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51) 가믄장아기 여성, 가믄장 처녀

굳이 비교를 해보자면, 자청비 처녀의 매력은 그녀의 성취능력과 함께 스며 나오는 여성성에 있고 가믄장 처녀의 매력은 그녀의 성취능력과 함께 스며나오는 남성성에 있다.

자청비 처녀는 열심히 일하고 능력도 탁월하면서도, 짧은 스커트 속의 쭉 뻗은 다리를 살짝 내보이기도 하고, 찬사를 받으면 기분 좋고 으쓱해한다. 예쁘게 단장한 얼굴과 짧은 스커트를 속의 쭉 뻗은 다리를 무기로 사무실에 이익이 되는 일을 따오기도 한다. 반면 동의 없이 자신에게 껄떡거리며 희롱하는 남자들에 대해선 가차 없이 세상의 조롱거리로 만들어버린다. 여자가 잘 해냈네, 하는 눈짓에 대해서는 여자니까 더 잘하지, 가볍게 눈을 흘긴다.


반면 가믄장 처녀는 스커트가 여성의 옷이어서 싫다기보다는 일하는 데 걸리적거리기 때문에 바지가 편할 뿐이다. 가믄장 처녀의 바지 속의 다리는 매력적일 수 있지만, 그게 매력적이고, 이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는 무신경하다. 그러니 쭉 뻗은 자신의 다리에 꽂히는 야릇한 시선을 잡아내는 눈치도 없는 편이다. 눈치 챘다고 해도 우쭐해 하지도 않고 그것을 무기로 쓸 생각도 상상하지 않는다.

여성적인 애교, 다정함이나 친절함이 매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혹여 알아도, 그런 점이 모자란 자신을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당연히 몸에 맞지도 않은 애교와 다정과 친절을 체화시키려 애쓰지도 않는다. 쭉 뻗은 다리에 껄떡거리는 남자들에 대해 예민하게 대응하지도 않는다. 여자가 잘 해냈네, 하는 말에 대해서는, 아니 이 일이 여자랑 무슨 상관이냐고, 예민하게 발끈한다.

그녀는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전문 커리어로 성장하고 그 성과들을 확장시켜 나누는 것이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이고 매력이라고 믿으며, 그렇게 딱 부러지게 일을 잘해내기 위해서 편한 바지를 입을 뿐이다.   

▲ 마레이 메이르만 감독, <보스가 되고 싶다>(사진제공, 제13회 제주여성영화제). 계급상승과 빛나는 미래를 꿈꾸기 위해 오로지 입시에 몰두하는 중국의 가믄장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가 만들어내는 만들어내는 지독한 현실.

물을 건네는 자청비 처녀는 고개를 반쯤 돌리고 바가지엔 버들잎을 동동 띄워 건네겠지만 가믄장 처녀의 바가지엔 물마시기에 성가신 버들잎은 없을 듯하다. 가믄장은 핵심에 집중한다.


그녀는 울퉁불퉁 자갈과 똥만 나오던 밭에서 금과 은을 일궈내었던 가믄장여신처럼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고 성과 있는 프로그램들을 진척시키는 데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다. 현명한 상사라면 자신의 성취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녀에게 기획안에 대해 다그치기보다는 옆에서 조용히, 그녀의 통찰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친절하지도 못하고 상냥하지도 못한 그녀에게 사무실 안을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능력은 기대하지는 않을 게 좋다. 그렇지만 그녀의 기획안에 대한 토론이나, 그녀가 만들어 낸 새로운 성과들에 대한 기대로 사무실 안은 웅성웅성 북적거릴 수 있다.


여러 어려움들에도 가믄장은 남성성, 여성성에 대한 여러 인식과 요구에 괘념치 않고 자신의 일과 자신을 지켜낸다.

여자와 남자들의 역할이 다분화 다양화되어서건, 인식이 다양해져서건, 조각되고 조작되어 비슷비슷하게 생겨버린 예쁜 과잉 자청비 여성들에게 식상해졌건, 여성적인 느낌이 모자란 가믄장의 고유성을 그녀의 전문성과 함께, 더 매력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독립적인 자아와 경제력의 성취가 같이 물려 있는 것이어서인지, 결혼 없이 혼자 지내는 가믄장 처녀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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