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16) 세경본풀이 4

#. 여자의 길
자청비는 ‘스스로 여자 되기를 신에게 청하여’, ‘자청하여’ 여자[妃]로 태어났다. 자청비가 자라나서 제법 어른 티가 나는 15세의 아름다운 소녀로 성장했을 때, 봄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와 그녀를 밖으로 유인하는 듯했다. 봄바람에 실려 온 소문은 밖에 제 짝이 찾아왔으니 빨리 나오라 하였다. 자청비는 하녀를 졸라 연화못에 빨래하러 갔다. 거기에는 마음을 설레게 하는 남자, 하늘에서 온 남자 문도령이 있었다. 자청비는 그 남자가 자신이 짝이 될 남자임을 첫눈에 알아보고 남장을 하고 그를 따라 나선다.

자청비는 그를 얻기 위해 남장 여자로 동문수학하면서 문도령을 여자의 성을 아는 남자로 만들어주고 드디어는 문도령과 첫날밤의 진한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눈다. 아이가 어른이 된 것이다. 진짜 여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상동낭 용얼레기(얼레빗)’ 반으로 쪼개어 사랑의 징표로 나누어 가지고 문도령은 하늘로 떠나버린다. 돌아온다는 문도령은 돌아오지 않는다.

자청비는 정수남이란 잘못된 남자를 죽여 죄를 얻었고, 본의 아니게 남장 여자가 되어 서천꽃밭 꽃감관의 막내딸을 시련에 빠지게 하였다. 강요하는 인생도 끌려가는 인생도 자기 인생이 아니었다. 결국 자청비는 죄를 짓고 쫓겨나 다시 부모님과 이별하게 된 것이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나는 것이다. 진짜 여자의 길, 자기 앞의 생을 책임지는 길은 하늘로 가는 길을 찾아내어 문도령을 찾아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는 길이 진짜 여자의 길이었다. 자청비는 정처 없이 걸었다.

#. 직녀(織女)가 된 자청비
자청비는 놀랄 만큼 베를 잘 짜는 여자였다. 자청비가 주모할머니의 수양딸이 되어 베 짜는 직녀(織女)가 되기 전에는 그녀의 재능은 아무도 몰랐다. 사랑하는 하늘의 문도령을 만나려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왔고, 이곳 주모땅에서 베를 짜는 주모할머니의 수양딸이 되어 함께 베를 짜며 살게 된 것이다.

이곳은 하늘에 닿는 땅의 끝, 하늘과 땅 사이 하늘길이 드리워진 연못이었다. 부근에는 하늘의 궁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하는 연못도 있었고, 문도령과 자청비의 사랑을 맺어준 연화못도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 납품할 비단을 짜는 주모할머니와 자청비가 살고 있는 주모땅의 하늘연못도 있었다. 여기는 하늘로 가는 무역품들을 실어 보내는 노각성 자부연줄이 하늘까지 놓여있는 곳이었다. 자청비는 이곳에서 문도령을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디선가 베틀 소리가 들려 왔다. 그것은 주모할머니가 비단을 짜는 베틀 소리였다. 예쁜 자청비를 본 할머니는 그녀를 수양딸로 삼았다. 그녀는 베틀에 올라 비단을 짜며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짜는 비단이 하늘 옥황 문왕성 문도령이 서수왕 따님에게 장가드는 데에 폐백으로 쓸 비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청비는 눈물로 비단을 짜 나갔다. 자청비는 “가령하다 가령비, 자청하다 자청비”라 짜 넣어 비단을 마쳤다.

비단은 하늘 옥황에 바쳐졌고, 문도령은 자청비가 짠 비단인 것을 알고 자청비를 만나려고 내려왔다. 그러나 자청비는 반갑고 기쁜 김에 장난을 걸고 싶어 창구멍으로 문도령의 손가락을 바늘로 콕 찔렀다. 문도령은 화를 내며 그만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주모 할머니는 자청비가 말괄량이인 것이 비위에 거슬려 자청비를 내쫓았다. 자청비는 사월 초파일 날 머리 삭발하고, 승복을 입고 목탁을 치면서 쌀을 얻으러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베짜는 주모땅 하늘길이 있는 곳에서 자청비는 궁녀들을 만났다. 하늘 옥황의 궁녀들이 처량하게 울고 있었다. 까닭을 물으니, 문도령이 자청비와 목욕했던 연못의 물을 떠오면 물맛이나 보겠다하여 물을 뜨러 내려왔는데, 그 물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운다는 것이다.

