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멍 보멍 들으멍](32) 구멍가게 하르방이 준 눈부신 소주 한 잔 / 정신지

버스 시간을 물으러 골목 구멍가게에 들렀다. 가게는 가게인데 파는 물건이 몇 개 없다. 강냉이 몇 봉지와 담배, 냉장고의 음료수와 술, 상자 째 놓여 있는 라면, 그 이외에는 도대체 무엇을 팔까 생각되는 작은 잡화상이다.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가게 안쪽에 주인으로 보이는 머리가 하얗게 센 어르신이 꼬부리고 앉아 쌀을 씻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할망이 아니라 하르방이 아닌가.

“할아버지, 다음 버스는 언제 옵니까?” 라고 큰소리로 묻자, 방금 차가 떠났으니 40분은 기다려야 할 거라 하셨다. 밖이 추우면 안에서 기다리라 말씀하시고는, 씻은 쌀을 압력밥솥에 넣어 가스 불을 켠다. 거동이 불편하신지 천천히 움직이던 그는, 이내 자리를 안쪽 마당으로 옮겨 빨래를 걷고 있다. 멍하게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는데, 일을 다 마치셨는지 내 곁으로 오셔서 말벗이 되어주신다.

▲ 쌀을 씻으시는 하르방의 뒷모습. 그를 보며 신이 난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안절부절이다. 강아지에게도 평소 잘 해주시나보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올해 일흔이라는 그는 홀아방(홀아비)이다. 30여 년 전 부인과 이혼하시고 홀로되어 노모와 함께 생활해 왔다. 그런데 아흔을 넘기신 노모께서 몸이 편치 않아 입원한 후부터, 홀로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젊은 시절 그는 잘나가던 기계공으로 부산에서 일했었고, 그곳에서 결혼해 아이도 낳았다.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노모에게 배운 재봉기술로 일본에서도 수년간 재봉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뇌에 병이 생겨 몸에 마비가 왔다. 그 바람에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부인이 하르방 곁을 떠났다. 머나먼 타향에서 건강을 잃고, 순식간에 가족과 직업,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린 하르방은 하는 수 없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두 번의 뇌수술을 받고 다시 고향에 돌아온 그는, 노모와 함께 살며 차츰 건강을 회복했다. 치매에 걸려 입원하기 전까지, 노모는 한평생 재봉 일을 하며 홀어멍의 몸으로 자식들을 길렀다. 그렇게 세상에 내놓은 장남이 건강을 잃고 모든 것을 잃은 채 다시 당신 곁으로 돌아왔을 때, 노모는 과연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그리고 그런 그를 아무 말 없이 보듬고 치유해줬을 노모 앞에서, 하르방 또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왔을까. 홀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하르방의 노모가 바느질을 하며 모아온 돈으로 20년 전에 지금의 작은 구멍가게를 열었다. 뇌수술을 두 번이나 받아 몸도 성치 않지만, 하루 벌어 하루 살 만큼의 돈은 생긴다 하신다. 자식은 있으나 잊고 산 지 오래고, 있는 힘껏 효도하고 싶은 노모는 오늘내일 하시며 병원에 계신다. 인생사 새옹지마라지만, 하르방이 걸어온 칠십 평생의 인생길에는 말 못 할 아픔이 너무나 많았던 것 같다. 철모르는 내 가슴도 턱 하니 막혀와 할 말을 잃는다.

▲ “너도 한 잔 할탸?”하시며 하르방이 한 잔 건내신다. 괜히 나때문에 대낮부터 슬픈 기억들이 떠오르신 건지. 거절할 수가 없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며 하르방과 마주 앉았다. 안주거리가 없어 미안하다는 하르방, 친절도 하시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의도치 않게 하르방의 씁쓸한 기억들을 들추어낸 것 같아 죄송한 마음에, “할아버지 죄송허우다예(죄송합니다). 괜한 이야기를 꺼냉(꺼내어서)….”이라 말하자, 하르방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나는 그런 거 아무추룩도 안헌 사름이라(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야).” 하시며 털털하게 웃으신다. 그러고는 천천히 일어나서 밥이 잘되고 있는지 확인하러 갔다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오신다. 반 즈음 비어버린 소주병이다. 벌건 대낮부터 하르방은 홀로 가게 안에서 집안일을 하며 술을 반병이나 잡수시고 계셨던 것이다.

