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책놀이책 Q&A] (4) 아이의 감정을 기다리지 못하는 엄마

# 에피소드4. 책 보며 한숨 짓는 아이

주미는 책임감이 강한 아이다.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동생을 돌보는 일도 잘하고 하루에 책을 10권 읽겠다고 마음먹으면 그대로 실천하는 강단도 있다. 그런데 감정 기복이 심해서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가 종종 있고, 왜 그러는지 속마음을 물어보면 대답을 피한다.

뭔가 깊이 생각하는 것은 알겠는데 가끔 감정이 널뛰기를 할 때면 움직이는 시한폭탄을 보고 있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할 때가 많다.

“ 주미야, 엄마가 옆집 동연이 이모랑 숙제해야 하는데 도와줄 수 있어?”
“ 엄마 숙제라면서 왜 내가 해?”
“ 엄마와 딸이 같이 읽고 쓰는 거야. 똑같은 책을 주미도 읽고 엄마도 읽고 나서 같이 하는 거야.”
“ 무슨 그런 숙제가 다 있어?”

주미는 엄마도 숙제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라는 책의 제목도 주미의 관심을 끄는 데 한몫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미와 나는 함께 울고 웃었다. 작가가 주미를 모델로 쓴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슷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그렇게 말하면 엄마는 더 많이 화를 낼 게 뻔해.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돌려 버려.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대꾸도 않고 혼나기만 해.”라는 부분에서 주미가 크게 공감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감정은 만져주는 만큼 성숙해 진다

엄마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 ‘엄마의 부모(원부모)’ 얘기를 꺼내면 유독 상심에 잠기는 엄마들이 있다. 권위적인 가정 분위기에서 자라면서 슬플 때 슬프다고 제대로 말 못하고, 기분 나쁠 때도 표현을 제대로 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살아오며 감정이 ‘안 쓴 근육’처럼 경직돼 있는 것이다.

문제는 원부모가 자신에게 했던 방식을 자신도 모르게 아이에게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이 인정받았는지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진다. 아이의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 길이 없었던 부모에게 자란 우리 어른들은 특히 아이들과 소통에 있어서 큰 고민을 안게 되었다. 어떤 경우는 부모와 아이가 아니라 ‘아이와 아이’가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우리 부모 세대들은 유년 시절에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야만 했던 시대적 분위기가 있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런 환경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억누르지 않고 오히려 튕겨나간다. 물론 스스로 억누르는 아이들도 있지만, 억누르는 것도 튕겨나가는 것도 모두 썩 좋은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억누르는 것보다는 튕겨나가는 게 낫다. 억누르는 아이보다 튕겨나가는 아이가 자기 스스로에 대한 애정과 감정표현을 더 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미는 억누르는 경우다. 해소되지 않은 감정은 고인 물처럼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반드시 나타난다. 아이와 책을 읽으면서 유심히 아이의 표정을 살펴보다가 마음의 동요가 느껴지는 순간 말을 걸어야 아이의 숨은 감정을 찾아낼 수 있다.

▲ 그림 김라연(blog.naver.com/gomgomHUG).

# 솔루션4. ‘책속 인터뷰’로 아이의 깊은 속마음 찾기

 

“ 맨날 혼나는 아이는 억울할 것 같아. 주미도 그런 일 있었어?”
“ 응. 동생이 잘못했는데 내가 더 혼났잖아. 엄마가 계속 혼자만 말해서 난 끝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어.”

주미는 내 성격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말했다. 어려서부터 나는 미적지근한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먼저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말을 툭 내뱉어 버리는 성미였다. 이 때문에 친구와 많이 다투기도 했고,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해 먼저 사과하는 것도 내 쪽이었다.

이런 성향은 아이를 키우면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아이를 혼내고 나면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 아이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 갑자기 분위기를 띄우거나 어서 기분을 풀라고 재촉했던 것이 주미의 눈에 어떻게 비추어졌을까?

“ 엄마가 성격이 급하지? 말도 빨리하고. 엄마도 혼내기 전에 혹시 주미가 억울한 것은 없나 생각해 볼게.”
“ 히히히. 엄마가 일주일에 한 번씩 숙제하는 거 좋다. 엄마 출근하지 말고 숙제만 하면 안 되나?”

주미는 엄마의 숙제라고 불리는 책 놀이를 좋아했다. 엄마가 자기 생각대로 변한다고 생각하니 으쓱해 하는 것도 같았다. 아이의 속마음을 알기 위해서 시작했지만 오히려 나의 속 이야기를 꺼내 놓게 되어 낯설고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언젠가는 주미의 마음도 알 수 있을 테니까.

부모의 감정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기

아이와 ‘책 놀이’를 해본 부모님들은 이것이 단지 책을 재미있게 읽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간의 감정이 흐르게 하는 강력한 장치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다. ‘책은 감정이다’라고 할 정도로 책에는 감정을 풍부하게 하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책을 자세히 살펴보거나 책으로 놀이를 하면 글쓴이의 감정도 느껴질 때가 있다. 하물며 아이들이 읽는 아동문학이나 그림책이랴. 아이와 함께 아동문학/그림책의 스토리를 따라 가다 보면 ‘공감’되는 대목에서 부모와 아이는 자신의 감정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부모가 아이의 감정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감정도 솔직하게 표현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해야 부모와 감정과 아이의 감정이 만날 수 있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은 대부분 감정이 통하지 않음으로써 생긴다.

하지만 ‘책 놀이’를 했다고 해서 바로 감정이 통하는 것은 아니다. 또 하나의 복병이 있다. 부모가 아이 앞에서 부모의 역할을 스스로 강요하는 순간 감정의 벽이 생긴다. ‘책 놀이’는 가족 모두가 마음을 열고 다가가야 하는데, 일부 부모님들은 자신의 감정은 무시한 채 아이의 감정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가 느끼는 감정과 지식, 경험이 적은 것은 아이가 단지 그만큼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신의 유년 시절이나 감정적 문제에 대해서 아이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만 있다면 상황은 훨씬 개선될 수 있다.

“아이의 감정은 어떻게 형성될까?”를 생각하면 부모님들이 조금 더 솔직하게 아이를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의 감정은 부모님의 부모님에게까지 영향을 받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엄마와 아빠, 아이로 이어지는 ‘3대’에 걸쳐서 사람의 감정이 영향을 주고 굳어진다. 그러니까 아이의 감정이 형성되는 데 부모의 감정이 무척 중요하며, 부모와 아이가 서로 감정 소통하는 것은 아이가 성숙한 사람으로 완성되는 데 필수 조건이다. 주미 엄마는 아이와 책 놀이를 하면서 어릴 적의 기억을 떠올리며 주미에게 솔직하게 다가갔다. 이것은 부모로서 큰 용기를 낸 것이다. 결국 주미의 칭찬을 받으며 원만한 감정 소통을 할 수 있었다.

   

/오승주 독서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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