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 칼럼> 대통령 사과가 ‘외면’하는 것들 (1)

   <이 글은 김동현의 박사 학위 논문 『로컬리티의 발견과 내부식민지로서의 ‘제주’』의 보론이다. 김동현 논문은 ‘로컬리티’와 ‘내부식민지’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식민지 시기부터 1970년대까지의 제주의 지역성이 ‘발견’되는 양상을 규명하였다. 이 보론은 제주의 ‘지역성 발견’ 양상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제주 4․3, 특히 대통령의 공식 사과문을 본격적인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최근 제주 4․3 추념일이 제정되는 가운데 대통령의 사과문의 의의와 그것이 담고 있지 않는 것을 규명하는 이 글은 제주 4․3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본인의 동의와 양해를 얻어 이 글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 2003년 10월31일 제주에 온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무고희 희생된 제주4.3에 대해 국민과 제주도민, 그리고 4.3 희생자 가족들에게 사과했다.

  여기서 의할 것은 국가 폭력을 사과한 대통령의 언술 방식이다.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제주에서 일어났던 비극적 역사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한 행위는 그 자체로 커다란 의미가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제주 4·3은 여전히 역사적 해결의 미완 상태로 남아있다. 지난 2008년 제주 4·3 평화공원이 개관했을 때 특정 전시작품이 일반에게 공개되지 못한 채 수장고에 보관된 것은 ‘국가’의 공식적 사과에도 불구하고 4․3이 여전히 미해결의 상태로 남아 있음을 증명한다. 국가의 공식적 사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주 4·3은 논란과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 당시 대통령의 사과문 전문을 살펴보기로 한다.

  2003년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를 찾았다. 이날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제주 4·3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제주도민에게 사과를 했다. 이에 앞서 10월 15일에는 정부 차원의 ‘제주 4·3 사건진상조사보고서’가 최종 확정되었다. 1948년 사건이 발생한 지 55년만의 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2000년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지 3년만의 일이었다. 당시 사과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존경하는 제주도민과 제주4․3사건 유족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

  55년 전, 평화로운 섬 이곳 제주도에서 한국 현대사의 커다란 비극중의 하나인 4․3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제주도민들은 국제적인 냉전과 민족 분단이 몰고 온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서 엄청난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을 입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제주를 방문하기 전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하여 각계 인사로 구성된 위원회가 2년여의 조사를 통해 의결한 결과를 보고 받았습니다. 위원회는 이 사건으로 무고한 희생이 발생된 데 대한 정부의 사과와 희생자 명예회복, 그리고 추모사업의 적극적인 추진을 건의해왔습니다.

  저는 이제야말로 해방 직후 정부 수립과정에서 발생했던 이 불행한 사건의 역사적 매듭을 짓고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도에서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 그리고 1954년 9월 21일까지 있었던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희생되었습니다.

  저는 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며 삼가 명목을 빕니다.

  정부는 4․3평화공원 조성, 신속한 명예회복 등 위원회의 건의사항이 조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과거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억울한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은 비단 그 희생자와 유족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건국에 기여한 분들의 충정을 소중히 여기는 동시에, 역사의 진실을 밝혀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진정한 화해를 이룩하여 보다 밝은 미래를 기약하자는 데 그 뜻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4․3사건의 소중한 교훈을 더욱 승화시킴으로써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보편의 가치를 확산시켜야 하겠습니다. 화해와 협력으로 이 땅에서 모든 대립과 분열을 종식시키고 한반도의 평화, 나아가 동북아와 세계 평화의 길을 열어나가야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제주도민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폐허를 딛고 맨 손으로 이처럼 아름다운 평화의 섬 제주를 재건해 냈습니다. 제주도민들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이제 제주도는 인권의 상징이자 평화의 섬으로 우뚝 설 것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전국민과 함께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3. 10. 31.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이야기하자 일부 유족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님 감사합니다”라며 눈물을 쏟았다. 55년만의 대통령 사과라는 역사적 순간을 당시의 신문기사는 “입 밖에 내기도 조심스러웠던 사건이 국가적 사과까지 받아냈으니 어찌 감회가 없겠는가”라며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노 대통령은 역사 앞에 그런 용기를 보여주었다”며 감격적인 어조로 보도한다.

 이 날의 사과는 1947년 3월 1일 벌어진 3․1절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의 무장봉기와 그로 인해 빚어진 토벌과정에서 행해졌던 민간인들의 희생에 대해 정부가 그 역사적 과오를 인정한 것이었다.

이 장에서 대통령의 사과문을 언급하는 것은 사과문에 담긴 진정성, 혹은 ‘실체적 진실’ 규명 노력 등을 검증하거나 논의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증적 접근도 어려울 뿐더러 적절치도 않다. 다만 여기서 문제 삼는 것은 사과의 언술과 작동방식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과문이라는 ‘언어’의 형식과 그것의 의미작용이다.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욕망을 만들고 구조화하고 그것의 존재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 “권력”이라며 “언어에 대해서 똑같은 논증을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언어의 영향력은 곧 권력의 영향력이며 그런 점에서 “입법 행위”는 “문법” 그 자체이다. 물론 레비의 이 같은 지적은 피해자가 지배자의 언어 체계 안에서 사고하게 됨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권력의 언어, 즉 언어를 통한 권력의 영향과 작동방식에 집중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그의 주장을 참조점으로 삼아 대통령의 사과문을 들여다보자.

대통령의 사과는 ‘사과문’이라는 ‘언어’를 통한 통치행위이다. 대통령은 제주 4·3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 그리고 1954년 9월 21일까지 있었던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희생”된 사건으로 규정한다. 제주 4·3은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와 이로 인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권력이 ‘역사적 실체’를 이렇게 규정할 때 그것은 권력이라는 상징체계 내부로 수렴된다. 권력이 ‘언어’를 통해 규정한다는 것은 그것이 ‘말하지 못 하는 것’, 혹은 ‘말할 수 없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권력 언어의 상징체계로는 수렴할 수 없는 외부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날의 사과문에서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며 그것의 외부에 존재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이러한 물음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이 말해졌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 김동현 박사 (국문학)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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