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머드급 국가 행사…'시청사 주차장 차량통제' 이유 '거부' 행정
문화예술인들 "꽉막힌 행정… 어처구니없다", 문화마인드도 '한심'

▲ 제주시청 주차장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시민들.
정부가 지정한 문화의 날(10월 21일)을 기념해 열리는 국가 문화 행사에 대해 제주시가 주(主)행사장으로 쓰여질 주차장의 '문화 광장' 활용 문제에 난색을 표명, 개막 행사에 상당한 차질이 우려된다.

더욱이 시민의 문화 향유를 위해 적극 애써야 할 행정당국이 단지 하루동안의 '주차 민원'을 이유로 막대한 예산을 들인 국가행사에 대해 소극적으로 나온데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문화예술인들은 "문화 행사의 속성을 모르는 몰상식한 발상"이라며 "전국적으로 망신살을 자초하게 됐다"며 자칫 개막 행사의 무산을 우려하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국내.외 공연단 50개팀, 공연·전시 횟수 150여회...문화예술인 1,000여명에 이른 대형행사

10월 문화의 달을 맞아 오는 20~22일 사흘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제주시청사를 중심으로 열리는 '북풍남류' 행사는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는 특별자치도와 문화관광부가 만들어가는 매머드급 국가 문화 행사다.

국내.외 공연단 50여개 팀이 참여하는 이번 행사는 공연 및 전시횟수만 150여회에 달하는 등 참여하는 문화예술인 관계자만 1000여명에 이를 예정이다.

이에 따라 2006 문화의 달 행사 추진위원회(위원장 김수열)는 제주시청 동쪽 주차장에 주무대를 설치하고 시청 정문 앞에서 옛 남문파출소 도로 구간(1천여평)까지 면적에 행사부스 50여개를 설치하는 등 '문화 나눔의 광장'으로 만들어나가겠다는 계획 아래 행사를 추진해 왔다.

추진위측은 이를 위해 오는 20일(금) 오후 7시 개막 행사를 위해 적어도 하루전에 메인무대와 대형 설치작품을 설치할 계획을 세우고, 19일(목) 저녁 6시 이후 주차장 이용이 끝나는 시간대에 맞춰 무대 설치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이에앞서 2006 문화의 달 행사추진위원회측은 제주시는 물론 제주특별자치도와 함께 일찍이 관련회의를 거쳐 제주시청 일대 2,000 여평을 '문화 광장'으로 활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특히 청사 정문에 세워지는 대형 설치작품은 제주도의 탄생과 탐라 역사를 다룬 것으로 화산폭발 장면을 대형깃발로 만들고, '돌하르방' '해녀' '설문대할망' '봉수' 등 제주상징 캐릭터와 함께 용암이 흘러가는 느낌을 웅대하게 담아낸 상징적인 작품으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 행사추진위원회측이 "평일 하루 만큼은 반쪽 주차장( 검정색 동쪽 주차영역)이라도 사용해 민원을 최대한 줄이자"는 의견을 제주시에 제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제주시 "민원 발생 우려 있다" 난색...'반쪽 주차장 운영' 절충안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아

그런데 뒤늦게 제주시가 "평일 주차 불편에 따른 민원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하루 전 주자창 사용에 대해 난색을 표명하면서 행사 준비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제주시 관계자는 "사실상 평일에 자가용을 타고 오는 민원인 차량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며 "인근에 주차공간도 없어 사실상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제주시는 개막식을 불과 3시간여 앞둔 "20일 오후 3시부터 무대와 작품을 설치할 것"을 요구하자, 이에 주최측은 "최소한 무대 시설 등을 위해 12시간 이상 시간이 필요한데 3시간 전이나 1시간 전이나 불가능한 것은 마찬가지"라며 "차라리 행정업무 시간이 끝나는 오후 6시부터 주차장을 사용하겠다"는 입장으로 맞섰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행사주최측은 "무대시설이 들어서는 서쪽과 정문 방향만 통제하고 상황인 만큼 청사 동쪽 주차장만을 사용하자"는 절충안까지 제시했지만 책임자선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메인무대 설치와 대형설치작품...개막식 전 3시간 동안 모두 마쳐라?