“이녁도 한 잔 할탸(너도 한 잔 할래)?” 하시며 종이컵에 따라 한 잔 건네시는데, 거절할 수가 없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한 잔 받아 마시니, 하르방이 놀라신다. 정말 받아 마실 줄은 모르셨나 보다. “저도 한 잔 따라드리쿠다(따라드릴게요).” 하는데, 기어코 됐다고 거절하시는 하르방. 당신 혼자 남은 술을 따라 드시며, “어떵 안주라도 이서야 할 건디(그러게, 안주라도 있어야 하는데), 미안행 어떵허코(미안해서 어쩌지)?” 하신다. 

의사는 뇌에 좋지 않다며 절대로 술을 마시지 말랬다는데, “이제는 하루에 한 병 반밖에 마시지 안 허여(않는다).”고 말씀하신다. 노모가 치매로 입원하신 후부터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하셨단다. 생각해보니 의사 이외에는 그에게 술을 끊으라고 말해줄 사람도 곁에 없을 거란 생각에 철없이 나는 말했다. “할아버지, 너무 술 많이 잡수시지 마세요.” 그러자 하르방이, “게메(그러게), 촘으멍 살아야 헐 건디이(참으면서 살아야 하는데 말이야)…. 몸냥(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어도, 촘고 인내허멍 살아살 건디(참고 인내하며 살아야 하는데)….”라고 말씀하신다.

▲ 노모가 입원을 하시고 하르방은 홀로 가사 일을 돌보신다. 거동은 불편하시지만, 천천히 그의 속도로 밥은 익는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 하르방의 뒷모습이 자칫 쓸슬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힘들고 아픈 시절을 참고 견뎌 오늘도 꿋꿋하게 생활중인 하르방, 내게는 너무나 눈이 부신 사람이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하르방의 슬픔에 비교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 테지만, 슬픈 일이 일어나서 내일이 막막할 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나는 또다시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곰곰이 생각에 잠기시는 것 같던 하르방이 말문을 연다.
“행복이란 것은, 사람마다 다 다른 거난 이(다른 것이니)…. 어, 겐디(그런데), 야, 저디 버스 왐쪄(저기 버스 온다)! 혼저 강 잡으라(빨리 가서 잡아라)!”

조금만 더 있다가 다음 버스를 타고 가겠다고 떼를 부렸으나, 기어코 하르방이 나를 밀쳐내신다. 정 오고 싶거든 다음에 또 오라시며 불편한 몸을 재빨리 움직여 가게 문을 열고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시는 하르방. 지나가려던 버스가 하르방을 보고는 멈추어 섰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잽싸게 가게를 박차고 나와 얼떨결에 그와 헤어졌다.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너무나도 아쉽게.

그렇게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석양이 진다. 보랏빛 초록빛으로 물든 양배추 밭에 빨간 태양이 드리우고, 멀리 보이는 바닷가는 그날따라 왜 그리 반짝이던 것인지. 하르방을 만나 무겁게 가라앉았던 내 마음이 이리도 쉽게 행복해지는 것을 느끼며, 또다시 그의 말을 떠올린다.

“행복이란 것은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다르다.
아무리 머물고 싶은 순간이 있을지언정,
사람마다 타야할 버스의 행선지는 다른 것이고,
어떻게든 참으며 살아가다 보면,
늘 불행하기만 하라는 법은 없다.”
버스 창문에 비추는 내 얼굴이, 한 잔 마신 소주 탓인지 발그레하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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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지는 ?

   

이 여자, 택시 기사들과 대화 나누길 즐기는 ‘수다쟁이’다. ‘역마살’도 단단히 타고났다. 거기에다 ‘촌스러움’까지 좋아하는 독특하고 야무진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정신지(32). 파주·부산 출신의 부모님 아래 서울서 태어나 여섯 살에 제주로 이민(?) 왔지만 스무살에 다시 서울로 나갔다가 일본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지역연구학’이라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세계 17개국의 섬·지방·대도시를 떠돌며 사람과 집단,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지난 봄, 일본의 국립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이제 12년간의 지구촌 유목 생활을 마치고, 태어난 곳은 아니되, 자신을 성숙하게 키워준 ‘진짜 고향’ 제주로 지난 봄 돌아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에 짐을 풀었다.  매주 한차례 <제주의소리>를 통해 제주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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