는 복지부동(伏地不動), 낙지처럼 펄 속에 숨는다는 ‘낙지부동’, 납작 엎드려 땅과 한 몸이 된다는 ‘신토불이’ 등으로 대변되는 보신주의가 만연해질 것이다. 차기 선거의 판세를 보며 줄대기 경쟁이 본격화된다는 얘기다.

 # 선거 끝나면 없애고 보복하니  ‘복지부동- 낙지부동- 신토불이’로 전락한  제주 관료사회  

될 일은 늦추고, 어려운 일은 아예 손 안대는 관료사회 특유의 생존본능이 발동한다. 레임덕에 따른 행정공백과 공공서비스의 파행은 도민들에게 고스란히 피해로 돌아간다.

이러한 도정 말기 증후군을 고착화시킨 것은 새 도정이 들어서면 어김없이 전임 사람들을 대폭 물갈이 해버리는 후진적인 정치와 보복적 인사 관행에 기인한다.

이제 더 이상 도정 교체기마다 발생하는 공직사회의 풍토병적 현상에 의해 도정운영 시스템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특히 도정이 바뀌면 기존 정책을 몽땅 뒤집고, 다시 뒤집힐 것을 알면서도 새로 쌓는 모순을 부끄럼없이 저지르는 우를 범해서는 더욱 안 된다.

쌓다 허무는 짓을 4년마다 반복하고 있으니 제주사회가 전국에서 가장 가난한 땅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가 제주도지사 되든, 그 도정의 컬러가 어떻든 도정 운영의 기본 틀은 견고하게 유지돼야 마땅하다.

행정의 신뢰성은 하루아침에 쌓아지는 것이 아니다. 전임 도정의 실정을 흉보면서도 차기 도정이 그대로 따라하는 일도 허다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도정의 후진성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면서 사회적 신뢰도가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서로 믿는 신뢰의 선순환 속에 부정부패는 발붙일 틈이 없게 되며 덩달아 행복지수도 높아진다. 남을 믿으면 바보가 되는 사회, 반칙과 편법이 판을 치는 부조리한 사회는 결코 선진사회가 될 수 없다.

갈등과 불통으로 범벅이 된 제주 사회가 어지럽고 혼탁해도 아직까지 그런대로 굴러가고 돌아가면서 발전을 하는 것은 어떤 연유인가. 그것은 아직도 배려와 인정, 신뢰를 지키며 묵묵히 사는 도민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제 제주 사회는 편법과 불공정을 타파해야 한다. 보다 더 정의롭고 공정한 선진사회로 발전하기 위한 사회기반구조의 확충과 질적 향상을 더 이상 미뤄는 안되는 중차대한 과제가 받아들어야 한다. 특히 제주경제가 저성장의 굴레에서 빠져나와 지속성장 궤도에 본격 진입하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하루빨리 제주 사회 전반에 실질적인 법치주의의 강화를 통한 부정․부패를 차단하고 양극화해소를 통한 세대간‧계층간 사회적 신뢰를 높여나가야만 한다. 요령과 술수가 통하지 않고 정직한 사람이 평가받고 대접받는 성숙된 사회가 될 때 비로소 제주 도민의 염원인 선진사회 도약은 가능하다.

 

▲ 고운호 제주내일포럼 공동대표

특히 제주도정을 책임지는 도지사는 정책 선택에 도민을 최우선시하는 공적헌신을 그 기준으로 삼아 사회적 신뢰도 제고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혹이나 아직도 지사와 지근 거리에 있는 공무원들의 사익추구가 정책 집행의 순위를 결정짓는다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그동안 제주사회를 지배해 온 요령과 편법이 난무하는 후진적 정치관행과 반사회적 관행에 종지부를 찍자.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자부터 청렴과 결백을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앞서 실천해야 한다. 사회적 신뢰를 높이기 위한 비전 제시와 뼈를 깎는 자기성찰을 할 자신이 없다면 아예 지도자로 나설 꿈을 접어야 한다. /고운호 제주내일포럼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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