결국 제주시의 완강한 입장에 밀린 주최측은 "무대 공연은 포기하고 맨 바닥에서 첫날 개막 행사를 진행할 수 밖에 없다"는 최악의 대책을 마련하고, 막다른 상황으로 몰린 채 전전긍긍하고 있다. 결국 첫날부터 행사 차질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

주차 문제에만 급급한 인상을 주고 있는 제주시가 단순히 하루 주차 차량의 통제건만을 염두한 것은 사실상 '민원만 막으면 된다'는 행정편의주의로 사실상 '행사를 치르지 말라'는 요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한 제주시민은  "사실상 주차 방문객이나 문화행사를 즐기러 온 사람이나 똑 같은 도민이 아니냐"며 "그러한 조율을 하는게 행정인데, 삶의 질과 연관된 문화행사 보다 차를 우선 챙기는 행정 시각은 쉽사리 동의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시민은 "사실상 하루쯤 불편을 감수하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용의가 있다"며 "결국 이러한 문화행사가 자주 열리면 결국은 도민 자신들에게 되돌아오는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 제주시청 주차장 내에 있는 상징조형물 주변은 점차 이 곳을 찾는 젊은이들의 문화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꽉막힌 문화행정'…이래서 국제자유도시로 갈 수 있나?

사정이 이렇게 되자 제주지역 문화예술계는 제주시에 대한 '항의 시위'까지 거론하는 등 크게 반발하며 무책임한 행정과 문화 마인드 부족에 대해 질타하는 목소리까지 내고 있다.

제주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상식적으로 문화 행정의 시각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며 "어떻게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는 문화 당국이 단 하루의 주차문제를 놓고 국가 행사에 이렇게 미온적일 수가 있느냐"고 불만을 표출했다.

한 문화예술인은 "해외에서 오는 문화공연단까지 있는데,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무어라고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문화 행사에 대한 성격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이 같은 행정 입장은 결코 나올 수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설치작업에 나선 미술인들도 "시청의 입장대로라면 사실상 조형물 설치를 하지 말라는 것 아니냐"며  "국가 문화행사인데 제대로 진면목을 보여줄 생각은 하지 않고 구색만 갖추려고 하고 있다"며 이해할 수 없는 문화행정에 대해  실망감을 내보였다.

행사 주최측도 "사실상 무대 규모만 40~50평에 달하는데다 청사 정문에 설치작품은 길이 28m 폭18m에 높이 15m의 대형작품"이라며 "적어도 무대와 작품을 설치하려면 하루 전 밤을 꼬박 새워도 모자랄 판"이라며 적잖은 우려감을 나타냈다.

▲ 15일 오후 제주시 청사 주차장내 상징조형물 앞에서 열린 문화의 달 행사 '앞풀이' 공연에서 관람객들이 차(車)와 뒤섞인채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행사 유치한 특별자치도 '황당'..."같은 공무원이지만 이해하기 힘들다"

이에대해 2006년 제주방문의 해를 맞아 행사를 유치한 특별자치도 문화관광 당국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더욱이 행사 개최 장소가 올해 6월 결정된데다 일찌기 주차장의 문화광장 활용을 위해 수차례 행사 주최측과 행정 담당자가 만나 관련 회의까지 가진 상황에서 제주시의 입장은 이해할 수 없다며 당혹해 하고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같은 공무원 입장에서 보더라도 정말 꽉 막혔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며 "더욱이 도민 모두가 향유하는 문화 행사인데 단지 주차장 사용을 이유로 난색을 표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불쾌해 했다.

이 과정에서 제주시 문화당국도 강건너 불구경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업무 협조와 이해를 구하는 대목에 있어서 적지않은 문제를 드러냈다.

한 문화예술인은 "최근 삼양동 선사문화유적을 스스로 훼손해 말썽을 빚었던 제주시 문화당국의 대처도 너무 안일하다"며 "자신의 안방에서 열리는 문화행사에 대해 이렇게 무관심하다면 앞으로 다른 행사에 대해선 얼마나 '꽉막힌 행정'으로 대할지 정말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러한 여론이 점차 일자 일각에선 역사적 건물인 제주시청사 앞을 장기적으로는 '다용도 문화 광장'으로 활용하자는 제안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제주시...4년전 '몰상식 광주' 비엔날레와 닮은 꼴?

사실 문화적인 측면에서 이처럼 상식 이외의 문화행정을 보여준 사례는 이미 4년전에 광주에서 벌어진 바 있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 당시 개막식이 임박했지만 광주시는 부스 설치 인테리어 공사를 채끝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작가들의 작품 설치를 막는 바람에 해당 작가들이 작품 포장을 채 뜯지도 않은 채 현장에 갖다놓는식의 항의시위를 벌였다.

당시 '광주시 행정을 비난하는 원색적인 문구'와 함께 거센반발을 산 예술인들의 '무언 시위'는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광주의 위상에 큰 상처를 남겼다.

한편 해마다 10월 20일 문화의 날을 맞아 서울에서 시상식과 기념식에 그쳤던 '문화의 달' 행사는 3년전 부터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 지역 행사로 선회, 2003년 대구를 시작으로 2004년 전주, 2005년 전주, 그리고 올해 제주에서 열리고 있다.

또  최근 문화관광부 문화의 달 행사 개최 선정위원단은2007년 부산, 2008년 청주를 차기 개최지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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