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의 자치이야기(2)] 주민자치능력의 본격실험대

제주특별자치도법에는 주민소환 제도가 도입되어 있다. 그리고 2006년 5월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제주 뿐만 아니라, 한국의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에서도 올해 7월1일부터 주민소환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한다.

제주특별자치도의 경우에도 도지사 및 도의원 취임 1년이 지나는 올해 7월 1일부터 도지사나 도의원에 대한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주민소환 투표를 청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숫자의 도민들로부터 서명을 받아야 한다. 도지사 소환투표를 청구하려면 무려 8만 2544명의 19세 이상 도민들의 서명이 필요하다.

이 주민소환제도는 선출직 공직자(도지사, 도의원)를 임기중에 주민들의 투표에 의해 해임시킬 수 있는 제도이다. 현행 제도상으로는 주민소환투표가 청구되면 일정한 기간동안 주민소환투표운동(주민소환에 찬성 또는 반대하는 운동)을 거쳐서 투표를 하게 된다. 그리고 투표권자의 3분의1이상이 투표에 참여해서 그 중 과반수 이상이 소환(해임)에 찬성하면 그 때부터 도지사나 도의원은 그 직을 상실하고 새로 보궐선거를 해야 한다.

주민소환은 선출직 공직자의 부패외에 독선,전횡 견제 위한 제도

주민소환제도는 한국에서는 처음 실시되는 것이라, 아직까지도 제도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러나 지방자치의 역사가 오래된 미국, 스위스, 일본 등에서는 오래 전부터 주민소환제도가 도입되어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

주민소환제도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부패나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만 주민소환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민소환은 선출직 공직자의 부패 뿐만 아니라 독선이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주민다수의 뜻에 반하는 독선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 또는 민주적인 의견수렴 절차 없이 독단을 범하는 경우에 주민소환이 이루어진 사례들을 외국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 사례 중 하나로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서 1995년 간행한 『성공한 단체장 실패한 단체장』이라는 자료집중에 실린 사례를 소개할까 한다. 위 자료에서 “실패한 단체장”의 사례로 꼽힌 이 사례는 주민소환제도와 관련해서도 생각해 볼 만한 사례이기도 하고, 지역의 중요한 의사결정(특히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사업과 관련된 의사결정)은 어떻게 내려져야 하는가와 관련된 중요한 사례이기도 하다.

'실패한 단체장'의 사례 : 즈시의 미시마시장

이 사례가 발생한 즈시(逗子)시는 일본의 가나가와 현에 있는 조그만 도시이다. 이 도시에는 이케노코(池子)라는 숲지대가 있었고 이 숲지대에는 폐쇄된 탄약보급창이 있었다. 그런데 1982년 일본 방위청이 이 숲지역 80ha를 미군용 주택건설 후보지로 선정하고 일방적으로 통지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주민측은 이케노코숲의 보존과 탄약보급창이 있던 지역의 전면반환을 요구하며 반대운동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즈시 시의 미시마(三島)시장도 주민과 함께 반대에 나섰다. 미시마 시장은 3선째를 하고 있는 시장이었다.

그러나 1984년 3월이 되어서 미시마 시장은 정부가 제시한 33개 항목의 특별지원 등에 이끌려 이케노코 지역의 숲에 미군주택을 건설하는 것에 대해 조건부 합의를 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시의회에서 시장의 결정에 대해 투표를 한 결과, 주택건설계획 찬성 15명, 반대 9명이라는 결과가 나와 시장의 결정이 승인되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반대운동을 하던 “이케노코의 숲과 아이들을 지키는 모임”은 시장 소환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하고, 1984년 8월 주민소환에 필요한 법정서명수(선거권자의 1/3인 14,339명)를 대폭 상회하는 18,612명의 서명을 얻어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하였다. 이에 미시마 시장은 주민소환투표가 실시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사임을 하였고, 이후 실시된 선거에 다시 출마하였다(일본의 경우, 주민소환투표를 피하기 위해 투표 직전에 사임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이케노코의 숲과 아이들을 지키는 모임”은 미시마 시장에 대항할 수 있는 다른 후보를 선정하고 이를 지원하였다. 그 결과 1984년 11월에 시행된 선거에서 미시마 시장은 15,346표를 얻는데 그쳐, 16,412표를 얻은 시민모임 지지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기본적으로 주민소환은 부패, 범죄, 성추문 등 대표자의 자질이나 도덕성이 문제되는 경우에도 많이 시도되는 제도이다. 그렇지만 위 사례에서 보듯이, 의사결정의 민주성과 관련해서도 주민소환은 많이 시도되고 있다.

사실은 주민소환같은 제도가 사용되는 일이 없을 정도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주민들의 참여를 잘 보장하고 민주적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런 기대가 깨어졌을 때에, 주민소환제도가 활용되는 것도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것이다.

주민소환제 긍정적,부정적 평가 공존

이러한 주민소환제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함께 존재한다. 아마 위 사례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공존할 것이다. 그것은 주민소환제도가  이미 사용되고 있는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주민소환제도는 주민의 참여를 통해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을 통제하는 직접민주주의 제도로서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주민소환제도가 악용 또는 남용될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특히 정당이나 이익집단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다. 이처럼 주민소환제도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결국 주민소환제도의 장점을 살리고 주민소환제도가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기능하게 하는 것은 지역주민들의 몫이다. 어떤 경우에 주민소환 제도를 사용할 것인지, 실제 주민소환투표에서 찬성할 것인지 반대할 것인지 등은 참여권을 가진 주민들이 판단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지역주민들의 자치능력이 본격적인 실험대에 오르는 것이기도 하다. 지역시민사회의 성숙도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지역내에 의견대립과 갈등이 존재할 경우에 그것이 극단적인 상황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지혜도 필요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자치권을 확대하고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은 도민들이 새로운 도전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도전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는가에 따라 지역의 미래가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하승수(제주대 법학부 부교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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