자청비는 자기와 목욕했던 연화못의 물을 떠 주고 그 대신 궁녀들과 같이 노각성 자부연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다. 하늘에 있는 문도령 집에 이르렀을 때는 둥그런 보름달이 언덕 위에 올라 두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저 달이 아멩(아무리) 곱댄(곱다)해도 
하늘 옥황  문왕성의 문도령
낭군님 얼굴보다 더 고우카(고울까)”

자청비는 팽나무 위에서 노래를 불렀다. 문도령은 노래 소리가 자청비의 목소리인 것을 알아보고, 자청비를 맞이하여 얼레빗 한 조각을 맞춰 보니 분명 자청비였다. 문도령은 자청비를 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만단정화를 나누었고, 오랜만에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부모님이 알까 낮에는 병풍 뒤에 숨어 며칠이 지냈다. 자청비는 부모님의 허락을 맡도록 문도령을 졸라댔다. 물론 그 방법도 문도령에게 소상히 일러주었다.

도련님, 부모님은 서수왕 따님과 나 자청비를 놓고 <수수께기 시합>과 <칼쏜다리 건너기>로 며느리감을 선택할 것입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신부감까지도 새 것을 찾고 명품을 탐하는 쪽은 실속이 엇주마씸(없지요). 새 것은 멋진 것 같지만 추울 것 같아요. 실속 있는 선택은 몸에 맞는 땀이 밴 옷, 맛있게 익은 묵은 장처럼 깊은 맛과 함께 따뜻한 것이 좋아요. 그게 오래된 정이고 사랑이지요. 따뜻한 정이 제일입주(이지요). 새 것만 좋아하는 <새것 콤플렉스>에서 벗어 나십서. 자청비의 충고를 듣고 문도령은 부모님 앞에 갔다.  

#. 칼선다리 넘어가는 며느리 시험
며느리를 뽑는 시험은 정해져 있었다. 첫 번째 관문은 새 것과 묵은 것 중 무엇을 택하겠는가를 묻는 <수수께기 시합>이었다. 문도령의 머리에는 새 옷은 춥다. 묵은 옷은 따뜻하다. 아니 두 여자 가운데 서수왕 딸은 춥다, 자청비는 따뜻하다고 마음에 그리며 부모님께 물었다. 

“새 옷이 따스합니까? 묵은 옷이 따스합니까?”
“새 옷은 보기는 좋지만 따습기는 묵은 옷만 못한다”

다음은 간장을 연상하면서, 새 간장 맛이 안 들었지만, 묵은 간장은 달다 하다가 서수왕딸 맛없다, 자청비는 맛있다고 생각하며 수수께끼를 이었다.

“새 간장이 답니까? 묵은 간장이 답니까?”
“달기는 묵은 간장이 달다.”

문도령은 마음은 점점 자청비를 향해 가고 있었다. 새 사람인 서수왕딸은 낯설었고, 정든 자청비가 그냥 좋았다. 너는 정말 좋다고 마음에 다짐하며 수수께끼를 계속 이어나갔다.

“새 사람이 좋습니까? 묵은 사람이 좋습니까?”
“새 사람은 오래 길들인 묵은 사람만 못하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부모님, 저는 서수왕 따님에게 장가들지 않겠습니다.”
부모님은 수수께끼의 뜻을 알아차리고 화를 내며 무서운 과제를 내 걸었다. 칼선다리를 건너가라는 문제였다.

▲ 다리를 건너는 자청비 놀이. 사진=전통문화엑스포

칼선다리는 심방이 굿을 할 때, 신칼 날이 하늘로 향한 점괘로 이런 점괘가 나오면, 위기가 닥쳤거나 죽음이 코앞에 이르렀다 한다. 자청비가  장차 시부모님이 되실 분들 앞에는 실제로 쉰 자 구덩이를 파 놓고, 숯 쉰 섬에 불을 피워 작도를 걸어 놓고 작도를 타 나가고 타 들어와야 며느릿감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자청비는 문도령의 부인이 되기 위한 하늘나라의 며느리 시험의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자청비는 눈물로 세수하며 백릉버선을 벗고, 박씨 같은 발로 작도 위에 올라 아슬아슬하게 칼날 위로 걸어 나갔다. 작도 끝에 다다라 한 발을 땅에 내리려는 순간 발뒤꿈치가 슬쩍 끊어졌다. 자지 피가 불끈 났다. 자청비는 속치맛자락으로 얼른 싹 쓸었다. 그 법으로 여자 아이 열다섯 살이 넘어가면 다달이 몸엣 거 오는 법을 마련했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땅에 내려서자마자 문도령의 부모님이 달려들어 며느릿감이 분명하다며 얼싸 안았다. 드디어 진짜 여자로 하늘나라 문왕성의 며느리가 되는 시험의 마지막 관문인 ‘칼선다리’를 통과했던 것이다.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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